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공장 1억 8천만 원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의 모든 것
"너는 장남이니까 커서 동생들 돌봐야 한다."
부모님은 어린 내게 늘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사랑을 내게 몰아주었다. 입사 다음해 아버지 돌아가셨다. 어머니마저 잃을까 두려워 서울서 떼를 써서 고향 원주에 자리가 난 사업부로 옮겼고, 결혼해 어머니를 모셨다. 몇 년 후 평생 그리 살기로 마음 먹고 대기업 사장의 목표를 접었다. 자영업으로 스스로 사장에 취임했다. 그때가 97년 3월. IMF가 터지기 6개월전이었다. 그 무렵부터 막내에게 20여 년 월급을 주었다. 한창 사업 잘 나갈 땐 대기업 부장급 수준. 막내는 중간에 40세 넘자 풍이 왔지만 그 돈으로 자식 셋 잘 키웠다. 사업은 흥했다가 망했다가 기사회생. 어느덧 자영업 특히 길거리 매장 시대가 저물었고 아이 둘도 장성해 반퇴. 막내도 자동 반퇴.
헌데 사업 정리하면서 내 빚 가리느라 막내에게 퇴직금으로 목돈을 챙겨주지 못 했다. 매달 생활비 보조 정도 주다가, 그마저 내 코가 석 자라 용돈 수준으로 줄였다. 나보다 장가 일찍 간 덕에 자식들이 직업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막내는 외견상 멀쩡해 보이나 한쪽 팔다리가 힘을 제대로 못 쓴다. 8살 차이라 나보다 젊지만 체력이 달려 노동은 어렵다. 가방끈도 짧고 기술도 없다. 진작부터 홀애비라 자식들에게 생활비 받는 거 같은데 얼마 되겠나. 자식들도 부담일 거고. 그렇게 3년여. 코로나까지. 막내를 보면 마음이 늘 무거웠다. 아부지, 엄마가 동생들 돌보라고 했는데...
그러던 중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이 잘 된다는 유튜브 정보. 손님이 안 보이고, 몇 백 원짜리 하드 팔아서 뭔 돈이 되나 싶어 지나쳤었다. 검토해보니 앗, 이거다! 막내에게 딱 맞다. 게다가 품목만 다를 뿐 16년전부터 이미 대박 경험 있는 복합 매장. 단일 제품군으로 월 매출 4천만 원이던 20평 매장을 세 제품군 복합 매장으로 변신 하니 월 매출 1억 3천으로 폭등. 그중 한 파트를 무인으로 운영. 원리야 같으니 수가 훤히 보인다. 막내에게 매장 하나 차려줬다. 투자비는 막내가 내라했다. 자기 사업에 자기 돈 들어가야 정신 바짝 차리니까. 빵이 아니라 작은 빵공장을 차려준 거. 입지, 점포 물색부터 오픈까지, 그후로도 매장 운영에 관해 기초부터 세부까지 차근차근 가르쳤다. 반 년 되니 이제 제법 한다.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돌연변이. 진화하면서 10년은 간다고 본다. 막내 매장은 순이익 월 평균 130만 원, 년 1,500만 원. 10년이면 1억 5천만 원. 권리금 3,000만 원 가치는 보너스. 막내가 무척 좋아한다. 운동 삼아 일하니 건강 나아지고. 혹시 풍 도져서 자리에 누워도 조카 셋 중 하나가 부업으로 운영 가능, 치료비로 쓰든지 모았다가 간병비에 보탤 수 있다. 혹시 다점포 하게 되면 하나 더 할 의향 있나 슬쩍 떠보니 내심 예상대로 이거 하나면 딱 좋다고. 사흘전 막내와 매장 일 끝내고 점심을 함께 했다. 무더위라 냉면 두 그릇. 계산하려고 일어서려는데
"형, 잠깐만. 내가 계산할 께."
"아니다. 내가 해야지."
저번에 콩국수 먹을 때도 그러더니 또.
이제껏 형이자 직장 상사였던 내가 당연히 냈었다. 막내가 식대를 계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근데 내 자리가 일어서기 불편한데다 막내가 카운터쪽. 막내가 후딱 계산을 마친다. 막내에게 처음 얻어 먹은 거. 한동안 월급이 끊겨 궁핍하다가 이제 밥 한끼 살 형편은 된 거다. 형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오늘 날이 더우니 매상도 오를 터이고.
이틀전에는 미팅 중에 막내가, 형, 이거 봐 배를 내보이며 자랑한다. 배가 쏙 들어갔어. 맨날 당구장 가다가 이 일하고 나서 끊고 몸이 좋아졌어. 그러고 보니 허연 거미줄 친 거 같던 낯빛이 육상 선수 모냥 갈색에 요즘 말수가 늘고 쾌활하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막내에게, 요즘 너와 점심 외식을 자주 하네. 우리가 이십 몇 년 사업을 같이 했어도 둘이서 점심을 가게 밖에서 외식한 적은 없는 거 같아. 과연 그랬다. 월 2회 가게 문 닫고 쉬는 날은 피곤해 잠자거나 각자 가족과, 근무 날이 겹치면 매장서 손님 받아야 하니 시켜서 먹었다. 어머니 장례식, 명절조차 형제, 조카들과였지 둘만 오롯이는 아니었다. 무인 매장 하니까 자유를 누리게 된 거.
퇴직금 달란 적은 없지만 막내에게 마음의 빚을 갚았다. 약속한 적은 없지만 부모님의 당부도 지켰다.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덕분이다.
"너는 장남이니까 커서 동생들 돌봐야 한다."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에게 결코 이 말 한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