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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4시

몰래 하는 말

by 빌려온 고양이


불안했다.

비를 맞고 한참을 뛰었다.

운동복을 빨다 말고, 샤워기를 틀었다.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비밀을 털어놓듯 욕실 바닥에 손가락으로 문장을 써댔다. 틀어놓은 물소리보다 조용하게 쓴 글이 마음만큼 요란하고 시끄러웠다.


떨어지는 물에 금세 지워지는 말,

나만 아는 글이 배수구 아래로 사라졌다.


- 배설한 거 아니야. 너만 알고 있으라고 몰래 하는 말이야. -


_

소파 앞에 앉은 내가 TV 모니터에 들러붙는다.

영화 속 주인공 옆에 나란히 앉았다.

별일 없다고, 괜찮다는 말에 잠깐 기대어 본다.


그 말이, 읽기 쉬운 마음처럼 내게로 슥- 들어오길.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퍼펙트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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