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후 Mar 15. 2024

남의 인생에 씻기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방법을 찾았다

2만 분의 1의 확률이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유명인사들도 이런 소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는 우리의 소명은 우주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은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타인의 삶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내가 찾은 해답이 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방법은 문신보다도 더 깊이 새겨지고, 그 어떤 향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또한, 그것을 받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조혈모세포 기증이다. 조혈모세포는 우리 몸의 골수에서 혈액세포를 만드는 세포이다. 혈액세포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감염을 막는 백혈구, 출혈을 멈추는 혈소판 등이 있다. 조혈모세포는 자기복제와 혈구분화라는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과 같은 세포를 만들 수 있고, 다양한 혈액세포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동안 조혈을 할 수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혈액종양이나 재생불량성빈혈과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이런 질환은 혈액세포의 생성이나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환자의 암세포와 조혈모세포를 항암화학이나 방사선 요법으로 제거한 후, 새로운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면 환자의 몸에서 새로운 혈액세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와 기증자의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해야 한다. HLA는 우리의 면역계를 조절하는 유전자이다. 하지만 이 유전자의 조합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치하는 확률은 2만 분의 1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증자가 등록을 해도 기증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등록 후 바로 일치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극도로 희귀한 경우고, 일단 기증을 예약했다면 10년에서 15년은 예사고 평생 기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기증자는 많은데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맞는 조혈모세포는 없어 기증자 기다리다가 이식 날짜를 못 잡고 악화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보다 못한 환자 부모가 아픈 자녀가 있는데 더 기다릴 수는 없고 자신들이 아직 가임기인 경우, 아예 형제자매 하나를 추가로 낳아 태반 내부의 제대혈을 채취해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특별한 기증은 단순히 생명을 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환자의 혈액형이 기증자의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혈액형이 변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식을 통해 그것이 가능해진다. 환자는 기증자의 혈액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며, 이로써 둘 사이에는 특별한 연대감이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한 번의 조혈모세포 기증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가족에게 희망을 선사하며, 기증자와 환자 사이에 영원한 유대를 맺어준다. 이렇듯 조혈모세포 기증은 우리의 삶이 타인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깊고 지속적인 흔적인 것이다. 


조혈모세포 기록희망등록증,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나 역시 최근 기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많은 이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유지하고자 술과 담배는 멀리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하늘 아래 누군가가 내 결정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면, 오히려 내가 기쁘고 감사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세상의 끝을 마주했을 때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작별을 고할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출판사 사정으로 출간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