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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y 15. 2023

낯설고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불가능은 없다고 증명한 그녀

남은 평생을 보낼 업(業)을 찾은 벤처캐피탈리스트 김정윤의 이야기 (2)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스타트업에 투자하여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함께하는 전문가이자 파트너다. 최근 몇 년 동안 스타트업의 성장률이 높아지면서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수요도 증가했다. 하지만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안정추구심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야 한다. 안정추구심리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적인 환경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욕구다. 이러한 욕구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 분이 있다.


16년을 근속한 대기업을 퇴사하고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전향한 김정윤 그룹장이다. 그녀는 웹소설, 건강식품, 코리빙, 핀테크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수익성을 동시에 실현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커리어 전환과 투자 철학, 앞으로의 비전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불가능은 없다’는 말이 그녀의 삶에서 어떻게 증명되었는지 알아보겠다.




Q. 새로운 도전으로 벤처캐피탈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침 지인 중 벤처캐피탈 업계에 종사하는 분이 있었는데 어쩌면 벤처캐피탈이라는 업이 저와 잘 맞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지금 벤처캐피탈 양성과정 모집 중이니 한번 지원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제가 나이도 있고 이미 SK텔레콤에서 좋은 입지와 경력을 쌓은 상태라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냥 한 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했어요. 그런데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연락이 왔어요.



“김정윤 님, 벤처캐피탈 양성과정에 선정되었습니다.”

막상 교육 대상에 선정되니 걱정이 되었어요. 사실 익숙하고 안락한 터전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두려웠어요. 두 달 반 가까이 평일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양성 과정이 끝나고 취업을 못 할까 봐 걱정되었어요. 제가 고민이 길어지자 협회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양성 교육 끝나고 벤처캐피탈에 취업이 안 될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 


핵심을 찌르는 그의 말에 침묵으로 수긍하자 그가 말을 이었어요.


"면접관들 평가 결과를 보니까 김정윤 님이 가장 우수하시던데요. 이분들은 벤처캐피탈을 운영하시는 분들이고 채용 권한도 있으시거든요. 높게 평가했다는 건 채용 가능성도 높다는 뜻 아닐까요?”


그 말을 들으니, 고민을 길게 할 필요가 없었어요. 바로 벤처캐피탈리스트 양성 교육 등록을 했어요.


양성 교육이 끝나갈 무렵 여러 벤처캐피탈에서 관심이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지 않은 나이가 마음에 걸렸죠. 벤처캐피탈리스트 나이 마흔이면 대표 펀드 매니저를 하고도 남을 경력인데 이제 투자경력을 쌓는다는 게 도무지 무리로 보였어요.


Q.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부담이 크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벤처캐피탈 생태계에서 투자하고 수익을 내기까지 보통 7년 이상 걸리는데 이제 시작해서는 답이 보이지 않았어요. 심지어 대부분 대표펀드매니저의 요건 자체가 5년 이상 투자 경력을 요구하고 핵심운용 인력도 3년의 투자경력을 자격 요건으로 하였기에 절망적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처음 관심을 보였던 복수의 벤처캐피탈은 간접적으로 나이 때문에 채용은 어렵다고 의사를 전달했어요.


결과를 듣고 낙심하여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어요.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서 담당자분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김정윤 님 면접을 요청하는 곳이 세 곳이 있는데 면접을 진행해보시겠어요?”


나이가 또 문제가 될까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번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면접에 응했어요. 



결과적으로 저의 우려가 무색하게 세 곳 모두 합격하였어요. 최종 입사할 곳을 정해야 하는데 결정이 쉽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기업에서만 일해본 저에게 벤처캐피탈 업계는 아직 낯선 분야였거든요. 그중 전통이 있는 대성창업투자가 눈에 띄었어요.


대성창업투자는 실력 있는 벤처캐피탈리스트를 배출하는 벤처캐피탈 사관학교라고 유명했어요. 다른 벤처캐피탈은 경력에 따라 업무의 범위가 달랐는데 대성창업투자에서는 경력과 상관없이 넓은 영역의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입사한 지 2년도 안 되어서 펀드 조성부터 투자처 발굴까지 전 과정을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죠.


Q. 대성창업투자에서는 주로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셨나요?

첫 투자는 건강기능식품 전문 외주생산업체인 ‘네추럴웨이’였는데요. 숙취해소제 ‘상쾌환’을 만드는 회사로 유명했어요. 이 회사가 2년 만에 M&A가 되면서 저도 첫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두 번째 투자는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미디어’였어요. 이 회사는 국내 시장보다 미국 시장을 타겟으로 했어요. 미국은 오디오북이 활성화돼 있고, 사용성이 높은 서비스에 관심이 많은 시장이니 승산이 있겠다 싶었죠. 게다가 웹소설은 책보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죠. SK텔레콤 네이트 서비스를 담당하던 때도 카테고리 중 웹소설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거든요. 그래서 이 회사에 투자를 결정했는데 예상보다 더 빨리 성장해서 2년 만에 투자금의 8배를 회수할 수 있었어요.


ⓒ래디쉬코리아


그리고 젊고 미혼인 사회초년생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주는 코리빙(공유주거) 하우스 ‘엠지알브이(맹그로브)’라는 스타트업에도 투자했어요. 벤처캐피탈 업계에 들어오고 나서 동기들과 친해지고 어울리면서 그들의 고민을 듣게 되었어요. 대부분 젊고 미혼인 그들은 도심 내 합리적인 가격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렵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엠지알브이(맹그로브)가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투자를 진행했어요.


또한 해외송금의 핀테크 기업 ‘센트비’라는 스타트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2015년 개인사업자나 국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소액 송금 서비스로 시작한 센트비는 기업 해외 결제나 글로벌 송금·결제 서비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어요. 저는 특히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본국의 가족들에게 저렴하고 간편하게 송금할 수 있는 서비스여서 의미도 있고 실용적이라고 봤어요. 시중은행의 해외 송금 서비스는 비싸고 복잡하고 느리니까요.


ⓒ센트비


이외 데이터와 AI를 통해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 ‘마키나락스’에도 투자했어요. 2017년 말에 창업한 마키나락스는 6년 만에 MLOps 플랫폼 ‘런웨이(Runway)'를 출시했어요. 런웨이는 배터리, 화학, 반도체, 자동차,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AI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에요. 공장과 공정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학습해서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공정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주죠. 저는 마키나락스가 제조업의 공정을 지능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해요.


Q. ESG 관련 기업을 투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번지면서 ESG가 자본시장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어요. ESG는 기업이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ESG를 무시하면 기업과 투자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많은 기업이 ESG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였죠.


ⓒ대성창업투자



대성창업투자는 ESG가 화두가 되기 전부터 투자 검토 과정에서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하였어요. 투자 대상인 회사의 수익성이 높게 평가되더라도 ESG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면 투자하지 않았죠. 그렇다고 수익성이 낮은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은 아니에요. 벤처캐피탈리스트라면 기부금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이에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탄소 배출, 에너지 고갈, 물 부족 및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 건강 및 안전, 다양성 및 포용, 인권 등 광범위한 문제에 관해 관심이 커졌어요. 그런데 단순히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팔을 걷고 나서는 창업자들이 있어요.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며 ESG라는 약어는 다소 빛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그 아래 깔린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요. 저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 조력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사업에 투자할 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를 통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해요. 이것이 저의 사명이자 역할이에요.


Q. 앞으로 투자하고 싶은 스타트업 혹은 분야가 무엇인가요?

최근 몇 년 동안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에 걸쳐 활용되고 있어요. AI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모델(BM)을 만들어내는 역할도 하고 있죠. AI와 같은 기술이 접목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갖춘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또한 ESG라는 개념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도 주목하고 있어요.


Q. 김정윤 그룹장님의 투자관은 무엇인가요?

저는 투자를 할 때 창업자나 대표이사의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봐요. 작가님도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경험하셨겠지만,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의 인성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언어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투자 대상자와 대화할 때 그들의 언어 습관에도 주목하고 있어요. 언어 습관은 그들의 가치관과 비전을 반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자신의 사업에 대해 자신만의 세계관에 갇혀 있지 않고 미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을 좋아해요. 시장과 경쟁환경은 항상 변하니까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시장의 변화를 미리 파악하고, 경쟁자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적절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해요. 설령 시장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준비된 기업은 빠르게 대처할 수 있죠. 기업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것도 있어요.


Q. 벤처캐피탈에서 전문투자자를 꿈꾸는 분들에게 커리어 관련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벤처캐피탈에서 전문투자자로 일하려면 과거의 경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일을 하려면 지난 경험과 이력이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그런데 가끔 벤처캐피탈과 상관없는 일을 하다가 이쪽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제가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이기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만 벤처캐피탈이 결코 단순한 업은 아니기에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이종업계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뒤에 벤처캐피탈 전문투자자로 전향했어요. 나이도 젊지 않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경험해보니 한 분야에서 열정과 노력을 보였던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도 그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어요. 물론 처음에는 속도가 느리고 어려움이 많을 수 있지만, 이전 분야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새로운 분야에서도 큰 힘이 되어줘요. 저도 이전 직장에서 신규사업 기획과 M&A를 했던 경험이 스타트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투자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것이 저의 강점이자 자신감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고민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고민할 시간에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찾고 문을 두드리시는 게 꿈을 실현하는 데 오히려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어요.


Q.  김정윤 그룹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고 싶어요. 요즘 창업가분들은 영어에 능통하고 발표도 잘하셔서 해외 진출에 거부감이 없어요. 그래서 저도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에 지원을 해드리고 싶어요.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스타트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이루고 가치를 인정받기를 바라요. 이를 위해 저는 해외 벤처캐피탈과의 네트워크 구축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또한 국내 대기업들과의 협업을 촉진하고자 해요.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유망 스타트업과 협력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대기업은 몸집이 무거워 새로운 산업 분야에 진입하기 어렵지만,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활용해 내부 혁신 전략을 강화할 수 있고,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판로와 자원을 활용해 사업모델을 검증하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어서 서로 윈윈할 수 있어요. 때로는 가벼운 협력이 시작점이 돼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합병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역할은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라고 믿어요. 대기업이든 벤처캐피탈이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지 않으면 성장은 멈추고 도태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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