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책장 사이에서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

by 하루의 생각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나중에 도서관을 직접 설립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을 만큼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데,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처음 발견해서 고르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은 일본에서는 출판되지 않고, 한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우치다 다쓰루의 글을 좋아하여 그의 글을 번역해 왔던 박동섭 번역자가 그에게 먼저 제안하여 낸 책이라고 한다. 그 정도의 주도성을 갖고 만든 책이라면 그만큼 좋은 글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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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특징, 감상

도서관, 책, 독서, 출판에 관련한 저자의 생각을 담백하되 다소 확고한 표현으로 서술한다. 그의 생각에 공감되는 부분이 일부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책을 사는 행위’나, ‘도서관의 역할’이라든지,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것’에 대한 주제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재밌었다.


다만, 그의 블로그 혹은 다른 어딘가에 흩어져있는 글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첫 부분에 했던 말이 뒷부분에도 나온다든지 중복되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다. 물론 공감하는 문장이고, 다시 한번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긴 했다.


한편, 일본 특유의 전통, 예를 중시하는 저자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또 책, 출판에 대해서는,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잣대에 부합하기보단 관념적, 이상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 ‘이익 추구’, ‘실용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단호하게 이런 가치를 외치는 그가 반가웠다.





“무지의 가시화”

도서관의 역할:도서관에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저자는 강연에서 누군가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해버렸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낫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도서관이란 많은 이용객을 끌어들이는 것에 목적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본인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가시화해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맞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다들 도서관 혹은 대형 서점을 가면서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도서관은 광활한 공간에 빼곡히 책으로 채워진 책장을 돌아다니며, 책의 제목, 수많은 분류표들을 보며 ‘세상엔 이렇게나 많은 지식들이 있구나, 이렇게나 많은 분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했구나’를 느낄 수 있다. 그걸 물리적으로 몸소 느낄 수 있다. 그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건 책뿐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는 그 수많은 ‘알아야 할 것’ 사이에 둘러 쌓이면서 무언의 압박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낀다. ‘넌 아직 멀었다’, 혹은 ‘네가 관심 있는 분야에는 이런 일거리 들이 있어’. 이와 함께 사람은 겸손해지고, 또 한편으론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그렇다. 번아웃이 찾아오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이 왔을 때,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으면 지적 호기심이 다시 생기고,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만약, 도서관이 이용객들을 끌이들이기 위한 정책에 집중해서, 매 책장을 드나들 때마다 사람들을 마주친다면, 이런 경험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적막하고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책과 책장, 나만 있는 것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 온 것 같은 연출을 하기란 어려워진다. 책을 훑어보며 지식을 탐험하는 그 특유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책장의 역할:안 읽는 책을 살 이유

이런 말이 있다. “책은 사놓은 것 중에 읽는 것이다.”

독서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사놓지만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엔 이렇게 사놓은 책에 의무감을 느끼고, ‘이것들을 다 읽으면 새 책을 살 거야’ 같은 다짐들을 해왔지만, 어쩔 수 없다. 읽고 싶은 책은 늘어만 가고, 그때 사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은 읽고 싶은 것을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한다. 의무감에 읽으면 몰입하기 어렵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은, 매일매일, 심지어 시각에 따라 바뀐다. “지금은 새벽이니까, 밤에 어울리는 책을”, “여름이니까, 여름이 배경인 책을”, “요즘은 효율적으로 살고 싶으니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나는 병렬 독서를 한다.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읽고 싶은 것을 읽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장엔 지금 당장 읽지 않아도, 미래에 읽을, 읽고 싶은, 읽기 바라는 책으로 채워둔다. 이 책장은 결국 ‘이상적인 나’를 보여준다. ‘이 책장에 있는 책을 다 읽고, 통달한 나’를 떠올리며 책을 또 구매한다. 그렇다. 지적허영심일 수 있다. 때로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책장에 있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할 수도 있다. 책장은 이처럼 내가 바라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적 욕망을 채워주고, 때로는 집에 놀러 온 사람에게 이를 과시하는 도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책장은 나에게 겸손을 느끼게 해 준다. ‘난 아직 멀었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이, 알아야 할 것들이 아직 이렇게나 있다’, ‘아, 이 책을 얼른 읽어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계속해서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너무나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전자책만 소비하면 이런 책장의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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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내고 혼나는 경험

무지의 가시화와 관련해서,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직급에 다다르면 돈을 내고 수련(?)을 해야 하는 전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수련에서는 계속 혼나기만을 반복하는데, 그것이 사람에게 겸손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수련이냐,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나름대로 그것이 가져다주는 교훈이 크다고 느꼈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겸손함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고 3년 차쯤 되었을 땐 여러 명의 인턴들을 대하고, 알려주고, 작업물을 리뷰하고를 반복하면서 ‘가르치는’ 역할에 익숙해져 있을 때였다. 3년 차쯤 되면, 일반적으로 회사에 이미 적응을 완료하고 일이 편해질 때쯤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정체되었다는 느낌을 받기 쉬운 시기이다. 그러던 중, 헬스장에서 새로운 트레이너 선생님으로부터 PT를 받게 되었는데, 웃긴 게, 날이 가면 갈수록 내가 나약해지는 시점에 혼을 내는 거다(?). “안돼. 더 더 더!”, “어? 힘 빠지네? 힘!”, “더 앉아!”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한창 그때쯤 매일매일 전담하는 인턴에게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안돼, 이렇게 하라며 가르치고, 때로는 반복되는 실수나 두세 번에도 설명한 대로 되지 않는 것에 지치기도 했을 때였다. 그런데 내가 전혀 자신 없는 ‘운동’이라는 분야에서 돈을 내고 혼나는 경험을 해보니,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고, 잘 못하는 시절이 있고,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분이 참 묘했다. “낮에는 어떤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살아가는 사람도, 밤에는 다른 곳에서 못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혼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일부러 못하는 일을 의도적으로라도 해봐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매일같이 하는 일만 반복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질리고, 다 알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벗어나서 못하는 일을 하고, 일부러 혼나는 경험을 하면, 내가 얼마나 거만하게 살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평소에 쓰지 않던 다른 머리를 쓰며 시야가 확장되는 느낌은 덤이다.


어차피 99.999%는 못 읽고 죽는다

저자는 심지어 책이 너무 많아서 사무실을 이사하면서 도서관에도 많은 책을 기증했지만, 자택에 1만 7천여 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책이 발에 치일 만큼 많아서 누군가 집에 놀러 오면 ‘이 책을 다 읽으신 건가요?’하고 물어본다고 한다. 하지만 그 90%는 아직 읽지 못했고, 나이를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에 둘러싸여 산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왜 읽지도 못할 책을 집에 두고 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책이 꼭 끝까지 다 읽혀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 일 것이다. 책이 방 한가운데, 책상 위에, 혹은 침대 머리맡에 있음으로써 가져다주는 무언의 압박감 같은 것, 그저 책의 존재 자체에서 주는 그 영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젠, 책을 사놓고 읽지 않았다고 어떤 의무감, 읽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내려놓아도 된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못 읽는 책은 세상 대부분의 책들이고, 단지 책을 사놓음으로써 얻는 것들이 있으니까. 읽지 않는 책을 지금처럼 침대 머리맡에 두자. 누군가 놀러 와서 ‘저 사람은 평소에 저런 책을 읽는구나’ 느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읽고 잊어버린 것과, 안 읽은 것은 비슷하니까.



“책은 공공재다. 사유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빌려주었을 때의 경험

‘책이 공공재’라는 말은 참 신선했다. ‘책이 마음에 들어서, 혹은 그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내 돈 주고 산 물건인데? 공공재라니?’ 하지만 이것은 ‘책’을 그저 ‘상품’의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의 견해이다. ‘책’은 본질적으로 저자가 본인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널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생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책은 지식, 누군가의 이야기, 깨달음, 감상 등을 담는다. 그것들을 나만 가질 수는 없다. 정말 자기만 가질 수 있다라면 그 출판된 책을 모두 사들여서 아무도 못 보게 해야 할 것이다.


웃긴 건, 친오빠에게 빌려준 책을 몇 개월째 못 돌려받고 있는 요즘, ‘책을 언제쯤 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려던 그 시점에 이 문장을 읽어버렸다는 점이다. 결국 쓰려던 메시지를 지우고, ‘천천히 다 읽고 나서 돌려달라’고 보냈다. 그리고는 며칠 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과 비슷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평소에는 인문학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사람이, 내가 읽던 책을 읽고 무언가 깨닫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니 이처럼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내가 아는 걸 남도 알아주는 것. 그 기쁨이구나. 내가 책을 얼른 돌려달라고 뺏어왔다면 빌려간 사람은 그 독서의 기쁨을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 뿌듯한 마음에, 그리고는 열심히 감명 깊게 읽은 몇 권의 책들을 더 추천해 주었다.


즐겁게 읽었던 소설책을 빌려주었던 적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필 친구와 같이 가게 된 여행지가 이 소설의 배경지였는데, 이 도시는 이 소설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곳이었다. 이 도시에서 이 소설을 다시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들고 온 책이었는데, 다른 책을 읽느라 그 책은 펼치지도 못했다. 나 대신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빌려주었는데, 바닷가 앞에 앉아서 너무나도 재밌게 읽었다고 했을 때, 일종의 ‘전도’를 한 느낌에 일종의 희열감(?)을 느꼈다. 비슷한 감상을 하고 그 도시를 더 애틋하게 느끼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둘 다 책으로 연결되는 여행지를 만들고 돌아왔다.




책을 빌렸을 때의 경험

나에게는 약 7년 전부터 여름이 되면 펼쳐보게 되는 책이 한 권 있다. 창비세계전집 시리즈로 나온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 책은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책인데,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로부터 선물 받았던 책인데, 새 책이 아니라 그가 휘갈겨놓은 메모들로 약간의 손때가 묻어 있던 책이었다. 당시 연극 연출가로서 만났던 그가, 첫 연출로서 올리는 모놀로그 연극의 대본을 작성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서점에서 샀고, 여러 메모들을 남긴 것이다. 어쩌면 계속 갖고 싶을 만큼 의미 부여할 수 있는 책이지만, 그것을 나에게 주었다.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한 권이 더 있었겠지만.


그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 책에 실린 작품들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처음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해당 작가의 다른 책을 스스로 골라서 사게 해 준 기념비적인 책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문학을 읽게 되었고, 서점을 더 자주 찾게 되고, 문학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나비효과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책을 더 자주 접하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그 작품들은 여름이 되면 생각이 나고, 다시 한번 훑어보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문학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해 준다.


생각해 보면, 새 책보다도 누군가가 읽었던 흔적이 보이는 책을 읽게 되었을 때 또 다른 감각을 갖고 책을 읽게 된다. 어떤 구절에 밑줄을 그었는지를 의식하게 되고, 혹은 조그맣게 남긴 메모들을 훔쳐보게 된다. 물론 봐도 된다고 생각해서 빌려주는 거겠지만, 훔쳐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읽던 책을 빌려주는 행위는,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본인의 깊은 생각까지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알려주는 거니까.




우리는 무상의 독자로 독서 인생을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처음 읽게 된 책은 ‘빌려 읽는 책’이다. 처음부터 어딘가에서 책을 골라서 구입하지 않고, 집에 있는 누가 산지 모르는 책, 혹은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친구로부터 빌린 책으로 첫 독서를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빌려 읽다가, 나름의 책 취향이 생기면, 서점에 가서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고르고 골라 구매하고, 내 책장에 꽂아두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책의 소비자이기 전에 우리는 독자의 경험을 먼저 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다고 해서 책 판매율이 떨어진다며 신간 도서들을 도서관에서 조금만 구매하길 요청하는 저자들을 비판한다. 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워낙 책 구매율이 낮아지고 있으니… 하지만 ‘빌려 읽는 행위’를 나쁘게 보고, 제한해 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통로를 막아버리게 된다. 책을 빌려주었을 때, 빌려 읽었을 때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책을 상품으로만 바라봐서도 안되고, 독자를 소비자로만 봐서도 안된다’고 하는 저자의 단호한 말에 공감이 되었다.



“책은 두 종류로 나뉜다”

저자는 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현실의 수요에 대응하는 책이며, 또 하나는 일시적으로나마 그 현실과 사회에서 주어지는 현실적 가치, 어떤 당위성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방감을 주는 책이다.

책을 이 기준으로 두 종류로 나누는 것에 매우 공감하는 게, 독자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이 두 종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문학 책들을 주로 읽다가, 올해 초가 되자마자 서점에서 자기 계발서나 경영도서와 같은 책들을 계속 구입했다. 읽는 책의 종류가 확실히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수동적인 욕구가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고, 성공하고 싶다’는 현실적인 욕구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책에서 전자의 책을 ‘이 사회에 소속되어 있으니 한 발짝도 못 벗어난다’고 현실에 붙잡히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다소 부정적으로 서술하긴 했지만, 본인의 꿈과 목표가 명확하고, 그 어떤 목적을 갖고 능동적으로 읽는 것이라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회피하기 위해 책으로만 빠지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도 생각한다.


분명한 건, 전자의 책(현실의 수요에 대응하는 책)을 한창 읽을 시기에는, 후자의 책(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해방시키는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문학은 삶이 고통스러울 때 더 잘 읽히고, 감상의 폭도 깊어지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 책장에는 아직 읽지 않은 소설, 자기 계발서 몇 권이 있다. 언제 뭐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어떤 책이 읽고 싶어 질지 모르니까 말이다.






출판에 대하여:독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지적 쇠퇴는 일어나지 않았다, 독자를 탓하지 말라.

독서율이 떨어지고, 도서 소비율이 떨어지는 요즘의 시대상을 우리는 종종 ‘스마트폰’과 ‘SNS 숏폼’ 사용으로 원인을 돌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독서율이 떨어진 것을 ‘독자의 문해력이 떨어졌다’느니, ‘긴 글을 못 읽어서’라며 독자의 탓으로 자연스럽게 돌리는 출판업계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치 출판업계 내부에서는 잘못이 없고, 외부의 원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며칠 전 Thread에서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요즘 출판업계를 보면, 독자의 수준에 비해 저자의 수준이 현저히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선 ‘책 1권도 안 읽는 사람이 저자가 되고, 책 사는 사람은 100권도 산다’며 출판업계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댓글을 달았는데, 어쩌면 출판사는 책을 상품으로 바라보고,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책을 만들고, 마케팅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소비자이자 독자인 우리가 ‘라면(인스턴트) 같은 책’보다는 ‘좋은 책’을 더 많이 찾아서 읽어야 좋은 책들이 가치를 발휘하고 서점 매대에서 더 많이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전자책과 종이책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어가는 나’, 그리고 ‘다 읽은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읽어가는 나’와 ‘다 읽은 나’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수록 조금씩 그 기쁨을 앞당겨 맞이한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를 다 읽은 미래의 나’라는 가상적인 소실점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책을 읽을 때는 이 소실점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잘 주지 못한다.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페이지의 두께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스크린 한쪽에 남은 페이지 수가 표시되더라도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종이책의 경험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몇 가지 이유를 더 말하는데, 종이책은 그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애정을 담은 주체들(저자, 편집자, 표지 디자이너, 제작사 등)의 고유한 오라가 느껴지지만, 전자책은 그것을 느끼기가 어렵다고 한다. 나 또한 여러 형태, 두께, 종이, 표지의 책들을 접하면서, 편집자 혹은 디자이너가 생각했던 책의 모습이 무엇이었을지를 무의식적으로 느껴왔다. 예를 들면 이 책은 한 손에 잘 잡히고, 가벼운 재생지에 표지도 두껍지 않은 책인데, 아마도 휴대하면서 읽기 쉽도록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흔히 ‘벽돌책’이라고 하는 두껍고, 무거운 양장본의 책들은 책상 위에 앉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읽을 것을 생각하며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전자책은 이러한 물성을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물리적인 성질이 주는 경험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이런 한계점도 전자책이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기존 종이책을 읽는 경험의 UX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라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인용 및 하이라이트


우리는 모두 ‘무상의 독자’로 긴 독서인생을 시작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읽는 책은 독자로서 읽는 것이지 구매자로서 읽지 않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읽었다고 해서 작가에게 어떤 인세 수입도 가져다주지 않지요. 이렇게 쭉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어느 날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책을 사는 날이 옵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까지 몇백 권, 몇천 권의 책을 무료로 읽는 독자 인생을 걷지요. 이 ‘무상의 독자’ 기간을 토대로 비로소 책을 구매하는 행위가 발생합니다.

– 218p, 출판은 독자를 이끄는 전도 활동이다 –


서점에 있는 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의 수요에 대응하는 책입니다. 토익 점수를 올리는 책, 부자가 되는 책, 사흘 만에 살이 빠지는 책 같은 것이죠. 다른 하나는 여기와는 다른 곳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는 책입니다. … 우리는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우리의 위치가 정해집니다. ‘넌 이런 대학을 나왔고 이런 능력을 갖고 있고 이런 일을 해야 한다’하는 식으로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다 혹은 붙박인 곳에서 도망치고 싶다 하는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이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해방시키는 역할을 책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 221p, 출판은 독자를 이끄는 전도 활동이다 –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 안정적인 생계를 꾸리고 싶다면 일단 해야 할 일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 과금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독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 185p, 독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 읽을 일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 161p, 읽지 않은 책에 둘러싸여 여생을 보내는 일 –


책 또한 ‘읽었다’는 사실과 ‘언젠가 읽고 싶다’는 바람이 그다지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책장은 우리의 바람을 담은 지적, 미적 생활을 이미지로 나타냅니다. 책장이 우리의 이상적 자아라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 153p, 책장에는 나의 이상적 자아가 담겨있다 –


‘읽고 싶은 책이 이만큼 있다’는 기쁨 이상으로 거기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끝내 읽지 못할 책이 이만큼 있다’는 제 협소한 식견에 관한 통절한 자각이었습니다.

– 38p, 도서관은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가르쳐주는 장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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