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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트 Jun 25. 2022

2. 신기루

파도소리.

A는 눈을 뜬다.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고 입안에 모래알과 짠맛이 굴러다닌다.

A는 겨우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그를 뱉어낸 파도는 무심하게 멀어진다.

A는 입안에 모래를 뱉어내고 주변을 둘러본다.

고요한 바다.

그 반대편으로 하얀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있다.

A는 사막을 향해 걷는다.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듯이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나아간다.

걷는 기계인 것처럼 계속해서 걷는다.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릿속엔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새하얀 방, 알약, 여정.'


그 방과 해변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되뇌어보지만

칼로 잘라낸 듯 기억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방 안에서 다짐했던 것만은 선명히 떠오른다.


'자유'

'자유'

'자유'


사막으로 곧장 향한 것이 올바른 결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움직이는 것만이 A의 유일한 목적이자 동기였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이 진짜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지

혹은, 타의에 의한 필연일지 알지도 못한 채

그는 계속해서 걸어간다.


모래바람은 계속해서 지형을 바꿔간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A의 새까만 눈동자에 윤슬이 반짝이며 쏟아진다.


신기루일지도 모르지만 A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다.

그저 계속해서 걷는다.

제 자리에 멈춰 죽음만을 기다리던 나날을 떠올리며.

비록 저 앞에 있는 게 신기루일지라도 A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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