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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Aug 23. 2019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대


결혼, 결론





- 여기 앉을까? 아님 창가 자리?

- 아냐, 여기 괜찮다. 이게 니거지?

- 응, 고마워. 날이 춥긴 춥다.

- 그래도 난 더운 것보다 추운 게 나아.

- 난 뭔가 모호해진 것 같아. 옛날엔 뚜렷하게 더운 게 좋았는데.

- 늙는 거야.

- 늙는 거야?

- 응.






- 남편한테 전화 안 해도 돼?

- 아, 아까 너 화장실 갔을 때 했어. 오늘 늦는다고.

- 뭐라 안 해?

- 응, 오히려 집에만 있지 말고 친구도 좀 자주 만나고 그러래.

- 어때?

- 뭐가?

- 결혼하니까.

- 좋지.

- 뭐가 좋아?

- 다 좋지.

- 나 집에 간다?

- 알았어, 알았어. 민망해서 그런 거야. 음, 뭐가 좋냐면. 나 말해도 돼? 너 지금 남자 친구 없잖아.

- 말해 봐. 솔직히 난 정말 모르겠거든. 결혼을 하는 게 뭐가 좋은지.

-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대.

- 어딜?

- 몰라.






- 그게 뭐야. 그럼 혼자선 빨리 가더라도 결국 멀리 못 간다는 거야?


- 몰라.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런데 뭔가 단단하지 않아? 같이 간다는 거. 멀리라도 혼자 후다닥 가버리면, 시간이 많이 남아서, 뭔가 허무해질 것 같아. 그런데 같이 간다는 건 좀 다부진 것 같아.


- 어떤 느낌인지 좀 알겠다. 그래도 좀 비약적인 말인 것 같지 않아? 세상엔 혼자서도 멋지게 살아가는 인생이 있잖아. 빨리, 멀리에 도달해 있는 인생들. 그런 사람들한테도 결혼하라고 말할 거야?


- 말은 모르겠고, 그냥 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할 것 같아. 내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도 아니고, 결혼 비용 다 대줄 재단을 세울 것도 아니긴 한데... 결혼을 해보니까, 다른 세상이 있더라고. 마냥 행복한 거 말고, 연애할 때나 혼자 지낼 때랑은 또 다른 차원? 누군가를 참아내고, 받아들이고, 세워주고, 사랑해주는 거. 또 누군가가 나한테도 똑같이 그렇게 해주는 거. 그게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몰라. 행복해서 미치고, 괴로워서 미쳐, 진짜. 그런데 그렇게 내가 넓어져. 사람이 넓어지는 데엔 공부나, 경험이나, 대인관계 같은 것도 한몫 하지만, 한 사람을 내 안에 확 품어버리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는 것 같아.


- 또 한 사람 안에 확 들어가 버리는 것도?


- 어, 맞아. 두 개의 그릇이 넓어지고 넓어지고, 깨지고 깨지다가, 결국 하나가 돼서 수영장만 한 그릇이 될 것 같은 기분. 거기 안에 많은 물을 담고 천천히 가는 거야. 그럼 멀리 갈 수 있을 거 같아. 야, 내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고 있냐. 갑자기 웃긴다.

 

- 그래, 웃긴다. 너 같이 일 좋아하고 욕심 많던 애도 드물었는데.






- 그래서, 지금은 누구 없어?

- 응, 없어. 그런데 결혼은 하고 싶어 졌어.

- 결혼이 좋은 줄 모르겠다며.

- 솔직히 결혼 말고, 누굴 다시 만나는 게 자신이 없어졌어.

- 그래, 그만큼 힘들었지. 아무튼, 기다려봐. 너 되게 괜찮은 애야.

- 갑자기?

- 어, 갑자기.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Photo. ⓒEduard Militaru,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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