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촌 향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VN Solo Mar 09. 2020

아, 오늘 출근 안하지.

이촌, 향도 (9)


 여섯 시 반, 눈이 떠졌다. 양치하고 아침 물을 마시고 난 다음 생각했다. '아, 오늘 출근 안 하지.'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벌써 습관이 되어 있었다. 더 잠을 청해보지만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피곤한데, 정신은 날 붙잡고 힘껏 일으켰다. 월요일, 남들 출근할 시간에 다시금 백수가 된 나. 별로 춥지 않을 테니 얇은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집을 나왔다. 목적지는 한강공원. 아주 해가 뜨기 전이나 아주 밤이 중천일 때만 다니던 길을 오늘은 낯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이게 자유를 잃었던 자들이 다시 자유를 쟁취할 때 느꼈던 기분이었을까? 멜 깁슨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길어진 해는 먼저 나와 날 반겼다. 조금 쌀쌀한 듯했을까 걷고 뛰고 하다 보니 적당한 온기가 돌았다. 강변에는 사람들보다는 자전거가 더 많이 다녔다. 이어폰은 잡신호 캔 슬링 기능이 없지만 궁합이 잘 맞아 음악이 들릴 땐 웬만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역시 QCY는 최고의 회사임이 틀림없다.
 목적지는 한강대교. 한강대교 건너편에는 아직 E와의 기억이 남아 있다. 벌로 만난 것도 아니었던 사람이 자꾸 가시가 되어 힘껏 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한강대교를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걸어선 딱 한 시간, 뛰어선 이십 분이면 될 거리였다. 오늘은 뛰다 거인지를 내키는 대로 반복했으니 40분쯤이 걸렸다. 집까지 걸으며 'Jasmine'을 들었다. 갈 때는 괜스레 '멀어'가 재생되는 기분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편안했다. '지안', 오늘 오전의 나는 편안함에 이르렀다.

 돌아오니 다시 잠이 쏟아졌다. 요즘 먹는 약 때문이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어제도 대낮부터 밤까지 계속 졸음이 몰려왔다. 덕분에 회사 때문에 졸았던 게 아닌 거로 판명되었다! 물론 주말에도 열심히 잤지만 다 그럴 테니, 아, 월요일이 더 졸리고 피곤한가? 내일도 잠이 온다면 틀림없이 병일 것이다. 침대에 좀 더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점심 약속 때문에. 느긋한 월요일의 점심 약속. 즐거운 퇴사.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상가 그 덮밥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