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촌 향도

지하상가 그 덮밥집

이촌, 향도 (8)

by HVN Solo


몇 번의 이별 끝에 동네엔 전 여자 친구들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았다. 공교롭게 그들은 멀리로 이사했고, 나만 여전히 이 도시의 중심지에 산다. 이따금 에펠탑의 낙서, 남산타워의 자물쇠처럼 과거의 마음과 만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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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서 돌아오는 길, 사촌 동생과 SNS를 이야기하다 문득 E의 소식이 궁금했다. 내가 그간 좋아한 정도로 따지자면, 그렇게 높은데 위치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헤어지고 난 후 약과 술에 취해 (전에는 해본 적 없던) 연락을 여러 번 했고, E는 몇번 전화를 받다가 나를 차단했다. 전화도, 카카오톡에서도. 사촌 동생의 폰으로 로그인해, 전화번호를 검색해 E의 업데이트된 사진들을 보았다. 그녀와 만날 땐 전화번호를 외우질 못했다. 이미 최근 목록에 항상 올라와 있었고, 카카오톡을 전화를 했으니까. 헤어지고 난 후에야 전화번호가 선명히 기억에 남았다.
E는 잘 살고 있었다. 헤어질 때 내가 준 가방을 메고 찍은 사진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제 그 가방을 잘 메지 않는듯했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E는 전보다 더 예뻐진듯했다. 그리고 퇴사를 했던 건지,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난 건지 자주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누가 세 달 동안 프사를 일곱여덟 번 바꿀까?) 사진을 보고 나니 E에 대한 궁금증(과 인정하기 싫은 그리움)이 좀 풀렸고, '그래, 나도 나의 삶을 살아야지'하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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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해서 변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와든 헤어질 땐 싸움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통보받았을 뿐이다. 나는 구차하게 붙잡지 않았고 그저 보내주는 사람이었다.
여러 문제로 인해 불안장애와 다투고 있으며, 가족들에게는 대부분의 문제는 말했다. 하지만 연애 문제만은 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실연의 아픔도 다른 문제처럼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 했을 텐데 말이다. 계속 생각이 나는 건 가장 최근에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차단까지 당했으니 더더욱 생각날 수밖에 없다. 한적한 한강공원, 지하상가 그 덮밥 집,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전지현의 건물이라는 스타벅스에 까지도 E의 망령은 여전히 날 감싸고 있다. 아, 우리 집의 내 방에도. 나는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그리워하게 되었을까. 마음은 알 수가 없다. 내 마음도, E의 마음도.


015B - 1월에서 6월까지 (feat. 윤종신)

Covered by 장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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