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벤처캐피탈을 만든 벤처캐피탈리스트 이은세의 이야기 (1)
“작가님, 매운맛이 필요합니다.”
출간을 논의 중인 출판사 대표가 말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주문하는 것도 아닌데 웬 매운맛이지?’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업계 관계자를 인터뷰이로 섭외할 수 없을까요?”
그의 말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분이 있었다. 이은세 대표였다. 테크스타즈 코리아의 전 대표이자 현재 541벤처스의 대표였다. 그와 링크드인으로 연결은 되어 있지만 대화를 하거나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포스팅을 보면 돌려 말하거나 포장해서 말하는 법이 없었다. 평소 거침없이 발언하는 분이라 거절 역시 쿨하게 하실 것 같았다.
‘그래도 요청을 읽고 회신 안 하는 것보다 거절당하는 게 깔끔하지 않나?’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대표님의 스토리를 글로 담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회신이 왔다.
“현재 미국에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귀국 후 말씀 나눌 기회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후 선릉역 근처에서 그와 대면할 수 있었다. 상대방을 압도하는 큰 키와 덩치는 내가 절로 극존칭을 구사하게 했다. 미팅을 시작하는데 호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휴대용 손 세정제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어서 위생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커다란 덩치와 대조되는 섬세함에서 이미 대화의 희열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61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리를 정리하기 전 그에게 물었다.
“상당히 솔직하게 말씀하셨는데 이대로 써도 괜찮아요?”
거침없이 말한 그와 달리 퇴고 과정이 길어질까 봐 걱정되었다. 섬세한 거구의 이은세 대표는 말했다.
“작가님, 저는 미국 LA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지 않아요. 편하게 쓰세요.”
그와 작별하고 출판사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매운맛 준비되었습니다.”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세라고 합니다. 저는 LA에 있는 541벤처스의 창업자이자 매니징 파트너예요. 541벤처스는 시드 단계의 프런티어 테크 스타트업에 시드 단계의 투자를 하고 있어요.
프런티어 테크란 무엇일까요? 현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미래의 기술적 발전을 위해 도전해야 할 난관들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말해요.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 나노기술 같은 분야가 그 예시라고 할 수 있죠.
저희는 최소한 한 명의 아시아계 공동창업자가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 있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 중 한 명의 아시아계 공동창업자가 있거나, 아시아에 있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 미국으로 건너와 조금 더 큰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희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어요.
Q.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지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었나요?
저는 학교 친구들보다는 학교 밖에서 만난 친구들과 더 친했어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서 즐기는 것이 더 좋았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들과도 많이 어울리고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다행히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를 알아서 잘하길 기대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저의 작은 일탈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제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도록 당시의 환경이 잘 형성되었던 것 같아요.
Q.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어떻게 결정하였나요?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네스트’라고 하는 국내 최초 게스트하우스에서 제네럴 매니저로 일했어요. 사실 알바와 다를 게 없는데 제가 혼자여서 게스트하우스 내 모든 일을 제가 도맡아 했어요. 그곳에서 한 친구를 만났는데 어느 날 저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어요.
“혹시 우리 아버지 일도 좀 도와줄 수 있을까?”
“그래, 그런데 위치가 어디야?”
“호주.”
그렇게 얼떨결에 호주로 건너가 1년 동안 지내면서 다양한 경험도 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이 이처럼 넓은데 왜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로 진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거지?’
그때는 대기업 말고는 해외 진출을 생각하는 기업이 거의 없었거든요. 저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할 때쯤 계획을 실행에 옮겼죠.
Q. 그게 경영/전략 컨설팅펌인 EICG를 창업하게 된 계기였나요?
맞아요.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기업의 사장님 회장님들을 만나 전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저는 처음에는 그냥 엑셀과 파워포인트로 멋진 자료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략 컨설팅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죠. 전략이라는 건 브랜딩도 중요하고 전문성도 필요한 거였어요. 저는 그런 걸 모르고 용감하게 시작했던 거죠.
2010년대 초반 LG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맥킨지와 결별한 일이 있었어요. LG전자가 맥킨지의 컨설팅을 받아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 진입하고, 피처폰에만 집중한 것이 큰 실패로 평가되었어요. 맥킨지는 LG전자에 기술 대신 마케팅을 강조하고, 애플의 아이폰을 따라가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 변화를 잘못 예측한 것으로 밝혀졌죠.
이후 LG그룹은 2010년부터 맥킨지와의 컨설팅 계약을 중단하고, 2011년에는 LG경영연구원을 설립하여 내부 컨설팅 역할을 수행하게 했죠. 쉽게 말하자면, “너희가 하는 거 이제 우리가 다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저는 당시 이걸 보면서 ‘그럼 너희가 할 수 없는 것' 그러니까 우리만의 고유한 전략 프레임워크가 있다면 최소한 그런 이유로 잘리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로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자는 다소 건방지고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깊은 고민과 세부 조율을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전략이라는 분야로 옮겨가게 되었고 2015년에 운 좋게도 파트너쉽을 유동화하게 되었어요.
Q. 연세대학교 및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MBA에서 사업 전략과 기업가정신에 대해 강의를 하였는데 주로 어떠한 내용이었고 수강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의 전문 분야는 전략이었고 주로 대기업이나 업계 1위 기업들이 저의 고객사였어요. 그래서 그들의 신사업 전략 수립을 도와주면서 스타트업이 가질 수 있는 우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강의할 때도 수강생들에게 스타트업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권했어요.
“여러분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낼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런 식으로 수업에서 화두를 던지고 수강생들의 참여를 독려했어요. 학교에서도 글로벌 교육과정으로 인정해 주셔서 교환학생들도 함께 들을 수 있었어요. 당시는 본교 학생들과 해외 대학 학생들이 협력할 기회가 드물 때였어요. 그런데도 16개 국가에서 온 약 50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여섯 학기 동안 저와 함께했어요.
수강생들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을 한 학기 동안 압축해서 경험했어요. 지금이야 이런 수업이 많지만, 당시에는 색다른 접근방식이었죠. 다행히 수강생들이 열심히 참여해 주었고 강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어요. 학교에서는 ‘3초 강의’라고 불렸는데 수강 신청할 때마다 3초 만에 정원이 마감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수업을 들었던 학생 중에는 나중에 미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컴비네이터를 비롯한 여러 훌륭한 투자사들로부터 투자받으며 멋진 회사를 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어요. 그런 친구들로부터 저에게 수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주는 걸 듣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뜻깊은 경험이었어요.
Q. 이노링크 캐피탈(InnoLink Capital)은 어떠한 목적으로 설립하게 되었나요?
한국 정부의 창조경제 및 벤처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하고 있을 시기였어요. 다양한 기관하고 협업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영어로 한국의 벤처산업, 모태펀드 등에 꾸준히 글과 보고서를 쓰고 있었어요. 그걸 본 LA에 있는 두 분이 저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우리가 벤처캐피탈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 시장이 중요하니까 네가 함께 해줄 수 있을까?”
저는 새로운 도전에 매력을 느꼈어요. 저도 창업자였기 때문에 다른 창업자들을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VC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민 끝에 LA에 있는 두 분과 합류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저희의 비전이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파트너 두 분은 유대인계 미국인들이었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걸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한국인 창업자들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이해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스라엘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어느 나라든 멋진 창업자들이 있으면 투자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합류한 목적이었거든요. 오히려 향후 협업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호혜적 관계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그렇게 저희는 비전의 차이로 인해 파트너십을 종료하였어요. 그렇게 이노링크를 떠나 2016년에 단독으로 새로운 투자사를 설립했어요.
Q. 이후 설립한 일레븐줄루 캐피탈(ELEVEN:ZULU CAPITAL)은 어떤 기업이며 이곳에서는 어떠한 역할을 하였나요?
저는 창업자들이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큰 시장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파트너십을 맺고 싶다는 의미로 일레븐줄루 캐피탈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죠. 처음에는 아시아 출신이거나 아시아 문화에 속하는 사람으로 국한하지 않았고, 가능하면 기술 중심의 회사들을 선호했어요. 그 이유는 훌륭한 기술은 국가나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벌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런 기술과 비전을 가진 창업자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일레븐줄루 캐피탈을 통해 지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계획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어요, 펀드를 만드는 것부터가 어려웠거든요. 투자 가이드라인만 정해놓고 자금을 먼저 모은 후 투자 물건을 물색하는 블라인드 풀은 결국 만들지 못했어요. 대신 펀드를 미리 조성하지 않고 투자 대상이 되는 회사를 발굴하고 투자자들에게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딜 바이 딜 투자는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8년에 저희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의 유년기는 여러 가족이 있는 한국에서 키우고 싶은 의지가 컸어요. 다행히 투자자들도 설명을 듣고 동의를 해주셔서 일레븐줄루 캐피탈은 잠시 멈추게 되었어요. 저는 언젠가 미국 LA로 돌아와 다시 시작할 계획이었어요.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릴지 몰랐지만 결국 541벤처스라는 새로운 회사로 돌아오게 되었죠.
Q. 2018년 국내로 돌아와 서울스타트업허브가 설립한 ‘비욘드 스타트업’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당시 지원한 스타트업들의 성과도 궁금합니다.
서울창업허브에서 ‘비욘드 스타트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정말 운이 따랐어요. 당시 저는 아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서울창업허브에서 글로벌 경험과 비전을 갖고 ‘비욘드 스타트업’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제안을 해주셨고, 저 역시 다른 창업자들을 도와주는 일이 좋아 합류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10개의 초기 스타트업을 선발하여 인큐베이팅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그중에 한 스토리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선발 당시 한 기업의 지원자가 면접장에 들어왔어요. 이 회사의 창업자는 대기업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커리어가 유독 돋보이는 분이었죠. 그런데 그분이 면접에서 자신 있게 선포하셨어요.
“저희는 구글을 잡을 계획입니다.”
상당히 대담하면서도 인상적인 포부였어요. 다른 심사위원들은 이 회사는 현실감이 없다고 했죠. 하지만 저는 그분의 비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는 이 회사를 반드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에는 선발되었죠. 그 회사가 바로 ‘스마트마인드’라는 회사였어요. 나중에 제가 테크스타즈를 맡게 되었을 때, 스마트마인드도 테크스타즈 포트폴리오로 편입되었어요. 창업자들과 벤처캐피탈이 이렇게 오래 인연을 가지는 건 드문 일이에요. 서울창업허브가 저에게 그런 인연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해요. 시 정책에 따라 프로그램이 종료되기는 했지만 저에겐 국내 초기 스타트업들을 밀접하게 인큐베이팅한 의미 깊은 시간이었어요.
Q. 테크스타즈라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의 한국 매니징 디렉터로 취임하게 된 과정과 테크스타즈에서 주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서울창업허브에서 ‘비욘드 스타트업’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 때 테크스타즈라는 최정상급 액셀러레이터와 인연이 생겼어요. 테크스타즈는 전 세계에서 약 50 개가량의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고 있고, 한국에도 진출할 계획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 액셀러레이터를 총괄할 매니징 디렉터를 찾고 있었는데, 저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어요.
테크스타즈의 프로그램들은 보통 어느 도시나 지역의 지명을 따서 만들어요. 예를 들면 테크스타즈 뉴욕이나 테크스타즈 런던 같은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만큼은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붙여서 테크스타즈 코리아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건 본사에서 한국 시장에 대해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저도 한국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매니징 디렉터로 임명되기까지 쉽지 않았어요. 본사에서 채용 과정을 아주 신중하게 진행했어요. 거의 8개월 동안 여러 차례의 면접과 테스트를 거쳐야 했어요. 저는 테크스타즈의 비전과 철학에 공감하고,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기여하고 싶다는 열정을 보여줬어요.
매니징 디렉터로 임명되고 나서 저의 임무는 액셀러레이터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었어요. 먼저 액셀러레이터 펀드의 투자자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어떤 분야에 투자할지 함께 고민하고 결정했어요. 그리고 자금을 모아서 펀드를 결성하고, 그 펀드로 투자할 스타트업을 찾아내고 선발하는 작업을 했어요. 약 4개월 정도 기간을 두고 거의 700개 가까운 스타트업을 만나 그중에서 10개만 골라야 했으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선발된 스타트업들에는 향후 성장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포함한 여러 도움을 제공했어요.
Q. 테크스타즈에서 투자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어요?
저는 테크스타즈 코리아의 매니징 디렉터로서 한국에서 글로벌하게 성공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스타트업이 꼭 한국인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테크스타즈는 이미 글로벌한 플랫폼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어느 나라의 스타트업이라도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투자할 수 있다고 봤어요.
사실 저는 당시에도 지금 541벤처스의 투자전략과 비슷한 투자관(Investment Thesis)을 가지고 있었어요. 바로 아시아계 창업가가 있는 핵심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었죠. 그런 면에서 테크스타즈는 제 투자관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적의 기회였어요. 결과적으로 테크스타즈에서의 경험은 저의 투자관을 조금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어요.
그 결과, 저는 투자할 때 두 가지 기준을 갖게 되었어요. 하나는 한국에서 시작해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스타트업이고, 다른 하나는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아시아인 창업가가 있는 스타트업이었어요. 결국 10개의 스타트업 중에서 3개는 제가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회사였어요. 그 회사들이 놀라운 성장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저는 자랑스러웠고, 541벤처스를 시작할 수 있는 확신을 얻게 되었어요.
다음 글에서는 미국 LA에 본사를 둔 541벤처스의 창업 과정과 벤처투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다룬다. 몇 번이고 다시 문을 두들겼던 그의 인정사정없는 미국 벤처캐피탈 도전기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