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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Jul 25. 2019

눕는 자리


결혼, 애정표현






    남편은 내 왼쪽에, 나는 남편 오른쪽에 눕는다. 남편보다 늦게 자는 내가 협탁과 스탠드가 있는 쪽에 눕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가구들을 옮기고 침대가 놓인 방향을 바꾼다 해도 나는 남편 오른쪽에 누워 잠을 자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남편에게는 오른쪽으로 돌아 눕는 습관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의 살이 내 몸에 닿아 있으면 잠들지 못했다. 좁은 방 안에서 동생과 같은 이불을 덮고 자더라도, 수련회 때 친구들과 같이 밤을 보내더라도, 지어 엄마의 품 속에서라도 말이다. 이런 나의 습관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무리 남편이라도 그의 발가락이 내 발가락에 닿아 있으면 영 불편해서 잠을 잘 수 없다. 다행히 그도 나와 비슷했기에 서로 서운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낮에는 달랐다. 연애할 때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일이 너무나 당연했고, 또 안 잡으면 그렇게 서운했다. 때문에 결혼을 하고 나서도 꼭 붙어 다녀야지, 하는 결심 아닌 결심도 자주 했었다. 아마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찡한 감동과 더불어 나도 꼭 저러고 싶다, 하는 소원올라왔기 때문일 거다. 반대로 노부부가 서로 저만치 떨어져 길을 걷고 있으면 그 모습이 안타깝게 보이기까지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한여름 데이트를 해보지 않고 결혼했다. 그래서 더운 날 잡은 손 사이로 열이 올르고 땀이 흐르는 경험은 해보질 않았었는데, 결혼하고 해 보니 그건 새로운 곤욕이었다. 첫 번째 여름에는 그냥 잡았다가 깍지를 꼈다가를 반복하며 공기가 통하게 했지만, 두 번째 여름에는 스킨십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손을 놓고 걷게 되었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걸어야만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예요!, 라고 드러내는 게 아니라는 나름의 대타협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손을 잡고 걷든, 그렇지 않든. 우리 사이에는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을 굳이 드러내고 또 남들에게 확인받으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사랑은 충분했다.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우리가 랑을 이해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준 책이다. 사랑은 살이 닿는 일이나 사랑한다는 말만으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사랑을 느끼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생경한 깨달음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사랑이 어찌 다섯 개 방법으로만 표현되겠는가. 분명 사람마다 섬세히 다를 것이고, 나도 남편도 각자 사랑의 방법이 다를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준으로 사랑의 유무와 크기를 말하기는 뭔가 찝찝하다. 세상엔 노란색있는 게 아니라 아기자기한 연노란색도, 영롱한 진노란색도 있으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부의 수만큼의 사랑색깔이 있을 거니까.


    이걸 깨닫고 나서는 손을 잡는 일에 고집을 피우지 않는다. 반드시 얼굴을 마주 보고 잠들지 않아도 된다. 카페에서 대화 없이 각자의 할 일을 해도 괜찮고, 며칠 떨어져 지내도 괜찮다.


    리 부부의 사랑은 그것들 말고도 훨씬 다채로운 색깔을 내뿜고 있다.







    어젯밤, 씻고 방으로 들어가 보니 남편이 내 침대 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아마 핸드폰을 충전하며 기사를 읽다가 잠이 들었을 거다. 나는 그를 깨워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곤히 잠든 모습이 예뻐 깨우지 않고 그냥 나도 남편 자리에 누웠다. 마주 보지 않고 자도 돼, 라는 마음과 함께.


    스탠드 불빛이 멀 조금 어두웠지만, 그런대로 책은 읽을만했다. 그렇게 책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뒤척였다. 습관대로라면 오른쪽으로 돌아 누워야 하는 남편이 왼쪽으로, 그러니까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어쩌다 왼쪽으로 돌아 누운 건지, 아니면 무의식 속에서도 나를 끔찍이 사랑해서 그렇게 한 건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괜히, 조그만 행복이 솟았.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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