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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May 21. 2019

다른 세대에, 다음 세대에


결혼, 소망







    나의 집중력은 우렁찬 차임벨 소리에 함께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좋아하는 책을 탐독하고 있던 중이라 살짝 짜증이 올라왔지만, 이내 웃음이 지어졌다.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늘 저렇게 마이크가 켜졌는지, 안 켜졌는지를 차임벨을 울린 다음에야 확인하신다.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아아, 아, 이거 소리 나가나? 톡톡, 아아.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아아, 삐이이익-


    아저씨, 마이크 잘 나와요. 말씀하셔도 돼요. 나는 속으로 아저씨를 응원하며 천장에 달린 스피커를 향해 귀를 쫑긋 세웠다. 층간 소음과 화장실에서의 흡연으로 인한 민원이 자주 들어오고 있으니, 주의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감사하게도 우리 윗집은 가끔씩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빼고는 소음이랄 게 없는 집이고, 옆집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뿐 어떤 소음도 없는 집이었다.


    사실 옆집에서 들리는 아기 소리는 우리 부부에게는 기쁨이기까지 했다. 어느 날부터 옆집 현관문 앞에 아기 물건들이 배달 오는 걸 봤고, 또 초인종 대신 노크를 부탁한다는 종이가 붙어 있는 걸 봤었기에, 옆집에 아기가 태어났음을 짐작했다. 여보, 옆집에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나 봐. 그 후로 몇 달이 지나고, 백일떡과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커서 죄송하다고 찾아온 옆집 부부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축하한다는 말을 직접 전해드릴 수 있었다.





    결혼하고 주변 어른들로부터 언제 아이를 가질 거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엄마와 시부모님은 둘이 잘 알아서 계획할 거라고 생각해주셨지만, 오히려 조금 먼 친척분들이나 가족이 아닌 어른들은 우리를 볼 때면 인사치레로 아이 소식을 묻곤 하셨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도 살갑게 웃으며 아직이에요, 라고 말씀드렸지만, 요즘에는 일부러 조금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나중에요, 라고 말씀드리고 있다. 이게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던져지는 질문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아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남편도 나도 길에서 빵끗 웃는 아이를 마주치거나, 인터넷에서 엉뚱한 장난을 치는 아이의 사진을 보면 엄마, 아빠 미소를 짓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물론 내 아이와 다른 사람의 아이라는 차이는 있었겠지만, 분명 아이들이 좋았고 지금도 좋다.


    심지어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끈끈한 유대감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아이를 가질 거다. (물론 나중에 나이 들면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가져요, 라고 말씀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런데, 조금 두렵다.


    태어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어쩌지. 과연 우리는 그 속에서 좋은 부모가 되어 아이를 기쁘고 맑게 키워낼 수 있을까. 바르게 가르치며 반듯하게 키워낼 수 있을까. 든든한 마음의 후원자가 되어 다 큰 아이에게 마음껏 날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꿈을 품으라고, 사랑하라고, 낮아지면 높아질 거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조금 유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건 이토록 고귀하고 책임감 높은 일이기에, 우리는 계속 유난을 떨 생각이다. 그리고 그 유난에 삶을 맞춰 보고 싶다. 누구의 아이라도 세상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작은 일에 감사하고, 운전할 때 욕 좀 덜 해 보려고 노력하고, 스스로 손해 보는 걸 선택해 보고, 나누는 걸 기뻐하고. 단 두 사람의 이런 노력으로 세상또렷한 온기를 뿜어낼 수는 없겠지만, 이런 노력을 하려는 사람이 우리 둘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옅은 온기가 피어오른다. 나쁜 일은 유독 눈에 띄지만 착한 일에는 숨는 성질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다음 세대에, 아니, 다른 세대에 불편을 끼칠 수 있으니, 화장실을 포함한 실내에서의 흡연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경비 아저씨는 이번에도 실수를 연발하셨지만, 어쨌든 무탈하게 방송을 마치셨다. 나는 속으로 아저씨께 감사했다. 아저씨 말씀대로 다음 세대에,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태어날 아이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작은 것들을 지키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볼게요.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Photo. ⓒkycha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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