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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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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Oct 07. 2020

단편소설 : 찌그러진 탁구공 (上)

「효원」 127호

-프롤로그

     

“꽤나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해 보이네요.”

“ (…) ”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증상을 누를 수 있는 약물치료입니다.”

     

손에서 땀이 난다. 초조하다. 이런 심정을 알아줘서일까. 목을 축인 뒤 물병을 놓는 의사의 손길이 사뭇 조심스럽다.

     

“어머님께서 잘 아시겠지만, 약물을 이용한 치료가 완치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 (…) ”

“환자가 병을 이겨내려는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계속 재발하겠죠.“

     

말이 이어졌다.

     

“그런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머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네”

     

의사와의 보호자 면담이 끝이 났다. 그러자 다음 차례로 보이는 사람이 일어나 준비를 한다. 사람으로 가득 찬 대기실이 눈에 들어온다. 땀에 젖은 손을 닦으려는데, 입고 있는 청바지의 허벅지가 자글자글하다.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손도 조금 아려온다. 긴장이 풀리고 나서야 그동안 긴장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후우- 그리고 찾아오는 한숨. 속에 들어찬 답답함을 내뱉듯이 있는 힘껏 내쉬어본다. 그런데 영 개운하지가 않다. 대기실에서 느껴지는 답답한 냄새 때문인 듯하다. 아들은 이걸 아픈 사람 냄새라고 했었지. 그럼 나한테도 이런 냄새가 나는 걸까? 괜스레 소매를 끌어 코를 대보지만, 고개만 갸웃하게 될 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왔다- 짐짓 활기차게 내어보는 목소리에 호응하듯 종소리가 울린다. 언젠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라며 현관문에 매단 것들이다. 아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소파에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요즘 들어 통 잠에 들지 못하던데, 쪽잠을 자는 아들이 사뭇 안쓰럽다. 간단하게 차린 밥상에 약봉지를 꺼내어 놓는다. 하나는 내 것, 또 하나는 아들 것. 그때 아들이 조용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잠에서 깬 걸까? 소파 쪽으로 몸을 돌리기 전 문득 거울을 본다. 입꼬리를 올리고, 표정은 밝게, 좋아. 우울해 보이지 않아. 억지로 만든 웃음은 가끔 정말로 행복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뭐랄까,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느낌이랄까. 최면은 성공적이었다. 아들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 부엌을 나서며 아들을 불러본다. 그런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거친 숨소리만 들려온다. 아들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땀을 흘리고 있다. 입으로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악몽을 꾸는 중일 게다. 무슨 꿈을 꾸고 있기에 엄마를 찾는지, 숭숭한 기억이 너를 또 괴롭히는 것인지. 이럴 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땀에 젖은 아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바르르 떨리는 아들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는 것. 아들의 옆에 앉아 염불을 왼다. 나쁜 꿈이 어서 끝나기를 빌며 나무아미타불…. 어떻게 하면 너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무아미타불….

     

행복함의 최면은 깨어지고, 집에선 답답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프롤로그 끝

     



헉- 강한 들숨과 함께 눈을 뜬다. 눈앞이 온통 뿌옇다. 지금 이 상황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방금까지만 해도 난…. 어지러이 돌아가던 시야가 천천히 맞춰지는 것이 느껴진다. 마치 막 휘저은 라떼의 우유 거품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이. 익숙한 천장이 보이고, 그제서야 지독한 꿈을 꿨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옷을 입고 사우나에 들어온 것 마냥 온몸이 땀에 젖어 끈적하다. 집이 건조해서였을까, 메마르게 갈라진 목은 따끔하고, 심장은 막 경기를 마친 경주마처럼 쿵쾅댄다. 컬컬했던 목을 차가운 물로 축인 뒤 샤워를 한다.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호흡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다. 따뜻한 물을 맞으며 그 심장 박동을 느껴본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내 몸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한다. 그저 꿈일 뿐이야, 난 지금 괜찮아- 라고. 한층 개운해진 기분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그러다 우뚝,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 말고 멈춰선다. 문고리를 쥔 손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아무래도 독한 악몽을 꾼 탓이리라. 다시금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붙잡으려 가방 속으로 손을 넣는다. 금세 딱딱한 플라스틱의 감촉이 손끝에서 전해지고, 그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약의 존재를 느낀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놈의 진정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심호흡을 하며 문을 연다. 힘들었던 시기는 지나갔다고, 나는 지금 괜찮다고 끊임없이 되뇌이면서.

     

“어서오세요…, 아 너 왔구나?”

“네, 사장님.”

     

사장님이 상냥한 목소리로 날 반겨주신다. 함께 일한 지 벌써 3년, 내가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도 다시 고용해주신 정 많은 분. 사장님의 정감 가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사장님에게 사랑받고 자란 막내딸 같은 분위기가 배어있어서 그런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한다. 가게는 사장님을 닮아 편안한 분위기가 배어있다. 항상 공기 속을 떠도는 고소한 빵 냄새는 따듯한 조명 속에까지 스며든 듯, 부드러운 공기가 만연하다. 불안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천히 사그라들고,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오늘이 끝날 때까지 이런 기분이면 좋을 텐데. 딸랑- 한가했던 가게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들이 무리 지어 들어오고,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뒤를 잇는다. 근처 초등학교 모임일 테지. 아이들과 어머니들이라, 시끄러운 조합이다. 평소의 나였으면 속으로 투덜거리고도 남았겠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 다소 소란스러운 주문이 이어졌다. 커피 3잔과 번을 포함한 빵 5개. 이 정도는 금방 처리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일한 짬밥이… 아니 시간이 얼만데. 머그잔과 접시를 쟁반에 담아 서빙을 나선다. 어느새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수다를 떨고 있는 손님들을 향해 발을 뗀다. 한걸음, 한걸음. 그러다 픽 웃음이 흘러나온다. 짬밥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거 너무 티 나는 거 아니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때의 추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그땐 그랬지. 지독했던 군 생활도 좋았던 기억으로 떠오르는 걸 보니 내가 지금 기분이 좋긴 하구나. 그랬는데….

     

탕-!

     

그 소리가 들렸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 결코 잊을 수 없는 공기의 파열음이 날 찾아왔다. 마치 곤히 자고 있는 친구의 이불을 장난스레 걷어버리듯이. 뒤이어 두 눈의 동공이 조여드는 것이 느껴지고, 앞이 깜깜해졌다. 총소리가 왜 여기서 들리는 것일까. 그것이 실질적인 공기의 진동에서 전달된 것인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 것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한껏 조여있던 동공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신발이었다. 그리고 앞치마와 땅. 그제야 나는 내가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쪼그려 앉은 다리는 심하게 떨려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것은 귀를 막고 있던 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찌잉- 얼마나 힘을 줬던 것인지, 귀 위에 덮인 손을 떼어내자 약한 이명이 찾아왔다. 그리고 코로 들어오는 매캐한 화약 냄새.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흐릿한 시야 속으로 깨진 머그잔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 아이를 나무라는 손님, 그 아이의 손에 들린 장난감 화약총. 공포의 감정은 뒤늦게 찾아왔다. 소심한 아이가 사탕을 물고 돌다리를 건너듯 천천히, 그리고 너무도 분명하게. 나는 놀란 손님들을 진정시키는 사장님을 뒤로한 채 무작정 창고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진정제를 집어삼켰다. 마음속으로 천천히 수를 헤아린다. 하나, 둘, 셋 …. 1초가 10초가 되고, 10초가 100초를 지나쳐 갈 무렵 약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용광로 같던 호흡과 심장이 천천히 식어가고, 옳은 방향을 찾아 요동치던 손과 발들이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명이 멈췄다.

     

“…!”

“…송합니다, 손님.”

     

밖에서 오가는 대화가 하나씩 들려오기 시작한다. 손님들에게 사과하는 사장님의 목소리. 다시 몇 분이 흐르고, 조용해진 가게에 빗자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떠나고, 내가 엎지른 쟁반을 치우고 계시고 계실 테지. 나는 그제야 창고에서 나올 수 있었다. 허리를 숙여 깨진 접시를 줍고 계시는 사장님이 보인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난 뒤 사장님을 불렀다. 빗자루질을 멈춘 사장님이 나를 돌아봤다. 알면 안 될 것을 알아버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런 눈빛은 정말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리고는 착잡하게 가라앉은, 한편으론 떨림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많이 놀란 것 같으니 오늘은 그만 퇴근해서 쉬어라-고.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런 눈빛과 목소리를 마주한 나는 그저 죄송하다고, 집에서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연거푸 허리를 숙이며 황급히 빵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날을 비추던 태양은 둥근 곡선을 띠며 자신의 임무가 다했음을 알렸고, 얇은 달이 산머리에서 눈웃음을 보일 때 나는 사장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많이 놀라셨을 사장님께 죄송한 마음을 담아 시작한 메시지는 내가 사실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지나쳐, 더는 함께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로 결말을 맞았다. 거기에는 병을 숨긴 사실에 대한 죄송함이 담겨있었다. 신중하게 선택한 단어들 사이에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하실 사장님에 대한 걱정에 따른 고민. 어떻게 하면 이 죄송한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이렇듯 고민스럽게 골라진 단어들이 모여 문장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문장들 사이에 일말의 기대가 스며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나를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감. 전송한 메시지를 뒤로하고는 곧,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자근자근 물어뜯기 시작한 손톱이 그 면적을 좁혀갈 무렵,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응. 집에는 잘 들어갔니?”

     

빵집을 나선 지 하루도 되지 않았건만,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는 곧장 내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 들어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려 전화를 건 것이 아니라는 듯이.

     

“보낸 문자 읽었어…. 네가 그간 고생했는지 몰랐구나.”

“네…, 먼저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아니야. 이렇게라도 말해줘서 고마워.”

     

사장님이 고맙다고 하셨다. 긍정적인 신호일까? 괜찮으니 계속 출근하라고 말씀하시려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상담이라도-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나도 너를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아프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희뿌옇던 기대감은 그 정체를 명확히 하기도 전에 뿔뿔이 흩어졌다. 사장님이 말이 이어졌다.

     

“몸조리…, 아니 마음 조리 잘하길 응원할게. 빵집에 자주 들러주면 좋겠네.”

“…네.”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장님은 더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동안의 월급에 대한 언급을 비롯한 마지막 인사. 어쩔 수 없이 가라앉는 목소리를 끌어올리려 용을 쓴다.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풀리고, 다음에 뵙겠다는 말을 한다. 대화는 끝으로 다다랐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마지막으로 어떤 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휴-.”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 그것은 나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골칫덩어리를 잘 처리한 데서 나오는 안도의 마음에서? 아마도 후자겠지. 뚝-하고 끊어져 버린 사장님과의 통화가 꼭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착실하게 쌓아온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 휴대폰에서 새어 나온 마지막 한숨은 마음이라는 호수에 다다라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슬픔이라는 이름의 물결, 좌절감의 물결. 잔잔하던 내 마음 위로 불어난 수만 가지의 파동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호수의 표면을 때리고, 제방을 사정없이 타고 넘었다. 그렇게 지금 내 몸이 이토록 흔들리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나나 보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감정의 파도에 사로잡힌 몸과는 별개로, 머릿속에선 다른 것이 똬리를 틀었다. 나에게 찾아온 이 병에 대한 증오. 그것은 너무나도 집요한 것이어서, 곧 머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오는지.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은 그 종착점이 어디냐는 듯 쉼 없이 가지를 쳤다. 그러고는 다다랐다. 내가 이 병을 앓게 된 이유, 쉼도 없이 되풀이되는 악몽의 순간에.

     

탕-!

     

그리고 이어지는 둔탁한 소리. 한 인간이 떠나가며 남긴 마지막 소리였다. 최전방 초소의 간이화장실에서 일어난 의문의 자살사건. 그날 부대는 난리가 났더랬다. 막사는 깊은 밤중까지 헌병대에서 온 수사관들로 북적였고, 병사들에게 호랑이로 불렸던 간부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복도를 뛰어다녔다. 언론매체와 SNS에서는 자극적인 소재를 발견한 듯 수많은 억측이 들끓었다. 찾아온 유가족들은 어디 숨기는 사실 없냐며 우리를 추궁했고, 나는 그 아이를 처음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 거짓말 탐지기 사용에까지 응해야만 했다. 총성이 산맥을 울린 후 자욱하게 찾아온 안개를 아직 잊지 못한다. 훗날 정말 요상한 안개였다고 회자되는 그것은 바로 앞의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짙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물의 입자들에 둘러싸인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그 중심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마지막까지 밝은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던 그 아이는 어떠한 원망을 품었는지 말도 해주지 않은 채 그렇게 떠났다. 나는 눈물로 그를 배웅했다. 짙은 안개가 눈물진 얼굴을 가려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진절머리 나는 조사를 마친 후 복귀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신을 옮기다 튀어나온 두뇌에 토악질 했던 동기는 태연하게 라면을 먹고 있었고, 허옇게 질린 채 뛰어다니던 간부들은 다시 그 눈초리를 올려세웠다. 그때의 일은 담배 하나를 나눠 피며 씹는 하나의 썰이 되어 있었다. 놀랄 만큼 어수선했던 부대는 놀랄 만큼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모든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았고, 나 또한 갑자기 찾아온 평온한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짙은 안개는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그 안개가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던 것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얼굴에 슬픔 대신 웃음이 그 면적을 더 해가고 있었을 무렵, 첫 발작이 찾아왔다. 때는 따듯했던 봄날의 오후. 나는 최전방 초소로의 경호 작전을 나갔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간이화장실이라는 본래의 의무를 다하기 시작한 사건 현장을 지나치고, 계단을 올라 소초 내부에 도착하고는 땀에 젖은 방탄복을 벗었다. 노곤해지는 몸에 행복감을 느끼며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는데, 옆에서 탁구 경기가 시작되었다. 단순한 PX 내기로 시작한 경기는 점차 그 열기를 더해갔고,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건강한 공기에 덩달아 마음이 들뜨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웃음 지으며 경기를 보고 있었을까. 문득 마음 한켠이 답답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 답답함은 이미 불안함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심장은 그 박동 수를 점차 올려가고, 호흡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눅눅한 군복 때문에? 섬유유연제 냄새가 너무 강하게 올라오는 탓인가? 아니면 점심에 먹은 라면이 체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 날카로운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딱- 딱- 딱- 탁구공이 라켓에 맞았을 때, 공이 탁구대에 부딪힐 때, 신경질적이면서도 경쾌한 소리가 소초를 울렸다. 그것은 너무도 불규칙적인 것이어서 몸속에서 박동하는 심장과는 전혀 박자가 맞지 않았다. 불안해지는 것의 원인이 혹시 이 소리였나, 하지만 갑자기 왜? 라는 의문이 들 무렵. 이제까지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소리가 꽈직-하고 울려 펴졌다. 그리고 나에게 발작이 찾아왔다. 미칠 듯한 두려움에 성급히 자리를 벗어난 것도 잠시, 속에 있던 것을 올려내기 시작한 나는 곧 점심에 먹은 라면 찌꺼기를 마주하곤 계속해서 토악질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아이의 두뇌의 파편들, 그때의 메스껍던 속을 이제와서 비우려는 듯이. 끊임없이.

     

그 일은 나에게 찾아온 첫 발작으로 남았다. 발작이 끝난 후, 나는 마지막의 강한 파열음이 탁구공이 깨지는 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마무리된 경기와 구석에 뒹굴고 있는 공의 파편들이 그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나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자살 사건 이후 많은 노력을 거쳐 진정되었던 마음은 다시 들끓기 시작했고, 무엇을 하던 불안했다. 한번 경험한 발작은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에 나는 예민해졌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흠칫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깊게 잠드는 날이 눈에 띄게 줄었다. 가라앉기 시작한 불씨에 기름통을 엎은 듯,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그 날의 감정이 표면으로 부상했고, 이는 처음처럼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첫 발작과 이로 인해 뒤틀린 일상은 너무도 괴로운 것이었어서, 나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고민을 털어놓을 곳은 결국 엄마밖에 없었다.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전한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무책임한 행동이었지만, 미미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오셨던 분이 가장 잘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탓이었다. 병사의 휴대폰 사용이 허용되기 시작하던 때라, 부대 내의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화를 통해 있었던 일을 전했다. 탁구공 소리에 불안해진 것과 이로 인해 발작을 일으킨 것. 그때부터 심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 처음에 조금 놀란 목소리로 대화를 하시던 엄마는 곧 생각에 잠기셨다. 그리곤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자고 권유하셨다. 이후 병원 상담을 예약했고, 다음 휴가를 이에 맞춤으로써 나는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의사 선생님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하셨는데, 그것이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끄덕임인지, 혹은 학자의 탐구열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나로선 알 턱이 없었다. 이야기 내내 이어진 의사 선생님의 키보드 소리는 내 얘기가 끝이 나며 함께 멈췄다. 그리고는 곧 입을 열었다. 내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 강렬한 일을 겪은 후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로 보인다는 것.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성격이 함께 보인다는 말이 이어졌다. 공황장애라. PTSD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공황장애라니? 이제까지의 내 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다소 거리가 있는 병이었다. 인파로 넘쳐나는 곳에서 이제껏 보낸 즐거운 시간들은 뭐란 말인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의 말이 끝났고, 내가 질문했다.

     

“그렇지만 선생님…, 공황장애는 사람이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그런 게 아닌가요?”

“보통 그런 편견이 있긴 하죠.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편견일 뿐입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던 듯.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은 의사 선생님의 대답이 이어졌다.

     

“인파로 붐비는 곳에는 다양한 자극들이 존재합니다. 환자분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부지불식 간에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죠. 가뜩이나 예민한 상황에서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이죠. 발작이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그게 공황 증상 자체를 불러오는 요인이 되지는 않아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비유를 하자면-

     

“바람이 세차게 분다고 무조건 산불이 나진 않아요. 다만 불씨가 존재한다면 말이 다르겠죠.”

     

선생님은 나에게 불씨를 찾아 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트라우마가 더 커지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힘들 때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건넨 감사 인사를 뒤로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대기실에는 엄마가 사뭇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앉아계셨다. 당신을 곁에 두고는 나의 속 얘기를 모두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내 생각을 존중해주셨지만. 진료실의 문을 말없이 열고 들어간 내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한 손에는 진단서를, 다른 편으로는 엄마의 손을 맞잡은 채 약국으로 향했다.

     

100m 남짓 떨어져 있는 외래약국으로 향하는 길. 난 내심 홀가분한 감정을 느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힘들어했던 증상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받았다는 사실. 그 사실에서 하나의 희망감을 엿볼 수 있어서였을까. 진단서에 찍힌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의 혼란을 잠재워주는 듯했다. 마치 한없이 엉킨 낚싯줄 뭉텅이 속에서 하나의 매듭을 찾은 것처럼. 덕분에 엄마와 시답잖은 수다를 떨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치료 기간에는 술을 마실 수 없다더라- 그게 너무 아쉽다면서 재잘재잘. 약국에서 접수를 마친 뒤까지 이어진 가벼운 대화는 나를 부르는 약사의 목소리에 끝이 났다. 그리고 약봉지를 건네주는 약사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신병자’임을. 묘한 안쓰러움, 알게 모르게 나를 딱하게 여기는 듯한 눈빛이었다. 젊은 나이에 어떡해. 옆의 부모는 어떻게 생각할까. 주위에서 수군대는 듯했다. 난 황급히 약봉지를 건네받곤 약국에서 뛰쳐나왔다.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런 거구나. 뒤늦게 알아차린 나의 손에 엄마의 손이 감겨 들어왔다. 이런 내 기분을 안다는 듯이 바라보시는 엄마. 그렇게 난 내 병의 사실을 쉽게 밝히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눈빛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 마음 아픈 것이었기에.

     

그런 생각은 내가 남은 군 생활을 마무리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 경험하는 약 기운에 적응하느라 비척거릴 때, 쉬지 않고 쿵쾅대는 심장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 망치질 소리가 무서워 작업에 나가지 못했을 때, 난 나사 빠진 말년병장 행세를 했다. 순찰을 도는 간부 앞에서 몰래 TV를 보는 척을 했고, 허리가 아프다며 작업에서 열외했다. 나는 그렇게 버텼다. 그리고 곧, 행복한 전역자가 되었다. 적어도 날 웃으며 배웅해주었던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부대에 남은 사람들 입에서 ‘정신병자 선임’으로 오르락내리락하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다. 아니 행복한가? 잘 모르겠다.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마음속은 공허하면서도 무언가로 가득 차있는 것 같기도 하다. 힘없이 풀려있던 눈을 정돈하니 버스 기사님의 뒷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나. 막 스쳐 간 정거장을 몇 번째 지나가는지. 아무 생각 없이 오른 버스는 몇 바퀴나 자신의 길을 돌아보는데, 내 머릿속은 전혀 진전이 없다. 일하던 직장도 잃었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로 시작한 질문은 매번 다른 대답을 이끌어내고,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곳을 알아보자는 생각에는 덜컥 두려움이 앞선다. 그런 일이 다시 닥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럴 때 어김없이 마주하게 될 눈빛이 먼저 떠오른다. 그건 싫은데…. 나를 피해 도망가는 듯 잡히지 않는 해답을 한창 쫓고 있을 무렵, 운행을 끝낸 버스가 멈췄다. 마침내 도착한 종점에는 버스들이 빽빽이 주차되어 있었다. 여기는 어떤 버스에게는 시작점이고, 또한 종점일 테지. 두 점 사이에는 뚜렷한 길이 있으며, 출발한다면 언젠가 도착한다는 보장 또한 존재하겠지. 문득, 정말로 문득- 버스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해진 길을 따라갈 수 있는 것에 대한 동경심이었을까? 어떠한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았던 나는, 공황장애라는 병을 얻음과 동시에 길을 잃었고. 당장 다음 걸음을 내디딜 곳조차 명확하지 않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에 그만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종점에는 별달리 앉을 곳이 없었기에,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버스들 중 하나를 고른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언제나 그랬듯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버스의 루트를 따라간다. 덜컹덜컹- 버스의 출발에는 지체함이 없어, 자신감에 가득 찬 것 같이 느껴진다. 나도 누군가가 길을 정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갈 곳은 여기라고, 길을 달리다 마주치는 정거장에선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라고, 속도 방지턱 앞에서는 속도를 늦추라고,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서는 아직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온종일 그렇게 돌아다니던 나는 곧 집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치 하루 할당량을 모두 채우고는 손을 터는 느낌이랄까. 거듭하던 고민의 해결점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허리가 견딜 수 없게 아파온 까닭이었을 것이다. 멍해진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서는 허리를 두드리는데,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A였다. 진동과 함께 휴대폰 액정에 나타나는 이름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친구.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소중한 인연은 각자가 바쁜 생활을 살면서도 끊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끈끈해져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다. 그런 친구에게서 온 연락은 언제나 반가운 법. A가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게 되면서 소식이 뜸했었는데, 덕분에 그간 묻지 못했던 반가운 안부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실없는 농담들. 전 여자친구 좀 그만 잊고 사람답게 살라는 둥, 넌 조용히 하고 빵이나 구우라는 둥. 아 참. 내가 일을 그만둔 사실을 A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만나서 진득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그때, 이런 내 마음을 알아준 것처럼 A가 말문을 열었다.

     

“야, 이러지 말고 우리 술이라도 한잔하자.”

     

가능하다면 오늘 밤에 당장-. 그렇게 약속이 잡혔다. 사실 술을 마실 수 없는 입장이지만, 나가서 설명하면 되겠지. 반가운 친구 놈을 만난다는 생각에 준비를 하는 움직임이 바빠졌다. 허리가 조금 쑤시긴 하지만 지금 이 기분을 망칠 정도는 아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설 무렵. 가방에서 나는 달그락 소리가 내 주의를 끈다. 진정제다. 하루종일 심란했던 것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러자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걱정스러움과 어이없음. 친구와의 약속이 번화가라는 것이 우선 마음에 걸렸다. 발작이 찾아오진 않을까-하는 생각. 그러면서도, 병 때문에 직장도 잃고, 오늘 한 일이라고는 버스에 앉아 쓸데없는 생각밖에 없으면서도, A를 만날 마음에 설레는 것이 우스웠다. 내가 얘를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오늘도 진정제를 믿어보자고 나를 다독이며, 나가는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그리고 폐부로 들어오는 찬바람. 싸르르해지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 마음껏 심호흡을 한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어느새 찹찹해진 가슴을 안고 걸음을 뗀다. 가득 들어 마신 밤공기가 내 속의 불씨를 조금은 눌러주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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