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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아무개 Sep 13. 2023

그럼에도 살아진다는 무서운 말

지금부터 쓰는 단어, 문장, 문구 그리고 엉성하지만 하나의 '글'은 절대 피곤한 상태라 평소보다 적은 양의 술을 마셨음에도 취기가 돌아 작성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살아진다, 살아간다, 살아야겠지와 같이 이 땅에 타의에 의해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질문, 의문, 궁극적인 진리를 향한 고난의 한 부분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매우 심각하게 고민을 해오고 있었고, 그에 대해 일종의 중간 점검의 의미로,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우선 적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작성하는 것이라는 거다.


뜬금없지만 한동안 정치에 대해서는 외면에 가까울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정치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외면'을 신조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의외로 정치'외면'은 생각보다 편안한 삶을 보장한다. 아무런 고민을 가질 필요 없이, 누군가, 사회의 리더라는 사람들이 이끌고,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가민'하면 되기 때문이다. 살아가기만 하면. 자의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반평생을 살아온 지금도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전혀 꿈꾸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얽매여 있는 삶에 익숙해졌고,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밖의 삶을 꿈꿔본 적도 없다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은 타의에 의해서 태어났음에도 나의 자의식의 발로라는 오해를 기반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것,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거졌음이 당연하다. 숨 쉬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어색한 일이다. 공기 중에 떠도는 공기를 몸 안의 폐에 억지로 집어넣고, 양쪽의 폐가 쉬지도 않고 반복 운동을 통해 온몸에 활기를 불어넣는 복잡한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수 만년의 삶과 죽음이 반복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존재가 되었다. 숨을 쉰다는 것,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적, 정신적 요소를 붙잡고 있는 '몸뚱이' 밖의 공간에 떠돌지만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끌어들이기 위해 하루에서 수십, 수백 번의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고,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기를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당연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처음부터 자연스러울 수 있겠는가?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진다는 것과도 같은 말. 정치를 외면하고 살아온 삶이 사회가 바라는 자연스러운 삶일 수 있겠지만,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숨의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 마치 무성한 나무와 풀들로 가득한 숲에 지금부터 작지만 강한 흔적을 남기고, 흔적과 흔적이 쌓여서 오솔길을 만들어 내는 것을 어떻게 처음부터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듯이 살아지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때로는 슬그머니 일탈을 꿈꾸고, 때로는 그 일탈을 실체로 옮기며 살아야 하는 것 또한 삶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데 무려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는 이 시간이 과연 적당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 늦은 것인지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살아진다'라는 우리의 인생에 너무나 잔인한 말이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된다. 우리 주위에 수많은, 삶을 위협하는, 삶을 멍청하게 만드는 일들 속에서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진다'라며 자조적으로 말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애초에 목적이 불분명했으며, 그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때로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며, 이렇게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삶은 마치 우물 속 개구리가 바라보는 한정된 하늘만 허락받아 사는 삶이 뿐. 이런 삶을 '살아진다'라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이 과연 정상인 것일까? 자연스러운 것일까? 더 나아가 타의에 태어났지만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온전히 바라는 삶의 모습인 것일까?


당연히 받아들이는 일, 모두 그렇게 살아 라면 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넘겨버리는 일, 그럼에도 살아진다며 모두가 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튀며' 살 필요 없다며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일,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무섭다는 생각이 든 지금 이 시간. 그렇다면 나는 '그럼에도 살아진다'라는 말 대신 무슨 말일 하며 앞으로 살아야 할까?


술 한 잔의 알코올이 '살아진다'에 대해 이만큼 고민하게 만들었으니, 소량의 알코올에 진정한 감사를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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