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 향도 (11)
퇴소, 그리고 재검. 그리고, 또 재검 예약\
글을 쓰는 일을 게을리했다. 그냥 자판을 두드리기만 하는 것 같아서. 아직 구독자 수도 10명을 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나의 글은 아직 온당한 평가를 받기에도 민망한 레벨인데도 챗바퀴를 도는 것 같아서 글 쓰기를 두려워했다. 불안 노트나 일기 역시도 게을리했다. 게을리했다기보다는 새로 바꾼 병원에서 진단했던 것처럼 회피성 불안장애, 그러니까 압박감이 느껴지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려당한 논문을 다시 바라보는 것, 소설 퇴고 작업을 2달이나 미룬 것. 요즘 신승훈의 노래를 많이 듣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가사가 귀에 계속 맴돈다.
또 하루를 견뎌내 봐도 너잖아.
숨을 쉴 때마다 가시 같은 네가 있어.
사막 같은 맘으로 갈라진 기억으로
또 하루를 살아가.
그냥 잘 지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선물 같았던 누나와의 쉐이크쉑에서의 점심식사라던가 아니면 집 근처에서의 꽁술이라던가 그런 요소들이 분명 사소하지 않은 확실한 행복인데, 새벽 한 시 반에 따릉이를 타고 들어와 마주하는 감정은 온전한 우울이다. 나보다 나의 기분을 잘 짚어주는 가수들이 많은 이 시대에 이런 우울감을 틈만 나면 마주해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나는 대중의 기준에서 실패한 적도 없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건 슬픔이고, 이 승리자들의 땅에서 내가 머무른다는 게 어색할 뿐이다.
8층의 치과의사, 15층의 성공한 펀드 매니저. 그리고 매일을 함께하는 11층, 아니 우리 집의 누나까지.
나에게 합당한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럴 때마다 우울은 오래된 바지처럼 내 기분에 착 달라붙는다.
가족들에게만 공개했던 우울의 기록.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를 "견뎌내는 걸까." 오래전부터 느꼈던 생각이다. 나의 고통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겠지. 병원을 다닌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내가 나아져 가는지는 모르겠다. 약을 먹을 때, 그 순간만큼은 괜찮은데, 그렇지 않을 땐 여전히 현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것만은 기억해줘 거센 강물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친 세상을 두려워 말라는 데,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찬란해질 거라는 데, 나는 그렇게 될 자신이 없다.
지금 아프다면 너의 계절이 오는 거야.
나의 계절은 쓸쓸한 가을, 아니면 춥디 추운 겨울인듯한데, 어떻게 되는지.
폴 킴의 노래는 발라드가 아니다. 발라드라기엔 너무 따뜻하다.
모든 게 꼬여있는 듯한 기분. 다들 그럴 거라고 믿으며 잠들 수밖에. 머리맡엔 여전히 스마트폰 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