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담배 찾는 여아
더불어 행복 실전 - 행복은 지금 이 순간
-- 아이가 귀한 시대. 아이는 우리 모두의 희망! 우리 모두의 미래! 혼자 문 밖을 나선 아이는 우리 모두가 보호해야 한다. --
화이트 캡 모자를 쓴 남자가 도어를 열고 들어선다.
순간, 코로나에 마스크는 안 쓰고 모자?
이상하다.
카운터로 바로 다가오니 담배 사러 온 거.
가까이 보니 청년인 듯 앳되다. 눈과 눈이 수평으로 마주하니 키 175센티 정도. 단정하고 깔끔하여 멋 부렸으니 대학생? 평일 주간에 교복 아니고 책가방도 안 메고 빈손이니 고등학생은 아닌 거 같다. 아파트 주민으로 편의점 들르러 잠깐 나온 듯.
헌데 잠깐에 모자? 여자 아닌 남자는 대개 그러지 않는다.
수상하다.
쭈볏쭈볏하며 양손 들어 모자를 눌러쓰며 눈을 반쯤 가린다.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담배 달란다.
앗, 대학생 아니다. 백 퍼센트 고등학생!
경계 태세 발령!
떳떳하다면 대화할 때 모자를 제쳐 눈을 내보이지 감추지 않는다. 대다수 성인 남자들은 230여 가지 담배 중에서 자신이 피는 담배 이름 하나를 콕 찍어서 거리낌 없이 대지 막연히 담배를 달라고 하지 않는다. 돈 내고 사는 거 주눅 들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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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편의점 매출의 40%가량이 담배. 그리고 담배 사러 온 김에 다른 거도 사간다. 담배는 마진은 작아도 편의점의 가장 큰 매출원이자 고객을 끌어들이는 전천후 견인차. 그래서 편의점 오픈은 담배권을 딴 후라야 매장 임대 계약을 확정한다. 드물지만 담배권 없이 20평으로 오픈했다가 담배 파는 경쟁점에 밀려서 담배권 따려고 50평으로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50평 이상은 담배권 거리 제한이 없기 때문. 그만큼 담배는 편의점 생존에 절대적이다.
한편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매하면 매장은 2개월 담배 영업 중지, 판매한 근무자는 2백만 원 벌금. 업주에게도 알바에게도 치명적이다.
미성년자는 어렵사리 산 담배를 공원이나 뒷골목에서 담배 무용담을 곁들여 여럿이 함께 핀다. 요즘엔 길거리에서 대놓고 피지만. 마침 건수 없어 하릴없이 순찰 돌던 경찰차는 먹잇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다가가 붙들고서 묻는다. 담배 어디서 샀냐고. 자신은 처벌받지 않고 자랑거리며 동네 애들이니 어느 편의점인지 금방 답 나온다.
이러니 담배는 조금만 의심가도 무조건 신분증 확인해야. 다행인 건 신분증 보자면 미성년자 외에는 대다수가 좋아한다. 어려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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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부머인 우리 때는 반대였다. 어떻게든 나이 들어 보이려 했다. 어리게 보면 기분 상한다. 담배 가게서 나이 확인? 아부지가 사 오라 했다면 통과. 아부지가 담배를 안 피면? 담배 사는 이는 정해졌는데? 동네 집 숟가락 수까지 세는데? 큰 아버지나 외삼촌이 오셨다고 하면 그만. 용돈 개념이 없어 호주머니에 돈이 없고 담배 종류가 몇 가지밖에 안될 뿐 담배를 구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대신 어른 보는 데서 피면 바로 엄청 혼나거나 얻어맞는다. 대들어? 경찰 단속? 그런 거 없다.
나는 녀석 나이 때인 고 2 때 호기심 반 청춘의 반항 반으로 혼자 담배를 배웠다. 첫 한 모금에 콜록콜록. 어랏, 이따위 걸 어른들은 왜? 호기심은 즉시 증발했지만 이유를 모르는 반항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네모진 성냥갑에서 성냥을 꺼내 검붉은 옆면에 그어 담배에 불을 붙여댔다. 그렇게 집 한 켠에 나무판자로 내달아 짓고 창이 없어 빛이 들지 않는 광 안은 한때 내게 유일한 안식처여서 거기서 끓어오르는 청춘을 숨죽여 불살랐다. 가슴에 꽉 들어차 미어터지는 반항심을 잠시나마 쓰디쓴 담배 연기에 실어 허공에 날려 보냈다. 그러다 중독.
그래서 안다. 청춘인 녀석은 금지라면 더 하고 싶다는 걸. 중독이라면 얼마나 담배가 다급하고 얼마나 집요하게 담배를 구하려 할지를.
허나 어쩌랴. 세상은 변했고 청소년 보호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걸.
담배 아니어도 다시 방문할 고객이니 부드럽되 단호하게,
"신분증 보여주십시오."
"어, 깜박하고 안 가져왔어요. 다음에 보여드리면 안 돼요?"
"안 됩니다. 신분증 확인해야 합니다."
"저 이 아파트 살아요. 나중에 보여드릴게요."
"그럼 집에 가서 가져오세요."
녀석은 우물쭈물하더니 더 할 말을 잃고 물러선다.
바보 같은 녀석. 일껏 대학생처럼 차려 입고 모자는 왜 쓰나 모자라 보이게. 눈은 왜 가리노 눈에 띄게. 마스크 쓰지. 코로나 때문에 그게 자연스러운데. 마스크는 눈 위만 보여 나이 구분이 어려운데. 다들 마스크 쓰니까 일일이 신분증 보자 하기 쉽지 않은데. 그러고 보면 녀석은 무구와는 거리가 있지만 깔끔한 피부만큼 순진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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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후.
초등학교 3학년쯤 보이는 여아.
천 원권 다섯 장을 내밀며 오천 원짜리로 바꿔달란다.
드문 일이다. 이 또래에 100원짜리를 500원, 천 원짜리로 교환은 흔히 있지만.
어린 고객이 원하는 대로 교환해 준다.
오늘은 이상한 일이 겹치는군.
10분쯤 후.
할머니 한 분. 허리 굽혀 손바닥에 체중을 실어서 힘겹게 강화유리 도어를 반쯤 연 채로,
"조금 전에 누가 담배 사갔나요?"
"누구요? 담배 사는 사람은 많아요."
"학생이요."
"아, 고등학생이요? 담배 달랬는데 안 팔았어요."
"아니, 여자애. 어디로 갔지?"
"아, 어린애요? 천 원짜리를 오천 원권으로 바꿔달라던데요. 담배 달라고 안 하던데 왜 그러시는데요?"
"나한테 담배 사 달라고 했거든."
할머니는 내게 물을 때는 머리를 내쪽으로 향하고, 내 대답을 들을 때는 고개를 돌려 아파트 정문 쪽으로 멀리 살핀다. 여아를 찾고 있는 거다.
아시겠나요? 담배 한 갑에 얽힌 사연을.
진행 순서는 7단계로 이렇답니다.
학생과 나ㅡ거절
학생과 할머니ㅡ부탁, 거절
학생과 여아ㅡ지시
여아와 할머니ㅡ부탁, 거절
학생과 여아ㅡ재 지시
여아와 나 돈 교환
할머니ㅡ추적
흔히 학생은 할머니에게 담배 사달라고 부탁한다. 때로 500원가량 웃돈 얹어 주면서. 그걸 할머니가 거절.
학생은 여아에게 아빠가 담배 사 오라 한 거라고 할머니에게 부탁하라고 여아를 할머니에게 보낸 거. 그걸 할머니가 거절.
학생이 다시 여아를 내게 보낸 건 카운터 교대했는지 확인용. 월드 베스트 편의점 알바를 지향하는 나 아닌 초짜 알바면 신분증 확인 안 하고 담배 파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아님 여아가 담배 달라는 말이 안 나오니까 돈 바꿔달라고 한 거.
아둔한 남고생과 천진한 여아.
할머니는 둘 다 알고 있고 험악한 세상에 담배보다 여아가 염려되어 뒤를 쫓는 거다. 이쯤 되니 나도 걱정. 근무지를 이탈할 수는 없고. 허나 백주 대낮이고 혹시 할머니가 여아를 못 찾아도 경비나 경찰에 도움을 청하면 될 거다. 여기까지 와 확인하시는 거로 보아 할머니는 그러고도 남으실 분. 걱정을 던다. 다음에 이런 경우엔 내가 바로 긴급신고 112로 전화해야겠다. 학생에겐 엄한 주의가 여아와 부모에겐 지도가 필요하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아이를 지키려 애써주셔서.
아이가 귀한 시대.
아이는 우리 모두의 희망!
우리 모두의 미래!
혼자 문 밖을 나선 아이는 우리 모두가 보호해야 한다.
청소년도.
희망이자 미래인 건 마찬가지니까.
2020. 0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