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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y 11. 2023

건강검진 후 16년 근무한 대기업을 퇴사하였다

남은 평생을 보낼 업(業)을 찾은 벤처캐피탈리스트 김정윤의 이야기 (1)

몇 달 전 종종 연락하고 지내는 스타트업 대표님과 식사했다. 내가 올해 퇴사를 하고 글 쓰는 것에만 몰두하는 게 안쓰러우셨는지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근황을 물어보셨다.


“그래서 책은 잘 준비되고 있어요?”


평화롭고 여유롭던 식사 분위기가 순간 긴장되고 무거워졌다.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서 쓰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어느새 근황 관련한 궁금증은 해소되었는지 나의 고충과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물으셨다.


“벤처캐피탈 심사역 인터뷰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세요?”


내 속을 다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나 또한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는지 말이 쏟아져나왔다.


“섭외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거부하시거나 꺼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몇몇 분들은 자신의 벤처투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시고, 다른 분들은 요청에 회신조차 하지 않으시고요.”


대표님은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물으셨다.


“제가 아는 벤처캐피탈 심사역이 한 분 계시는데 만나보실래요?”


대표님이 워낙 성실하고 성품이 좋은 분이었기에 추천하시면 신뢰할 수 있어서 바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그분에게 연락해 주세요.”


덕분에 몇 주 후 한 벤처캐피탈 투자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질문을 던지는데 그는 모든 답변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했다. 테트리스에서 블록이 어떻게 떨어져도 완벽하게 맞추는 것처럼 능숙하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심지어 대기업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과 마흔을 넘어 새로운 업에 도전한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터뷰이는 그간의 고생이 많았겠지만, 나는 새로운 시각에서 신선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아주 조용히.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4문장 이내)를 부탁드립니다.

대성창업투자에서 ESG투자그룹을 맡고 있는 김정윤입니다. 자기소개가 어색하고 쉽지 않네요. 저는 2003년 SK텔레콤에 입사해 SK그룹에서 16년간 근무를 하며 네이트 등 신규  서비스 기획, 신규 사업개발을 10여년간 하다 마지막 6년간은 전사전략 수립과 기업 M&A 및 합작법인 설립 등을 추진하였어요. 5년 전 직장이 아닌 남은 평생을 보낼 업(業)을 찾아 벤처캐피탈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호기롭게 도전하여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사실 아직 저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Q.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지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었나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게 특별히 없었어요. 학창 시절에는 학생의 신분에 맞게 학업에 충실했고, 대학교 진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 친구들은 저를 보고 자꾸 박사가 될 거라고 예언을 했어요.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으며 부인했지만, 결국 친구들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어요. 어쩌면 친구들이 저보다 저를 더 잘 알았을지도 모르겠어요.


Q. 이화여대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졸업 후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SK텔레콤에 취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별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꿈이나 목표가 없었어요. 그래서 취업을 준비할 때도 특정 회사에 간절히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죠. 그런데 우연히 대학교 때 SK그룹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어요. 어떻게 인턴을 하게 되었냐면, 이화여대와 SK그룹이 협약을 맺고 근무형 인턴십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거든요. 마침 여름방학이었고 다른 계획도 없어서 큰 기대 없이 지원하였는데 덜컥 합격하였어요. 그리고 교육을 받고 나서 네이트를 운영하던 팀에 배치되었어요.


ⓒSK텔레콤


SK텔레콤이라고 하면 통신사라서 휴대전화 판매만 하겠거니 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20년 전에도 콘텐츠 분야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어요. 그 덕분에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네이트와 준(June)이라는 서비스를 세상에 나올 수 있었죠. 네이트는 메일이나 검색, 톡톡 같은 유무선 포털 서비스였고, 준(June)은 피쳐폰 시대에 모바일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 프리미엄 멀티미디어 서비스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에는 경쟁사들도 부러워하며 따라하려고 했을 정도로 혁신적이었어요.


Q. SK텔레콤에서 16년 장기간 근무하였는데 주로 어떤 업무를 하였나요?

인턴십이 끝나고 SK텔레콤에 정식으로 입사하였는데 이전에 인턴으로 근무하였던 신규사업 부문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곳에서 신규 서비스 기획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1년에 서비스를 하나씩 출시했어요. 더구나 한 사람이 기획부터 운영까지 전부 도맡다 보니 업무 강도가 혹독하였지만 일이 재밌어서 오히려 일을 찾아서 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그때는 핸드폰 브라우저가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지원하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화면이 아니라 그래픽으로도 화면을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저는 이 기회에 네이트의 UI를 개선하자고 제안했어요. 기존에는 메뉴가 텍스트로만 상하로 나열되어 있어서 이용자들이 원하는 메뉴를 찾기 힘들었거든요. 제가 디자인이나 심리학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고민 끝에 화면을 격자로 나누고 각 칸에 이미지를 넣어서 더 직관적이고 친절한 화면을 기획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제 기획안이 네이트 첫 화면에 적용되었어요. 그리고 경쟁사인 KT와 LG U+도 비슷한 UI를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그걸 보고 정말 뿌듯하고 신기했어요.



그렇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일했어요. 제가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고 노력했죠. 나중에는 아예 이불을 갖고 출근을 했던 적도 있어요. 저녁 10시면 난방이 꺼지니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벽까지 일했어요. 당시에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Q. SK텔레콤에서 근무하시면서 내부 이동은 없었나요?

SK에서는 연말이면 각 팀의 팀장님들이 새로운 구성원을 내부에서 수혈하는 전통이 있었어요. 저도 제가 맡은 업무를 잘 해서인지 여러 팀장님들에게 제안을 받았어요.


“정윤 씨, 우리 팀에서 같이 한번 일해보자.”


그런데 저는 서비스 기획이 제 인생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팀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B2B 사업을 확대하려고 인수합병을 추진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인수합병을 담당할 TF팀을 구성했는데, 저도 그 팀으로 발령이 났어요.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저는 이 기회에 신규사업이나 합작법인회사를 만드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SK텔레콤이 커리어의 시작과 끝이었던 저에겐 M&A팀은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분야였어요. 덕분에 스타트업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정말 대단하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니.’



초기 창업자들의 열정과 비전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어요. 제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상상한 미래를 직접 만들어가고 있었죠.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노력만큼 회사의 성장도 빨랐어요. 그 때의 경험이 제가 벤처캐피탈 업계로 넘어오게 된 여러 계기 중 하나가 되었어요.


Q. SK텔레콤에 근무하던 중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하신 이유와 성과가 궁금합니다.

저는 신규 서비스 기획자로 일을 하면서 UX에 대해 많이 공부했어요. UX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의 줄임말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이나 인상을 가지는지를 말해요. 당시에는 UX라는 개념이 새로웠고, 인터넷에서도 정보를 찾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해외 자료를 구해서 공부하고 참고하여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있었죠. 그때가 바로 텍스트 기반의 인터페이스에서 그래픽 기반의 인터페이스(GUI)로 바뀌는 시기였어요. GUI는 눈에 보이는 그림이나 아이콘으로 서비스를 조작할 수 있어서 이용자들에게 더 친절하고 직관적이었죠.


저희가 만든 서비스를 선보이면 경쟁사들은 이를 참고하여 유사한 서비스를 준비하기 바빴지만,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조금 더 체계적이고 근거를 기반으로 한 전문가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기획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HCI는 사람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최적의 UX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죠.


ⓒUniversity of Michigan


마침 University of Michigan School of Information에서 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석사과정을 제공했어요. 사용자 경험, 인터랙션 디자인, 정보 시각화 등 다양한 HCI 분야를 다루는데 HCI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기에 최적의 교육 환경이었죠. 석사 과정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여 HCI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HCI팀에서는 다른 팀의 서비스 기획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어요. 예를 들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려는 팀이 있다면, 그 팀의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방향성을 잡아주었죠. 대기업에서는 순환 근무이다 보니 배경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서비스 기획을 맡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서비스가 출시되기 전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출시된 후에도 고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정성적인 인터뷰와 정량적인 데이터 조사를 통해 잠재적인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서비스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지독하게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이 제가 스타트업에 조언을 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커리어에서 쓸모없는 경험은 결코 없어요.



Q. 핀크라는 핀테크 기업으로 옮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했는데 이전 소속이었던 M&A팀이 전사전략팀 산하에 흡수된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때는 인터넷 뱅크가 큰 이슈였는데, SK텔레콤이 인터넷 뱅크 사업자로 선정되지 못했어요. SK텔레콤은 항상 일등을 하던 회사였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많이 아쉬워했어요. 그러던 중에 하나금융그룹에서 핀테크 사업을 하기 위한 합작법인 설립을 제안했어요. SK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은 예전부터 여러 사업을 함께 했었기 때문에, 금방 협의가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저는 그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일을 맡게 되었죠. 합작법인의 조직도와 인력 배정 등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니, 부사장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정윤 씨, 네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합작법인인데, 네가 가야지.”


저는 전략팀에서 일하는 게 좋아서, 회사 어린이집을 핑계로 완곡하게 거절하였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부사장님이 자신이 어린이집 문제 해결하였으니 마음 편하게 합류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된 이상 합류를 더 이상 미룰 순 없었어요. 사실 마음 한편에, 회사에서 새로운 마일스톤을 달성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침 UX가 저의 석사 전공이기도 하였고 제가 하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UX 설계부터 디자인 그리고 퍼블리싱까지 저희 팀에서 담당하였어요. 그 당시에는 목표 출시일에 맞추기 위해서 하루 종일 밥 한 끼 먹으면서 일에 몰두하였어요.


Q. 오랜 기간 근무하였던 직장을 퇴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워커홀릭이었어요. 일을 너무 좋아해서 건강은 뒷전이었고 하루에 3~4시간 자면서 일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죠. 그 결과 폐렴을 얻고 기관지도 약해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미뤘던 건강검진을 하였는데 종양표지자인 CA 19-9 수치가 정상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장암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일시적으로 수치가 올라간 거라고 생각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몇 달 후 재검을 받으니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어요.


“수치가 이전보다 더 올라갔는데 이 정도면 췌장암 아니면 난소암이 의심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해서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죠.


“나 죽더라도 절대 재혼은 안 돼. 우리 애들 불쌍해서라도 절대 안 돼.”


앞뒤 상황을 전혀 모르는 남편은 당시 무척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저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췌장암은 예후가 나쁜 암이잖아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의 5년 생존율은 8% 안팎이고 국내는 13%대에요. 지옥 같은 2주가 지나고 최종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다행히 암은 아니었어요.


암은 면했지만, 이 일로 평소 신념과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이렇게 일에 빠져 사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내일 죽으면 미련이 없을까?’


건강이 악화하니 우리 삶이 결국 유한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지난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가장 즐겁고 설렜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의외의 답이 나왔어요. 제 커리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 기획을 주도하던 때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에 비해 짧았지만, M&A팀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만나 그들의 열정을 마주하며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때였어요.




*이번 글에서는 김정윤 그룹장의 대기업에서의 16년간의 커리어를 마감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벤처캐피탈로 향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전문가가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했는지, 그녀의 투자 철학은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조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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