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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니스트 박가영 Jun 23. 2024

'관객들은 너의 걱정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야.'

연주자로서의 정체성 1

    내향형 I인 나는 무대가 무서웠었다. 남들 앞에 나서거나 주목받는 상황을 즐기기보다, 어떻게 평가받을지를 걱정한다. 그 걱정들은 스멀스멀 커져 나는 잠식시키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 내가 지금 하는 필드에서 요구되는 자질은 왜 상충이 될까. 내가 만약 주목받는 걸 즐기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걸 즐기는 무대 체질이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브래들리, 학교 성악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무대에서의 에너지 레벨은 내향형-외향형-무대 순서이기 때문에, 내향형들은 외향형들보다 훨씬 큰 노력을 해서 무대에서 에너지를 표출해야 한다고.

나도 나의 수줍음과 걱정을 가리고, 에너지를 올리려고 별난 노력도 많이 했었다. 음악적으로 뭔가 화려해 보이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고, 바나나를 먹으면 차분해진다고 해서 바나나를 무대 전에 먹고….이런 억지스러운 노력을 해야 할 정도로 내향적인 성향과 맞지도 않는 무대인데, 나는 왜 계속 무대에 서야 하는 음악을 계속하고, 사랑하는 걸까.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첫 학교, 인디애나에서 졸업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하고, 모든 노력을 했다고 자부하면서도, 걱정이 잔뜩 있는 채로 레슨에 들어갔다. 이 큰 우려를 내 전공 교수님, 크리거 선생님에게 쏟아내었다. 크리거 선생님은 한참 내 걱정을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영, 관객들은 너의 걱정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야."

그 한마디가 마음에 쿵 내려앉았다. 내가 어떤 자세로 음악을 하고 있는지가 다 음악에 나타난다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





    나의 머릿속은 온통 수동태였다. 실수하면 어쩌지, 내 연주를 어떻게 생각할까, 뭐라고 평가할까.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에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



크리거 선생님은 걱정의 방향을 바꾸라고 조언해 주셨다. 무엇을 걱정해야 하는가? 세상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애써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나는 고작 내가 어떻게 보일까가 중요한가?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바깥세상의 일들이지, 무대에 서는 걸 걱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늘 수동태였던 내 걱정이 능동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래, 내 성격상 걱정을 안 하고 살 수가 없어. 그러면 차라리 걱정할 거면, 건강한 걱정과 고민을 선택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가받는다는 생각을 넘어서, 나는 음악으로 무엇을 나누고 싶은지를 점차 고민하기 시작했다.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이 서서히 자리잡히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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