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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Jun 16. 2020

하이에나

긍정 - 고교 친구 새로 사귀기


--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진 것처럼, 용광로 쇳물처럼 뜨겁게 뜨겁게 난 몸이 달아올랐어. 산으로, 친구 집으로, 벙개로 천방지축 날뛰었더랬지. 다 친구들 덕택이었어. 함께 자리할 수 있었으니까. --




2017.


친구들 고맙네!

그대들이 있기에 내가 있었다네.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난 마음이 터져 버렸어. 같잖은 시와 글을 마구 써댔드랬지. 다 밴드 친구들 덕분이었어. 보아주고 공감해 주었으니까.


그건 여름날 닭 손질하다가 퍼뜩 행복은 웃어야 찾아온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였어. 웃으니 신기하게 마음이 터지기 시작한 거야.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처럼.


나리는 비를 보며 처음 태곳적 나를 추억하고, 생로병사의 두려움에 처음 휩싸이고, 내 주검을 처음 마주 보니 눈물이 줄줄 흐르고, 염 때 찌푸린 내 얼굴을 처음 걱정하고, 삶을 동심원으로 그려보고, 친구가 던져 준 고향집이란 시를 보고 같은 이름의 고향의 옛 대폿집을 언뜻 떠올리고.....


밴드 이름이 7번방의 추억 그땐 그랬지 이길래, 응팔 1968 꼬맹이로 돌아가 보자 친구들에게 슬쩍 권하니 봇물처럼 추억의 똥 모험담들이 터져 나오고, 난 깜짝 놀라 장맛비에 얽힌 그것으로 화답하고, 내 눈에 굳게 씌워진 색안경을 처음 발견하고, 대머리 걱정해서 친구가 내준 다이소 2천 원 싸구려 밀짚모자에 울컥하고, 작은 기적으로 공감과 비교가 교우의 묘약과 독약임을 깨달아 깊이 새기고, 나이 들어서 왜 지금 친구인지 생각해 보고, 노년의 삶을 비워가는 마음으로 중심 잡아 보고, 그리고 청첩장에 12월의 신부가 우리 딸로 다가오고.....

이렇게 시와 글로 나를, 행복을, 삶과 죽음을, 인생을, 노년의 삶을, 그리고 친구를 터진 마음으로 풀어냈고 호응해주니 참 고마웠어.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진 것처럼, 용광로의 쇳물처럼 뜨겁게 뜨겁게 난 몸이 달아올랐어. 산으로, 친구 집으로, 벙개로 천방지축 날뛰었더랬지. 다 친구들 덕택이었어. 함께 자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건 고향산 치악산을 능선서 되돌아오지 않고 처음 반대편으로 넘고 나서부터였어. 친구와 산에 오르며 내리며 담소하는 즐거움과 쉬면서 먹는 음식 맛이 기막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지. 김밥도 꿀맛이려니와 친구 어무이가 챙겨 준 방울토마토는 나이 들어 고아된 자로서, 비록 늙으셨지만 그 빨간 색깔만큼 따스하고, 그 탱탱한 모양만큼 가득 찬 어무이의 사랑이 뚜렷이 보이고, 기억되고 싶은 노인의 당연한 바람까지 아릿하게 느껴져서, 어무이께 참 맛있게 먹었다고 꼭 전해달라 당부했어.


친구산 태백산 처음 초대받아 쉬엄 터벅. 산길 야생화 꽃 이름은 왜 쥐, 여우를 붙인 게 많은지 궁금해하고, 한강 발원 검룡소 들르니 양수리가 마음에 그려지고, 하산해 산책로부터 친구 아내가 반갑게 맞이하여 친절하게 안내해 태백 시내 황지 연못 느긋하니 관광하고, 동행해서 연탄불에 지글지글 소고기로 몇 잔 하고, 그리고 사려 깊게 배웅까지. 얼콰해 열차에 올라 해 질 녘 창밖 풍경을 내다보다가 조속 조속 졸고, 그렇게 종일 여유를 만끽했지. 이 모든 게 초대해 준 친구의 자상한 배려 덕분이었어. 살면서 친구와 그 아내와 산책, 관광, 식사를 함께한 건 처음이니 특별한 경험이었지.


이 산뿐인가?


치악산 종주 9시간이 뭔지도 모르고 겁 없이 따라나서서 내내 떠들어 대느라 피곤할 줄 몰랐어. 능선서 높이 솟은 나무숲 아래 오솔길은 좌우로 수풀이 허리춤까지 무성하고, 손등 만한 둥근 풀잎들이 탐스러워서 지나며 슬쩍슬쩍 건드리니, 이름 모를 보랏빛 산꽃이 수풀 사이로 머리를 내밀어 가지 말라 유혹하고, 지난해 진 낙엽 섞여 푹신해진 흙길은 지친 발을 어루만져 주었지. 이 아름다운 길을 참을 수 없어, 참 아껴서 지나고 싶은 길이라고 친구에게 말했어. 막판 오르막에서 오른 허벅지가 화끈 당겼을 때 친구가 내준 스틱 하나에 체중을 나누어 고비를 넘겨 완주하고, 산 내려와 제대로 첫 하산주 치악산 막걸리로 목젖을 촉촉하게 적시니 카 하산주가 이리 맛날 줄이야 홀딱 반하고 말았어.


백운산행은 25년 두바이서 영구 귀국 기념이라 거창하게 이름 붙여 친구 기분 한번 띄워 보았어. 산에 이르니 전날 폭우 뒤라 산과 숲이 한층 선명하고 공기는 찬 기운을 호흡으로 느낄 정도로 신선했지. 산길 초입에서 등산로를 점검하던 중년의 관리인 여자를 만나, 폭우에 무너져 내린 곳이 있어 위험하니 안전한 포장 임도로 돌아서 가라고 했어. 안전이 산행의 제일 원칙이라 당연히 따르기로 했지. 그래서 평지처럼 쉬엄쉬엄 노닥노닥하던 중 임도와 비슷한 폭으로 가로질러 폭우로 생긴 빗물 길이 막아섰어. 누군 등산화가 젖건 말건 뚜벅뚜벅 거침없이 걸어서 건너고, 누군 젖을세라 첨벙첨벙 뛰어서 건너고, 누군 등산화, 양말 벗어 들고 바지 걷고 시원하게 발목으로 물살을 가르며 느긋하게 건너고, 누군 친구를 등에 업고 다정하게 건너니 꼬맹이 시절로 돌아간 듯했어. 그리곤 쉬엄 터벅 중턱까지. 헌데 관리인의 안내를 깜박 잊고 예정에 없던 새 길 험로 들어서 사막의 라이언과 가벼운 산행으로 알고 참가한 친구에게 살짝 미안했지.


이 산뿐인가?


치악산 고둔치 넘어 부곡 계곡서 생뚱맞게 누군 홀딱 벗고 누군 팬티만 걸친 채 추억의 알탕을 했어. 옷 주워 입기 전에 300 신화의 주인공이 단체로 얼굴 셀카 찍자 했지. 헛웃음 짓다가 여러 머리가 흔들리니 손바닥 만한 스맛폰에 초점이 안 맞고, 그게 웃겨서 진짜 웃음이 터지고, 배꼽이라도 쥘라치면 초점이 또 흐트러지고, 그런 상황이 너무 우스워 떼 웃음이 폭발했어. 그 순간을 놓칠세라 순간 포착 찰칵찰칵찰칵찰칵 셔터 버튼을 마구 눌러 댔지.

폭포서 둥근 챙 모자 깊게 눌러쓰고 등 돌린 채 창 소리 연습하는 여자를 만나는 행운. 남심 호기심 바짝 발동해서 누군 폭포 사진 찍는 척, 누군 동영상 찍는 척 슬그머니 접근해도 얼굴을 볼 수 없자, 누군 어째서 젊다 하고 누군 저째서 퇴물이라고 제멋대로 추측하며 아쉬움을 달랬어.

하산해서 너른 평상에 조촐한 술상을 주문했지. 누가 두부 김치에, 두부찌개는 두부를 한모 더 넣어서 두부만 잔뜩 시키길래 전에 두부촌서 만나자고 한 게 생각나 녀석이 두부 귀신이란 걸 알게 되었지. 부어라, 마셔라, 얼큰하니 우스개에서 흰소리로 넘어가고 쥔 아줌마 들을까 조마조마 진한 야설까지, 취하니까 듣거나 말거나. 와중에 친구 술자리라면 100킬로쯤 우스운 친구가 차 몰고 냅다 달려와 흥 돋우니 술판은 커져만 가고. 그런 중에 언제 들었는지 기억은 없으나 무척이나 듣고 싶었던, 취해야 발동이 걸린다는 핫핫 웃음이 드디어 터졌고 흡입량과 동반해서 점점 커지고 잦아졌어.

양 껏 마시고 흥 껏 즐기고 나서 자기 나와바리라며 덩치 큰 차 몰고 데리러 온 친구 차에 빼곡히 올라탔지. 차 안은 폭소의 도가니. 지가 일등인데 누구 때문에 망했다는 둥, 누구는 4등이 최고라는 둥, 누구 머리가 젤 어땠다는 둥, 돈두한테 누가 더 맞았다는 둥둥둥. 시내까지 한 시간여 내내 학창 시절 지 자랑 친구 까기와 더 웃긴 기억 찾아내기 삼매경에 빠져서 낄낄낄 핫핫핫 큭큭큭 핫핫핫. 술을 마누님에게 가르쳐 대작할 정도로 사랑하니 주신 박카스가 주신 선물인가 누구 추임새마다에 폭소가 터지고, 좌석에 없는 친구들 향해 돌아가며 연발탄 산발탄 직격탄에 조준 사격까지. 성인 되고 이리 유쾌한 한 시간은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어. 그 한 대목은 새 추억 기록용으로, 산행에 참석 안 하는 사람은 의문의 패배를 당한다는 애교성 교훈용으로 녹음했고. 흉본 건 아니고 흩어져 잊혀 가는 옛 추억을 더듬은 것이니 걱정들 마시고.


친구산 오봉산은 정상까진 괜찮았어. 능선에선 저 멀리 아래로 빙 둘러 산 사이에 한치 오차 없이 딱 맞게 맞춘 짙푸른 자연석 사파이어 같이 아름다운 호수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하산은 완전 웃기는 짬뽕. 하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단 1인만 누워야 간신히 통과하는 희한한 병목 바위틈이 기다리고 있었지. 탁 트인 산 위에서 백화점 세일 선착순도 아니고 남녀 수십 명이 길게 줄 서서 1시간을 대기하는 진풍경, 영화관으로 치면 긴긴 광고 타임. 연이은 경사진 너럭바위에 발목이 되게 아픈 누군가 아 쓰벌 먼 산이 이래 태백산이 훨 낫다 다신 안 온다 하고, 무릎 아픈 누군가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끙끙한 건 예고편에 불과. 드디어 메인. 특수부대 훈련하다 몇이나 죽었다고 표지판까지 세운 수직 바위가 기다릴 줄이야. 거꾸로 엉덩이 먼저 자세로 밧줄 타고 유우격 유우격 우렁차게 외치며 하강했어. 처음엔 재밌더만 몇 번이고 반복되니 나중엔 끽소리 없이 21살 군인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나이에 이게 먼 지랄인가 생각이 들었어. 언제 평지야? 응 다 왔어 같은 질문 같은 대답이 예닐곱 번 이어지고. 마침내 하산해 청평사 계곡에 이르니 이번엔 절을 향해 양손바닥 고이 모아 뱀 받들어 모신 중국 공주 거대 청동상이 떡하니 물길을 막고 있었어. 아니 한국 절 전설에 웬 중국, 것도 여자, 것도 뱀을 받들어서, 것도 계곡에 모셔 놓는다는 게 영 뜬금없었어. 헌데 대반전. 까짓 닭갈비 먹으러 가는데 소양강 배 타는 낭만에다, 쥔장이 산삼보다 귀하다는 중국 먼 술이라며 내오고 병째 선물까지 받는 복을 누리더니, 선상에서 돌아가며 노래하고 총각 딱지 뗀 청춘 고백의 장이 열렸어. 그리고 해피 엔딩. 아침에 차 두대로 춘천역에서 배후령까지 태워줬던 고마운 청년 둘이 선착장에 다시 나타나 차로 이동해 보니 춘천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널찍한 카페. 맨날 만나면 술잔 들기 바빴던 노땅들 아메리카노 머그잔 들고 폼 좀 잡아 보았지. 이 모든 게 초대해 준 친구의 세심한 배려 덕택이었어.


이 산뿐인가?


두 번째 치악산 종주는 초장부터 지레 겁먹고 고둔치서 혼자 낙오해 예상대로 무릎 쩔뚝 먼저 하산. 늦은 오후 시간 맞춰 친구들 태우러 가 다시 만났어. 반나절도 안 지났는데 아침에 만날 때 보다 더 반가우니 또 산에 가고 싶고.


치악산 큰무레길 거쳐 시루봉까지 오른 후에 처음 먹어 보는 정상주가 입에 착 달라붙었어. 하산 입석대길 돌계단에서 무릎 아파 또 홀로 낙오했고 친구가 남겨 준 스틱 2개 덕에 간신히 나마 내려오고, 연이어 긴긴 비탈길 내내 뒷걸음질로 내려와도 다시 산에 가고 싶고. 여담이지만 뒤로 걷는 걸 본 젊은 연인, 아이 둘과 그 엄마는 노인이 운동하는 줄 알았는지 따라 하더라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시쳇말로 웃픈.


그리고 피날레.


오, 지옥의 청계산이여! 계획은 무릎 걱정에 1시간만 오르고 빠꾸 하려고 잠바, 양복바지, 구두 차림이었어. 흙길에 완만하여 지금껏 험악한 산과 확연히 달랐어. 친구들과 떨어지기도 싫고 해서 완주로 계획 수정. 오르다 보니 비 시작. 일기 예보 5미리를 믿은 내 탓, 비 점점 굵어져 우산 쓰고도 흠뻑 젖었어. 금방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거 같은 껌껌한 무덤가에 이르러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찌를 듯이 솟은 외나무 위로 번개는 번쩍번쩍 처대지, 빗물 먹다 먹다 못해 잔뜩 토해내는 잔디 아래 진흙에 구두는 푹푹 빠지지, 갈 길은 잃었지, 이러다 벼락 맞나, 저체온증 오나, 조난인가 생판 처음 기이한 산행에 겁 좀 났지. 다행히 미군 부대 야간 조명등에 기대어 한참 만에 길을 찾았어. 친구들이 미리 하나씩 내어 준 등산 모자, 등산 장갑, 스틱 덕에 몸도 상하지 않았고. 산행이 아니라면 젊어서도 힘든 이런 미친 추억을 언제 다시 쌓을까 싶어 산행이 고맙고 친구가 고맙고.


이렇게 달에 한 번, 어떤 달은 두 번 고향산 찾아오고, 친구산 찾아가니 함께 건강 챙기면서 살아온, 사는, 살아갈 날들을 숲 공기만큼이나 맑은 정신으로 나누고, 하산주로 지난 세월 갈증과 회포를 푸니 참 고마웠어.


뿐인가?


귀래 전원주택은 산 중턱에 고즈넉이 자리 잡아 도시의 번거로움을 잊게 했어. 여름엔 휘어진 나뭇가지와 칡넝쿨이 어우러진 아치가 천장에 구멍 뚫린 터널 같아 서늘한 실 계곡. 선녀인가 나뭇꾼인가 발가벗고 몸 담가. 한날은 옆 정자에 자리 잡았지. 소주, 맥주가 빠질쏘냐, 누구 도착할 때까지 비닐도 뜯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진 양장피 한 접시는 스페셜 안주. 딱 한 잔씩만 돌아갈 양이라 연태고량주는 애피타이저로 아껴 마시고, 누가 바둑 고수네 입씨름으로 저녁 해는 뉘엿뉘엿 미륵산을 넘어갔어. 자리 옮겨 별 쏟아지는 옥상. 지상인가 천상인가 사람인가 신선인가. 빙 둘러앉아 걸쭉한 막걸리에 아리랑 노래 절로. 일어서 다 함께 어깨 걸고 덩실덩실 다 같이 떼창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지. 와중에 친구라면 껌벅 죽는 예의 100킬로 친구까지 차 몰고 달려와 마지막까지 술잔 기울이니 산골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8인의 추억을 가슴에 아로새겼지. 겨울엔 거실에 활활 뜨끈뜨끈 화목 난롯불 곁에 두고 소주에 동동주에 와인까지 거덜 낸 후 거실이든 빈방이든 입맛대로 골라서 벌러덩 누우면 별장이 별건가 재벌 총수 부럽지 않았지. 이렇게 즐거운 술자리가 사계절마다 여러 번 있었드랬지.


청주 백키로 길 마다 않고 집 찾아가니 대환대, 유붕이 자 원래 하면 불역열호아. 원주서, 귀래서, 천안서, 그리고 남해안 휴가 후 복귀 길에 한꺼번에 들이쳤지. 소주에, 맥주에, 캔 맥주에 자리 옮겨 가며 술잔을 부딪치고, 덩달아 두 기차 화통도 부딪치고. 술 달고 자리 편하니 어부인들도 흥에 겨워 노래하고 기타 줄도 퉁겨 보고, 놀다 지쳐 새벽에 잠자리 들고. 아들 딸 잘 키워 내고 여유롭게 사는 모습 보고 들으니 고맙고 대견했어.  


집뿐인가?


저번엔 저 식당들, 그 주점들서 마시고, 이번엔 이 노래방들서 아줌씨 하나 없어도 신명 나 혼자서, 둘셋넷이서, 따라서 목 터져라 부르고, 때론 목이 쉬어 버리고.


겨울밤 칼바람에 슬리퍼에 맨발이 안쓰러워 친구가 벗어준 양말 신으니 고마운 마음에 가슴까지 훈훈하고, 다음날 찢어진 청바지와 백주에 서울 강남 한복판을 누벼도 창피하긴 커녕 양말이 자랑스러워 발목 걷고 다시 보았지.


이뿐인가?


지성이면 감친인가 난데없이 꿈에 나마 보고 싶던 친구들이 나타나고, 먼길에도 오다가다 가매기 삼거리 치킨집 찾아주고 또 찾아들 주니 기다림은 설레고 만나면 고맙고, 그리고 누구든 만날 때마다 껴안으니 가슴의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왔지.


이렇게 친구 집, 치킨집 왕래하고, 벙개로, 정기로 술자리 함께 하여 맘 편히 같이 떠들고, 웃고, 즐기니 아직은 젊음을 느낄 수 있어 참 고마웠어.


난 우정에 굶주린 하이에나


온라인 밴드에서 매일 매시간 매 10분 출근해서 올린 60여 개 마음의 글들, 반 평생 삶과 업에서 우러난 글과 단상들, 이런저런 사진들, 그리고 셀 수도 없는 댓글들. 그리고 친구들이 매일 시시각각 올린 수많은 글들. 댓글이  무려 184개가 최고를 필두로 100개가 훌쩍 넘는 글이 넷. 회원 수 50명이 채 안 되는데 이 정도면 우리나라 아니 세계 최고의 반창 아니겠나. 그렇게 학창 시절 교실서 10분 쉬는 시간처럼 함께 왁자지껄 떠들고, 낄낄 웃고, 그러다 해프닝 세 번. 아쉽게도 이런 분위기 싫다고, 스스로 너무 떠들어 댄다 생각해 자숙한다고.


오프라인에서 2번 정기 모임, 9번 고향산 친구 산행, 10여 회 벙개, 두 친구 집 방문, 우리 아들과 우리 딸 결혼식, 셀 수 없는 심야 전화들, 그리고 꿈에서조차 예닐곱 번 벙개에 치킨집 들러들 주고. 그렇게 만나서 대면하고, 대화하고, 술 권커니 자커니, 노래하고 춤추고. 그리고 틈틈이 밴드에 올릴 글 쓰기.


10년은 쌓였을 거 같은 이 모든 추억들이 놀랍게도 다 올해 5월 밴드 가입 이후 반년여 만의 일이었어. 단절된 교우를 잇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친구들 앞에서 인생 보고서라는 반성문을 쓰면서 긴 세월 큰 빚에 짓눌려 폐쇄된 마음의 문을 열었고, 난 다시 태어났던 것이었네.


아아, 기적 같은 2017

아아, 꿈결처럼 흘러간 2017


아디오스


내년에도 우리 같이 행복한 추억 맹글어 가자!





                       후기





단절된 교우를 응급 수술로 어설프나마 애써 이어서 이제 서먹서먹은 대개 걷힌 듯하고, 나아가 늙어 반추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질 새롭고 싱싱한 추억을 쌓기 시작했네. 덤인가 내게는 시나브로 인생의 세 번째 황금기가 시작된 거 같으이.


첫 번째는 어린 시절 부모덕에. 두 번째는 결혼하고 가족 덕에 30세에 어머니 모시려 고향 내려와 결혼하고 아들 둘 낳고 가정을 이루었을 즈음. 세 번째는 나이 들어서 친구 덕에


전에는 황금기란 걸 모르고 지났네. 첫 번째는 어려서 몰랐고, 두 번째는 젊어서 당연한 줄 착각해 일에 미쳐서 지나쳤고, 세 번째는 다행히 미리 알아챘으니 친구와 더불어 소중히 가꿔 나가고 싶네.


말은 거창하지만 황금기래야 머 별 거 있겠나? 숙명, 큰 근심이나 반드시 넘어야 할 인생의 고비, 장애물이라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대개 있음 직한 걱정은 좀 덜어내고 즐거운 거 찾아 행복하면 그게 황금기겠지. 누구든 가질 수 있고, 때 되면 오는 거 아니겠나? 혹 취향이 다르더라도 그런 녀석이려니 여겨 주시고, 혹 내가 아직 어색하면 동그란 내 프로필 사진 터치하고 작성글 보기 함 보시게나. 내 얘기는 거기 있으니, 자네들 얘기도 같이 풀어 보든지 다음에 만나거든 들려주시게.


동심원으로 전에 말한 적 있고, 알아주는 친구가 조금씩 늘고 있네만 내 마음은 이렇다네.


우정이란 


서로의 삶의 동심원을 공감해 주는 것이어서

다른 삶이지만 같은 추억에 뿌리를 두고

평생 키워 가는 것이라네


행복이란


동심원을 다 그리고 난 후에 찾아오는 것 아니고

그리는 순간순간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네.



201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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