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에 진심인 벤처캐피탈리스트 안준영의 이야기
최근 지인이 심사역으로 근무하는 롯데벤처스를 방문하였다. 스타트업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롯데벤처스의 지인과 흥미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발굴하고 투자했던 스타트업들에 대해 공유하였고 나는 내가 취재했던 스타트업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쓰신 글 봤는데, 저도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스타트업 대표도 아니고, 홍보 담당자도 아닌 벤처캐피탈 투자자의 인터뷰 요청이라니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 의도가 궁금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심사역은 외부에 알려지는 걸 별로 달가워 하지 않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의 답은 단순했다.
“스타트업 대표는 투자 유치에 나설 때, 자신의 모든 행적을 공개하는데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저와 같은 심사역은 거의 공개되는 게 없어요. 어쩌면 기울어진 운동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어떻게 성장하였고 어떤 투자를 지향하는지 공개하면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조금 더 편하게 찾아주실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좋아요. 아직 벤처캐피탈 업계 사람은 인터뷰한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벤처캐피탈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그리고 투자하셨던 혹은 투자할 뻔했던 스타트들도 시원하게 다 공개해주세요.”
그렇게 나는 벤처캐피탈 심사역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Q. 간단하게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A. 저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대표펀드매니저 안준영입니다. 벤처캐피탈에 입문하여 스타트업 발굴과 심사하는 역할을 맡아 기업 가치 100억에서 300억 사이의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왔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을 파트너로서 함께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단계입니다. 지금은 해당 기업들이 성장하여 후속 투자까지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영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Q. 중학교 때 영국에서 건너가 학업을 이어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저는 국내 교육보다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신 것이 발화점이 되었어요. 제가 수업 시간에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진도 나가는 데 지장을 줄 정도였다고 하셨어요. 질문이 많은 저에게는 국내의 주입식 교육보다는 해외의 구성주의 교육이 더 적합할 거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부모님과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하였는데 아버지가 영국이 기숙사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말씀하셔서 영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어요. 실제로 영국에서 학교를 다녀보니 교사에게 단순히 가르치는 역할보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상황을 제공하는 역할이 강조되는 것 같았어요. 돌이켜보면 당시 선생님의 발언이 제 인생의 경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죠.
Q. 대학교 재학 시절, 한인회장을 했는데 원래 무리에서 나서는 성향인가요?
A. 제가 재학했던 학교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이라는 곳인데 1826년에 설립된 연구 중심의 공립 종합대학교에요. 영국 대학들 중 처음으로 계급, 종교, 성별, 인종과 관계없이 학문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해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그리고 런던정경대학교와 함께 런던대학교를 구성하는데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어요. 런던대학교 내 한인 학생들과 교류가 많았는데 제가 아무래도 원만한 교우관계를 폭넓게 유지하다 보니 주위에서 추천을 많이 하였어요. 후보로 나서면서도 큰 기대는 없었는데 개표를 한 결과, 제가 당선되었죠.
Q. 대학교 재학 시절, 전공 외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어떤 분야였나요?
A. 사실 제 전공이 정보경영학인데 경영학 중에서 관심이 가장 많았던 과목이 두 개가 있었어요. 하나는 마케팅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사관리였죠.
그때 마침 미국의 교육 관련 출판으로 TOP3에 드는 McGraw Hill 회사에서 주최하는 마케팅 대회가 있었어요. 마케팅 예산을 집행하여 가상의 사업을 운영하는 대회인데 사실 거의 마지막까지 저희 팀이 1위를 놓지 않았어요. 하지만 종료 시점까지 마케팅 예산을 계속 집행하다 보니 어느새 비용 대비 효율은 점차 낮아졌어요. 반면 상대 팀은 비용을 적절하게 배분 후 운용하여 비용 대비 효율이 저희보다 높았어요. 가상의 시나리오였지만 단순히 마케팅 비용을 공격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또 다른 관심사가 인사라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기간 사업을 운영해보신 대표님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이에요. 지금도 투자를 고려할 때 대표이사 외 주요 인력들도 확인하고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신규인력들을 어떻게 영입할 것인지 집요하게 묻고 또 묻죠. 마지막으로 기존 인력들의 이탈을 막고 유지하기 위한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조직문화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스타트업의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주요임원들 그리고 더 나아가 핵심인력들까지 폭넓은 관계를 맺고 그들의 말 못 할 고민과 고충이 무엇인지 헤아리려고 해요.
Q. 졸업 후 벤처캐피탈업을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A. 졸업 시기에 맞춰서 IBM 런던오피스에서 컨설턴트 제안을 받았는데 당시 저는 이미 커리어는 꼭 한국에서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했어요. 그런데 국내에 들어와서 바로 벤처캐피탈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창업을 준비했어요. 해외 특히 홍콩과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 제품이 인기가 많아 홍콩에 법인도 세우고 제품 디자인까지 모두 준비했는데 아쉽게도 제품생산부터 더는 전개를 하지 못했어요.
호기롭게 시작했던 사업을 중단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벤처캐피탈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벤처캐피탈 신규인력 양성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었어요. 당시 양성과정이 흥미로웠던 것이 실제 벤처캐피탈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무, 이사들은 물론 대표님들까지 수업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육성 강연과 실제 사례를 당사자들에게서 들으니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중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님으로부터 들었던 강연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바이오 분야 투자가 주목받았고, 대부분의 VC 관계자가 바이오 산업 투자는 필수라고 하던 때였죠. 그런데 알토스벤처스의 포트폴리오에는 바이오 회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킴 대표님께 물었습니다.
"알토스벤처스는 왜 바이오 분야 투자를 하지 않나요?"
돌아온 답은 단순 명료했어요.
“우리는 모르는 분야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투자를 유행처럼 따라가지 않고,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하는 게 성공적인 투자라는 답변이었죠. 돌이켜보면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평소 ‘벤처캐피탈은 심사역이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를 계기로 알토스벤처스에 입사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쿠팡, 토스, 지그재그, 배달의민족, 크래프톤 등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스타트업들이 초기 단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미래의 유니콘을 알아보는 선구안을 가진 알토스벤처스에서 근무하였는데 당시의 경험은 어땠나요?
A. 2016년 인턴으로 합류하였는데 그냥 그곳에서 무척 바쁘지만 활기차게 돌아가는 사무실의 분위기가 좋았어요.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투자의 원칙은 무엇인지도 어깨너머로 익힐 수 있었어요.
특히 ‘지는 시장’과 ‘앞으로 뜨는 시장’을 분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아무리 기술이 월등해도 지는 시장에서는 장사 없거든요.
반면 뜨는 시장은 정성적으로 철저히 분석해, 선제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죠.
이때 만난 스타트업을 살펴보면, 미국에서 6개월~1년 전에 이미 시장에 소개된 사업 아이템·수익 모델이 많았어요. 주로 저는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한 초기 스타트업이 국내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 공급자와 고객·시장 등의 측면에서 분석했습니다.
기존의 시장 참가자가 오랜 학습을 통해 구축한 ‘비용 우위 상태’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력·추진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찾았죠.
Q. 이때 조사한 기업 중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은 어디인가요?
A.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운영사)였어요. 2015년 서비스를 출시한 비바리퍼블리카의 2016년 기업 가치는 600억 원 수준이었어요. 당시 핀테크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 국내 모든 벤처캐피탈이 투자를 망설였어요. 최근 한 경제지 인터뷰에서 비바리퍼블리카의 창업자 이승건 대표가 창업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2015~2016년을 뽑은 걸 보면 이해가 되죠. 그랬던 스타트업이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한 8800억 원쯤 된다고 해요. 시장에서는 20조 정도의 기업 가치를 예상하는데 사실 더 기업 가치에 집착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6년 만에 폭발 성장했죠.
알토스벤처스에는 경험이 적은 인턴의 의견에도 수렴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후 의사결정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했죠. 인턴 입장에서 파악한 비바리퍼블리카의 수치는 대부분 우상향이었어요. 데이터에 기반했다면, 투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는 의견을 냈죠.
여러 의견이 모여 알토스벤처스는 비바리퍼블리카에 투자를 단행했어요. 돌이켜보면 회사가 추구하는 ‘큰 시장에서 잘하는 플레이어에 투자한다’는 취지에 부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바리퍼블리카의 기업 가치 20조 원이라는 그 결정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했죠.
*작가 도움말: 투자심사보고서는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요약, 기업 현황, 재무분석, 시장분석, 사업분석, 리스크 분석 및 해결 방안, 투자조건, 종합의견 및 출구 전략 등이 모두 포함되어 보고서로 작성된다. 투심보고서는 "투심위(투자심의위원회의)" 투자 의사 결정을 하는데 핵심적 자료가 된다.
Q. 알토스벤처스를 나와 동문파트너즈에 합류하였는데 동문파트너즈에 합류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알토스벤처스에서 백팩커(아이디어스 운영사)에 투자를 진행한 시기였는데 주주명부에서 동문파트너즈를 발견했어요. 마침 제가 초기 단계에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에 스타트업에 있었는데 동문파트너즈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에서 3년 정도 근무를 하였는데 알토스벤처스에서 벤처캐피탈이 어떤 일을 하는지 배웠다면 이곳에서는 벤처캐피탈의 심사역으로 실제 투자까지 진행하였어요. 이론에 경험을 더하며 업계에 대한 한층 더 깊은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었어요.
*작가 도움말: 동문파트너즈는 2010년 첫 펀드를 출범하며 설립되었으며 초기 벤처창업투자에 집중을 하고 있다. 운용금액은 1220억 원으로 대표적인 투자처는 국내 대표 MCN 업체 샌드박스, 북미 기반 웹소설 / 웹툰 플랫폼 타파스미디어 등이 있다.
Q. 동문파트너즈는 초기투자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투자를 한 스타트업들은 어떤 곳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트업은 어느 곳인가요?
A. 윙잇(주식회사 아그레아블)*이라는 푸드 커머스 스타트업입니다. 전 직장(동문파트너즈)에서 심사역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투자한 곳이에요. 심사역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에 인연이 맺어진 만큼 유독 애착이 갑니다. 2017년 시리즈 A 투자에 참여했는데, 어느새 2023년 상장을 준비하는 곳이 됐죠.
당시 제 투자 기준은 ‘시장’이었어요. 코로나19가 없던 그때, 1인 가구와 워킹맘 인구가 늘고 있었거든요. 가정대용식(HMR) 시장이 커질 거라고 봤죠. 윙잇은 공동대표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성장 방향과 타깃 유저 그룹, 마케팅 전략이 명확했습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단순히 전체 판매액만 신경쓰던 시기에 이곳은 ‘재구매율’과 ‘고객 만족도’ 개선에 광적으로 매달렸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작가 도움말: 윙잇은 2017년 4월 동문파트너즈와 나우아이비캐피탈로부터 총 27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2021년 거래액 200억 원 돌파, 회원 수 66만 명을 기록했다.
Q. 2019년 롯데벤처스로 옮겼는데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요?
A. 일반적인 벤처캐피탈은 아무래도 수익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롯데벤처스는 수익성 외에도 롯데 계열사들과의 협업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단순히 롯데 계열사가 도움을 받는 것 외에도 롯데 계열사가 스타트업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나 환경이 되는지도 꼼꼼하게 살펴요. 그러다 보니 롯데벤처스가 투자를 진행한 건들 중 생각보다 투자지분이 낮은 건들이 적지 않아요.
저는 벤처캐피탈업에 입성하여 선배들로부터 시리즈 A와 같은 초기투자를 유치하는 스타트업들을 상대로는 10%~20% 지분율을 확보하라고 배웠는데 그런 측면에서 롯데벤처스에서는 일반적인 벤처캐피탈과 달랐어요. 확보할 수 있는 지분율이 적더라도 롯데 그룹과 실질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일단 선제적으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비교적 적은 금액의 투자 혹은 적은 지분율의 신규 투자자를 추가되는 것은 달갑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식품 사업으로 시작해 유통, 관광·서비스, 화학·건설 분야에 걸쳐 성공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아시아, 유럽 등 세계 30여 개국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는 롯데와 협업할 기회에 매력을 느껴서 기꺼이 롯데벤처스의 투자를 수용하는 스타트업들도 있었어요. 단순히 수익성만을 우선으로 하는 다른 벤처캐피탈들이 제시할 수 없는 롯데벤처스의 경쟁우위라고 생각해요.
Q. 스타트업을 발굴/심사/투자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이 되고 대략 얼마나 걸리나요?
A. 스타트업 발굴은 일단 가지고 있는 모든 네트워크를 활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영국에서 유학하며 맺은 인연들을 통해 소개받기도 하고 앞서 투자했던 스타트업들의 추천을 받기도 해요. 그리고 타 벤처캐피털에서 소개를 받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롯데벤처스에서 스타트업에 직접 콜드콜(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사전에 접촉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것)을 하기도 해요.
‘안녕하세요. 롯데벤처스의 안준영입니다. 롯데벤처스는 롯데의 기업주도형벤처캐피탈(CVC) 로서,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고, 계열사와의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을 지원합니다. 운영하시는 사업에 투자가 필요하신지 궁금하고, 한번 뵙고 인사를 드렸으면 합니다.’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에 관심을 보이면, 심사를 시작해요. 시작한 사업은 어떻게 변할지, 해외 경쟁사는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는지, 마지막으로 창업자 혹은 대표이사는 어떤지 면밀히 들여다 봅니다.
이후 내부 투자심의를 진행하는데 투자 규모와 상관없이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심사위원들을 보면 전문가들이 포진해 계시지만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어요. 그래서 롯데벤처스의 포트폴리오에 왜 이 스타트업이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심사위원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점들을 모두 해소하는 과정을 거치면 최종 투자 진행 여부가 결정되죠.
Q. 스타트업을 투자하기 앞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어디인가요?
저는 창업자 혹은 대표이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봐요.
창업자에게 첫 번째로 기대하는 것은 운영하는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재를 적시에 영입할 수 있느냐예요. 사실 외부 에이전시를 통해서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자의 비전을 보고 합류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과정에서 그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인간관계를 형성하였는지 알 수 있어요. 아무리 좋은 처우를 제시하더라도 평소 그의 평판이 좋지 않으면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거든요.
두 번째로 소통 능력을 중요하게 봐요. 투자자와 창업자 혹은 대표이사가 만나고 투자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을 포함하여 모든 과정을 유심히 살펴요. 그 과정에서 그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내 임직원들과 외부 파트너들을 대하는 생각이나 태도를 유추할 수 있는 clue(단서)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죠. 무모한 창업가 중에는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이 종종 있어요. 그들은 매사에 방어적이고, 남을 비판하는 성향이 강하죠. 또 권한 위임에 소극적이고, 남들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아요. 만약 이런 창업자가 있다면 재능 있는 인재를 구성원으로 영입하고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세 번째로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에요.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언제 개화할지 모르는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상당히 긴 겨울이 될 수 있어요. 예로, 2015년부터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의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다들 예상하고 업계에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앞서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 1세대들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이후에 나온 2세대 회사들은 자동화를 도입하여 인력의 투입을 최소화해서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어요. 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창업자나 대표이사의 기술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시장에 대한 통찰력과 유연한 사고를 겸비하는 것이 스타트업이 생존하여 성장의 기회를 맞이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핵심인재의 영입을 거듭 강조하였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요즘 젊은 에너지와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20대의 창업자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이 안정적으로 성장을 하려면 결국 경험이 많은 시니어들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젊은 창업자들이 창의적인 시각으로 혁신적인 사업 아이템을 제시하는데 사실 아이디어보다 중요한 게 실행이에요. 그런데 머릿속의 상상을 실현하려면 업계에서 10년 20년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이 반드시 영입되어야 기업으로서의 구조를 갖추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인재 영입에 대한 뚜렷한 전략을 가진 창업자들이 확실히 소통하기 편하고 저희 측에 요청하더라도 빠르게 진행이 돼요.
‘심사역님, 저희 개발 분야의 5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인력이 필요해요. 인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대표님, 지금 상황을 고려했을 때 중간 관리자 정도 경력의 개발자가 최적일 것 같아요. 임원급의 경력직보다는 실무를 하면서 주도할 수 있는 분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생산적인 소통이 되면 문제 해결이 빨라질 수밖에 없죠. 저는 벤처캐피탈이 단순히 투자금 납입만 하고 먼발치에서 응원하는 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대외적으로 인정받거나 검증된 경력의 인재들은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스타트업을 선호하기에 초기 스타트업들은 인력난이 심해요. 저는 스타트업들이 필요한 인력들을 찾아 제공하는 것도 벤처캐피탈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스타트업이 제시한 비전에 공감하여 투자를 진행하였는데 그들이 풀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을 해줄 수 없다면 그건 진정한 파트너쉽이라고 볼 수 없어요.
*작가 도움말: 해외에서는 스타트업의 대표의 비전문 분야의 전문가 채용 시 보다 경험이 많은 벤처캐피탈들이 적극적으로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고 심지어 면접에도 참여한다.
Q. 벤처캐피탈에서만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과거 특정 스타트업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는데 투자로 이어지지 못해 아쉬운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언제가 가장 아쉬웠나요?
A.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스타트업은 닭가슴살 전문 온라인 플랫폼 ‘랭킹닭컴’을 운영하는 ‘푸드나무’라는 곳이에요. 제가 관심이 있어서 먼저 연락을 해서 일산의 사무실까지 뵈러 찾아갔어요. 그런데 기업이 이미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한 상태여서 투자유치에 대한 수요가 적었어요. 긴 대화를 나누고 다른 기업들도 소개해드리는 등 많은 공을 들였는데 아쉽게도 최종투자로 연결되지 않았어요. 그 기업은 2년 후 상장하였고 지금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어요.
Q. 벤처캐피탈업을 커리어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
A. 제 경력이 길지 않기에 실무진으로서 겪는 고민을 나누고 싶습니다. 보통 한 일을 오래 하면 노하우도 생기면서 수월해질 텐데요. 저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고 느낍니다. 일단 투자 성패가 빠르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일부 투자 건들은 회수가 빠르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오래된 건들은 10년 이상 걸리는 때도 있어요. 그래서 이 직업을 즐기려면 조바심을 갖지 않고 슬기롭게 때로는 묵묵하게 기다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네트워크를 쌓는 것을 즐길 줄 아는 것이 중요해요. 벤처캐피탈이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장이어서 다양한 배경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어야 해요. 활발하게 여기저기 인사하고 주기적으로 먼저 연락하는 성향이라면 벤처캐피탈이 적성에 맞을 거예요. 반면 스타트업의 성장 고통을 옆에서 공감해주지 못하면 성과를 떠나서 일 자체가 재미없을 수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지금 이 시각에도 시장의 트렌드는 계속 변하고 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과 새로 부상하는 기술들을 계속 공부하면서 아주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시장을 보는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예요.
벤처캐피탈에 푹 빠진 사람이라면 개인으로서 벤처캐피탈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누구나 당연히 있을 거예요.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고요. 그런데 제가 확신을 갖고 말씀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의 벤처캐피탈의 역할이 미래에도 계속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하기 때문이에요.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들의 경우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지 않는 경우가 90% 이상이에요. 암호화폐를 통해서 투자금을 수혈하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제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시장의 단편적인 부분을 확대해서 보고 말씀드린 걸 수 있어요.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미래에도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구성원으로서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