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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촌 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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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VN Solo Apr 17. 2020

hard knock life

이촌, 향도 (10)




 한, 두 달간 게을리했다. 책 읽기와 글 쓰기를. 내가 되고 싶어 하는 건 무엇인가? 작가? 끊임없는 회피처럼 느껴졌고, 정말로 도피를 반복하는 걸 수도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20명대로 줄어들었다는 뉴스와 함께 카페는 붐비기 시작했다. 자영업자들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도피처와 은신처가 필요한 나는 끼어들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하이에나가 되었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가족의 말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루한 논문 작업이 아니라 그냥 쓰기를 말이다. 소설을 고치고, 이렇게 에세이를 쓰고.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이 되어야만 할까? 요즘의 나는 여전히 '나의 쓸모'를 걱정한다. 마음의 병이다. 가족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 가족의 사랑이 아직 낯선 건 사실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실패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고, 그 결과 실패와 절망이 붕괴되는 현장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문제, 마음의 병, 조급, 강박, 불안 그 어떤 부정적 단어들을 넣어도 말이 되는 게 나의 본모습이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닫기가 힘든 순간들을 반복하는 중이다.

 동네의 카페에는 말소리와 키보드 소리가 어우러져 부드러운 백색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버지는 공익을 시작하게 되면 부산에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나는, 거부했다. 10년째 적응하기 힘든 이 도시에서 속된 말로 결판를 보고 싶은 것이다. 이 또한 하나의 강박이고 내 불안의 원인이겠지만 힘들게 공익을 끝내고 졸업하고 나서 또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을 테니까.
 결론은 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다는 거다. 내가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어 날 찌른다. 매번 나를  몰아넣고 나면 나는 지난번과 똑같이 산산조각 난 채 깊은 우울로 빠져들 테니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나아지길 원하는가? 아니면 다시 추락하길 원하는가? 정말로 여기가 밑바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도 내려왔다. 내면을 찾아서. 각종 죄책감과 불안, 아픈 마음을 숨겨두기 위해서. 하지만 더 이상 시추만 할 순 없다. 지구 반대편으로 길을 모두 뚫으려면 그 뜨거운 핵을 지나가야 한다. 나는 충분히 깊게 삽질을 했다. 원유가 터져 나올 땐 원유를 정제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다시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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