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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y 17. 2023

“편하고 돈도 많이 버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어?"

밀도 있는 성장이 간절한 벤처캐피탈리스트 김윤호의 이야기 (1)

"심사역님, 퇴고를 전부 마쳤습니다. 이제 발행해도 될까요?"


두 달 전 인터뷰를 진행하고 초안을 드리고 그의 의견을 다시 반영해 수정본을 몇 차례 주고받으며 인터뷰 글을 완성했다.


"작가님! 그렇지 않아도 회사 경영지원팀에 송부하고 피드백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과거의 시행착오 그리고 자신의 업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여과 없이 털어놓은 그였다. 나 역시 다시 한번 고칠지언정 그의 어투를 최대한 살려서 글을 썼다.


'그래도 졸업을 미루고 스타트업에 몰두했지만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 취업했다고 하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앞섰다. 내면의 갈등이 심해질 무렵, 그에게서 답이 왔다.


"작가님, 컨펌 났습니다!"


그의 답변에 다소 놀랐다. 경영지원팀에서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승인을 해줬다.


‘쿨하다. 다른 기업들의 홍보팀들은 보통 수정을 요구하던데.’


서둘러 글을 발행해야겠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




Q.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IMM인베스트먼트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는 김윤호라고 합니다. 저는 신소재공학을 전공했고, 학부 때부터 기술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해왔어요. 졸업 후에는 대학원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서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 들어가서 연구개발 업무를 맡았어요. 그런데 점점 반도체 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국내 최대 독립계 벤처캐피탈인 IMM인베스트먼트에서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IMM인베스트먼트


Q. 중고등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지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었나요?

저는 학창 시절에 공부에만 몰두했던 학생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과학고를 꿈꾸며 올림피아드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준비했어요. 그리고 원하는 과학고에 들어가서도 올림피아드와 대학 입시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했어요.


그렇게 공부밖에 몰랐던 저였지만 다른 학생들과 달랐던 점이 하나 있어요. 저는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거나 정해진 답을 찾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대신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죠. 지인들은 종종 이런 말을 했어요.


“대학교에 진학하면 원하지 않아도 연구와 논문 작성을 지겹도록 할텐데 왜 그렇게 서둘러?”


주위에서 공감하지 못했지만 저는 연구 주제를 정하고 실험을 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작성한 논문으로 국제 논문대회에서 수상도 했죠.



그리고 저는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화학을 잘하면 친구에게 화학을 알려주고 친구가 생물을 잘하면 생물에 대해 알려주며 서로 자신 있는 분야의 과외선생이 되었죠. 이렇게 하니까 혼자 공부할 때보다 개념이 더 확실하게 이해되고 기억되었어요. 또한 친구들과 함께라면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Q. KAIST에 어떻게 진학하게 되었고 전공은 무엇이었나요?

신소재공학은 다양한 재료들을 공부하는 전공이에요. 이전에는 유기소재공학과와 무기소재공학과로 구분되었다가 최근에는 섬유 및 다양한 금속공학으로 세분화되어있던 과들이 신소재공학으로 통합되었어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가 필요하고, 자동차는 합금재료, 골프채는 복합 재료, 휴대 전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파를 감지할 수 있는 재료가 꼭 필요해요. 신소재공학과에서는 이런 재료들의 구조와 성질을 알아보고 새로운 생체 소재나 기능 소재, 환경 소재, 첨단 소재 등을 개발하는 방법을 배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물리와 화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신소재공학과를 선택했어요. 신소재공학과는 물리학과 화학을 모두 균형 있게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물리학과, 화학과 등이 속한 자연과학대학이 학문적으로 깊게 파고든다면 신소재공학과를 비롯해 기계공학과, 바이오및뇌공학과 등이 속한 공과대학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학문이에요. 저는 이런 점이 저의 가치관과 잘 부합한다고 느꼈어요.


Q. 카이스트에서 MSK라는 곳에서 활동하였는데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MSK는 Management Studygroup in KAIST의 약자로 카이스트 내 경영 전략 동아리에요. 아무래도 카이스트가 이공계밖에 없다 보니 경영과 금융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예전에는 창업이나 금융 등 여러 분야를 다루었지만 제가 들어갔을 때는 경영 전략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컨설팅 회사에서 요구하는 논리적인 사고 방식과 장표 작성 기술을 배우고 연습했어요.


Ⓒ카이스트 경영전략학회 MSK


MSK에서 배운 역량은 컨설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했어요. 현재 MSK 동문들은 벤처캐피탈, 스타트업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근무하고 있어요.


Q. Moglue는 어떤 기업이었고 무슨 역할을 하였나요?

동아리 선배가 어느 날 학교에 찾아와 강의를 한번 한 적이 있어요. 벤처창업이 주제였는데 그 당시 본인이 창업한 얘기를 하며 투자받은 경험을 얘기해줬어요. 선배가 만든 서비스는 전자책을 만들 수 있는 툴이었어요. 이용자들이 흥미진진한 전자책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당시로선 아직 낯선 자이로 센서 활용 및 drag & drop 방식을 적용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앞선 서비스였어요.


그분의 강의를 듣고 너무 매료되어 쉬는 시간에 바로 찾아가 합류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업무경력은 전무하였지만 후배의 적극성이 기특하셨는지 팀원으로 받아주셨어요. 그래서 곧장 학교에 다음 학기 휴학 신청을 하고 CEO 스태프로 합류하였죠. 처음에는 워낙 잡다한 일을 구분 없이 하였는데 나중에는 마케팅을 담당하였어요. 코엑스에서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면서 부스 디자인부터 사전 마케팅, 사후 마케팅, 부대행사 등 전체적인 기획을 담당하였어요. 덕분에 각종 브로슈어와 홍보 카피를 기획하는 일을 경험하였어요.


ⓒMoglue


저는 이 일을 정말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하는 사업이 시대의 흐름과 잘 맞는다고 믿었거든요. 그리고 그 믿음은 두 가지 근거에 기반했어요. 첫 번째는 미국에서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어요. 그 순간 저는 한국에서도 전자책 시장이 커질 거라고 확신했죠. 두 번째는 아이패드 같은 스마트 기기가 등장했을 때였어요. 한 기기에 여러 권의 책을 담아서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니, 정말 편리하고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일에 열정적으로 임했어요. 하지만 한국 시장은 저희가 예상한 것처럼 빨리 변하지 않았어요.


Q. 이후 오픈서베이는 개발자로 근무하였는데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저는 신소재공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정보 올림피아드에 참가하며 멋진 개발자가 되고 싶었죠. 학교에서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을 때는 정말 너무 재밌었어요. 지금은 컴퓨터공학이 대세지만 그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컴퓨터공학을 부전공하고 싶었어요. 관련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고 하지만 앞으로는 컴퓨터 언어가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수업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직접 개발을 해보고 싶었죠. 그러다가 ‘오픈서베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고 이 회사가 하려는 일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웹 기반의 설문조사를 모바일로 옮기는 게 굉장히 획기적이었어요.


ⓒ오픈서베이


저는 설문조사가 시대에 맞춰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화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었듯이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말이죠. 그런데 아무도 도전하지 않고 있었죠. 그런 도전을 하는 오픈서베이에서 개발자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어서 너무 행운이었어요. 수업에서 배운 것과 실무는 아주 달랐지만, 덕분에 실제로 개발을 해보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요.


Q. 공동창업한 뮤지큐스에서는 개발자가 아닌 사업개발을 담당하였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음악을 엄청 좋아하고 래퍼가 되고 싶었던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있었어요. 친구는 원룸에서 밤낮으로 랩을 연습하다가 윗집이나 아랫집에게 소음으로 심한 항의를 받았죠. 그러다가 방음부스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가격이 500만 원이나 했어요. 아직 학생인 우리에게 그런 돈이 수중에 있을 리 없었죠. 한참 고민에 잠겼던 친구가 답을 찾은 듯 고개를 돌려 저에게 말했죠.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면 어때?”


저는 친구의 제안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바로 방음부스에 필요한 재료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죠. 찾다 보니 MDF 합판이라는 나무를 곱게 갈아서 접착제와 섞어서 압축한 보드판이 적합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흡음재랑 차음재를 사서 보드판 위에 붙이고 경첩을 달아서 조립하니 DIY 방음부스를 제작할 수 있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실험을 해봤는데 방음 효과가 생각보다 엄청 좋았어요.


하지만 본격적인 사업화를 생각할 새 없이 저는 군대에 가야 했고 친구는 집을 옮기게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방음부스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더니 방음 효과가 많이 떨어졌어요. 나사로 고정했던 부분이 느슨해지면서 틈이 생긴 거 같았어요. 저는 군대에서 친구와 전화로 사업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고 친구는 정부 지원사업에 지원하면서 사업 준비를 했어요. 전역하고 나서 저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어요.


기존 방음부스는 두꺼운 목재로 만들어서 흡음재와 차음재를 넣은 거였는데 너무 비싸고 무거웠어요. 그래서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 강철로 프레임을 만들고 벽면에는 방음자재들을 커튼처럼 걸 수 있게 만들었어요. 방음 효과는 수백만 원짜리 방음부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쓰기에는 충분했어요. 그리고 기존 제품은 전문 기사가 배송하고 조립해야 했지만 저희 제품은 화물 택배로 보내면 스스로 설치할 수 있었어요. 해체 및 재조립도 너무나도 간편했고요.


ⓒ뮤지쿠스


저희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를 통해서 펀딩을 진행했었어요. 목표 금액인 3천만원을 모았고 시장성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생각만큼 사업이 커지지 않았어요. 제가 배운 교훈이 있다면 제품의 우수성도 중요하지만, 시장의 크기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방음부스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성장 곡선이 가파르지 않았죠.


이후 저는 뮤지쿠스를 나와 삼성전자에 입사하였고 친구는 아직도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언젠가 친구가 이 사업을 한층 더 고도화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여 빛을 발하길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Q. 2018년 스타트업을 나와 삼성전자에 입사하였는데 당시 상황이 궁금합니다.

저는 카이스트에서 공부하면서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휴학을 하고 스타트업에서 일하거나 창업을 해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9년 동안 대학 생활을 했는데 더 이상 휴학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해봤고 이제는 진로 탐색의 여정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졸업을 준비하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해온 일들이 잘 인정받지 않는다고 느껴서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선택한 곳이 대기업 취업이었어요. 저는 언제나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삼성전자에 들어간다는 건 저의 꿈과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에 굴복하는 것처럼 느껴져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예전에 자주 하셨던 말이 생각났어요.


“때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보다 잘하는 걸 하는 게 맞을 수 있어.”


저는 제 전공인 반도체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 지원했어요.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 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을 연구할 수 있었어요. 반도체에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가 있는데 저는 비메모리 반도체 중에서도 파운드리라는 분야를 담당했어요. 파운드리란 다른 회사의 반도체 설계를 받아서 생산해주는 서비스를 말하는데 최근에 많이 주목받고 있어요.


Q. 3년 8개월 넘게 근무한 삼성전자를 퇴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기업 근무 4년차가 되었을 때 저라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성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느껴졌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매사에 남들보다 조금 더 밀도 있게 임하여 원하는 만큼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업무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배움의 깊이나 성장 속도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저마다 직급과 연차라는 게 존재하고 식별표처럼 작동해요. 그런 환경에서는 성장 욕구가 개인의 일탈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물론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신입사원인 저한테는 그 시간도 아깝게 느껴졌어요.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다 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편하게 일하고 돈도 많이 버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어?”



저는 짧고 유한한 인생에서 무엇인가에 전력으로 몰입했을 때만 성장한다고 믿어요. 그런데 대기업에 근무하며 몸과 마음이 편하니 성장이 정체되는 것 같아 외려 불안했어요. 그러한 고민이 겹겹이 쌓여 퇴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어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할 때 스타트업이 떠올랐어요. 이전에 창업한 경험도 있고 스타트업계에 관심이 많았는데 쿠팡이 나스닥에 상장하고 다른 스타트업들도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는 것을 보니 제 안에 잠시 꺼졌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죠.


‘내가 스타트업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


저는 반도체 전공자로서 벤처캐피탈에서 제 능력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국내 반도체 관련 산업에 투자가 증가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이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IMM인베스트먼트에서도 이러한 인재를 찾고 있었죠. 그래서 저도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되어 이곳에 합류하였어요.




*이번 글에서는 김윤호 심사역의 스타트업 취업과 창업 그리고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 커리어를 마감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벤처캐피탈로 향하게 된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의 결정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다음 글에서는 그의 벤처캐피탈 삶을 다룬다.


스타트업 구성원으로서도, 창업자로서도, 심사역으로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김윤호 심사역. 그렇다면 그가 보는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리고 심사역들도 창업자처럼 번아웃을 겪는다고 하던데, 그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한파가 부는 스타트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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