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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생각남 Jan 16. 2024

[사건 1일 차] 내 생애 최악의 블랙 먼데이!

대체 먼데이?

월요일 아침 6시 55분. 누나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ㅇㅇ아, 출근하면서 전화 한번 줘”     


굳이 ‘출근하면서’라고 단서를 단 문자. 와이프는 모르게 남매끼리 긴밀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 같았다. 출근을 위해 씻고 나왔더니 장문의 문자가 또 와 있었다.      


“주말에 고향집 다녀왔는데, 옥상에 19.5 킬로와트 산업용 태양광 설치 공사를 했어”     


- 20킬로와트 지붕에 설치 중.

- 1킬로당 설치비 200만 원. 설치비 총 4천만 원. 농협시설자금에서 융자. 융자 10년 상환. 한전과 20년 계약. 시설제품보증 25년.

- 20킬로 설치 시 연평균 한전에서 월 70만 원 내외 입금됨. 설치비 28만 원 10년 상환.

- 공사기간 3~4일, 2주 후 한전시설관리팀 시공검사 후 필증 발부.

- 8월부터 발전되면 9월에 전기료 입금     


‘뭐지?’     


쓱 봐서 바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개조식으로 최대한 간략하게 하지만 중요 내용을 빠짐없이 전달하려는 문자 속에는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쓰여 있지도 않은 ‘SOS’라는 글자가 보이는 듯했다.      


‘태양광 설치 공사’, ‘설치비 4천만 원’, ‘농협 융자’, ‘10년 상환’... 이런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황스러웠다. 주말에 한 번씩은 고향집에 안부 전화를 드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2주 정도 전화를 못 드렸던 상황이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자식들과 상의(?) 없이 4천만 원이라는 돈을 대출받아 태양광 설치 공사를 하신 듯 했다. 이른 아침 누나의 다급한 문자는 그 계약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의 표시였다.     


누나와 통화를 했다. 누나가 알고 있는 것은 문자로 보내준 정도의 내용이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허둥지둥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뭘 해야 하는지를 개인 카톡방에 급히 정리를 해봤다.     


1. 계약서 내용 확인(독소조항 중심, 아버지의 권리와 의무사항)

ㅇ 권리 : 태양광 시설 유지보수(기간, 받을 수 있는 사유, 받을 수 있는 내용 등)

  * 예, 폭우로 시설 망가졌을 때(유실 됐을 때) 재설치 여부 등

ㅇ 의무??

ㅇ 한전과 전력 거래 계약 권리와 의무(전기료 판매 비용 입금 절차 등)     


2. 대출

 대출 신청방법 : 시공업체 통해서?(개인정보 공유 정도?), 아버지와 대출업체 함께 농협 방문?

ㅇ 대출 조건 : 월상환액, 기간, 금리(수치, 변동성 여부), 상환방식(원금, 이자) 등     


3. 향후 할 일

ㅇ 태양광 시설 관리 : 관리 방법? 관리 소요 비용(시설업체 무료 유지보수 여부 및 기간 확인)

ㅇ 동 사례와 유사하게 대출받아서 태양광 설치 시 발생한 불이익, 피해, 문제점 등 확인

ㅇ 태양광 수익 발생여부 및 전망(태양광 설치 경험 있는 친척분에게 에게 유지 관리 유의점과 함께 문의)

ㅇ 태양광 시설 수익 미발생으로 대출금 등 지출만 발생 시 손해 만회를 위해 아버지가 다른 투자(주식 등)를 무리하게 하지 않도록 재발방지하는  가족 각서 작성(아버지는 논, 밭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크게 손해 보신 적이 있었다)     


남매 단톡방에 정리한 내용을 급히 공유했다. 그리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두 장의 계약서를 공유해 주셨다. 계약 관계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볼 테니 대출이나 대금 지급은 천천히 진행하자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그러자고 하셨다.      


계약서는 딱 봐도 날림 계약서처럼 보였다. 계약날짜도 작성돼 있지 않았고, 빈칸도 많았다. 계약 특이사항에는 이런 내용이 작성돼 있었다.      


‘한전 20년 계약, 부가세 환급, 선로비 자부담’

 * 설치 후 설치대금 전액 즉시 입금하기로 한다


한전 20년 계약? 이 업체가 한전과의 20년 계약이 가능하도록 보장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통상 태양광 발전 설치를 하면 한전에서 20년은 계약을 해준다는 말인가? 주어와 서술가 불분명한 단어의 나열.     


4천만원짜리 시설을 설치했다면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 후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 상식적일텐데  계약서에 '설치 후 즉시' 라는 다급한 문구를 굳이 써넣은 이유?


계약 세부조건 또한 의무만 나열돼 있고 권리 보장에 대한 조항은 빈약한 일방적인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어, ‘단순변심에 의한 해지는 계약금 환불 불가함’이란 조항이 있었다. 그렇다면 ‘태양광 발전 시설의 중대한 하자로 인한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한 경우’ 등 공사업체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해지는 가능하다는 조항 정도 있어야 될 것 같았지만 없었다.      


태양광 시설 설치 공사에 대해 그리고 계약서 내용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물어볼 곳이 없었다. 아버지께 공사업체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내 소개를 하고 연락 가능한 시간을 알려달라는 문자도 보냈지만 답도 없었다. 그리고 1시간 후 ‘내일 전화하겠다’는 내용의 짧은 답장이 왔다. 연락을 피하는 것 같아 괜히 더 의심이 갔다.     


‘이 계약은 정말 사기일까?’

‘사기 여부는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궁금한 것은 많았고 물어볼 곳은 없었다. 누군가 태양광 발전 공사 계약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시원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고향집에 내려가서 아버지께 자초지종도 자세히 들어보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궁금한 것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직장인이었고 주어진 일이 있었다. 업무 시간에는 태양광 관련 궁금한 것들을 찾아볼 시간도 없었다. 확인해봐야 하는 사항은 산더미 같았지만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남매 톡방에는 물음표만 쌓여갔다. 누나는 누나대로, 형은 형대로, 나는 나대로 미심쩍은 사항, 확인해야 할 것 같은 사항, 궁금한 사항들을 나열했다. 수많은 물음표 중에서 어떤 것부터 답을 찾아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우리 삼 남매는 모두 태양광 발전 계약에 무지했다. 그리고 이런 사기 같은 상황도 처음이었다. 머리는 복잡했고 정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민과 불안과 답답함 속에서 태양광 사기 사건 첫날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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