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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Oct 29. 2020

1. 시험 없는 레벨테스트

별난 공부방 - 아이로부터 삶을 배웁니다

13년 전, 한해의 끄트머리 12월, 아파트 베란다에 공부방 현수막을 걸고 게시판에 전단지를 붙인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단지를 붙이는 나 자신이 낯설었고,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조바심이 났다. 딱딱한 콘크리트 벽에서 파닥거리는 종잇장 같이 마음이 흔들린다. 첫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니 설렘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기도 했다.


‘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까’ 하며 전화벨이 울리기까지 여러 번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한다.  전단지를 붙이고 돌아오는 길에 교복 입은 아이들을 눈에 담으며 저 아이들 중 한 명은 내 학생이기를 상상한다. 간절한 기다림 때문이었을까.

운이 좋게도, 이삼일이 채 안되어 문의 전화가 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목소리가 떨리려고 하지만 크게 숨을 들이켜고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영어 공부방이죠? 아이 상담을 받고 싶은데요.”

첫 문의 전화에 뛰는 가슴을 누르며 차분하게 말을 전했다.


“ 네. 어머니. 오실 때 챙겨 오실 게 있으세요. 아이가 공부한 문제집을 가지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처음 아이를 보는 거니까요. 아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먼저 살펴보면 제가 상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아이가 학원을 다니고 있는지, 그동안 과외를 했는지 여쭤보고 영어교과서와 단어장, 문제집 등 참고서와 국어와 수학 관련 책도 챙겨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 국어랑 수학도요? 영어 샘이 왜 국어랑 수학책을 보시는지,,, 일단 애가 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제가 잘 본 적이 없는데, 한 번 살펴보고 챙겨갈게요!”    

 

공부방에는 책상과 의자  몇 개, 책장에 꽂힌 몇 권의 영어 참고서 외에는 텅 비어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하기에는 부담도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물품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일을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갖추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뭐가 필요한지 몰랐다고 하는 것이 맞으려나. 안일한 초짜의 생각이었다.


내 생각은 이러했지만, 막상 공부방에 처음 오신 어머니와 학생은 꽤 놀라는 눈치였다.

“ 어머. 선생님. 우리가 처음인가 봐요. 텅 비어있는 책장이 오히려 저는 좋아 보여요.”

텅 비어 있는 책장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만 인사를 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처음 시작하는 그 일을 처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할 수도 있었음에도 텅 빈 채로 시작하는 내게 더 신뢰가 느껴졌다고 나중에서야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다.

물론 제대로 채워진 것이 없어 그것이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다.

어찌 됐든, 나는 그렇게 책상 하나 있는 공부방에서 아이와 마주 앉았다.


“ 안녕! 어색하지? 나도 어색해. 조금. 그래도 너무 반가워서 자꾸 웃음이 나니 이해해줘.”

나의 엉뚱한 말에 아이는 피식 웃는다. (지금은 베테랑 샘이 되어 이런 어설픈 첫인사를 하지 못한다.)

눈빛이 까맣고, 이름과 학교 등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림이 없다. 아이는 밝은 성격이어서 내게도 이름을 묻고, 이곳에 언제 이사를 왔는지도 물어본다.     

 

“ 공부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먼저 나?”

“ 답답증이요. 엄마 잔소리요. 경쟁이요.”

유쾌하게 시작되었던 대화였는데, 순간 아이의 대답에 초짜 공부방 선생은 할 말을 잃었다.

영어 참고서를 보며 문법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던 나였으니 답답증이라는 아이의 호소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답답함이 내게도 전해졌다.  

  

“ 왜 답답해?”

“ 다 일방적이에요. 학교 샘도 그렇고, 학원 선생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똑같은 말 몇 번 하면 화내고요. 그러니까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싫어요.”

“ 그렇구나, 샘은 똑같은 말 여러 번 해도 화 안 낼 수 있어. 약속할게.”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가 나의 이 말에 부드러워진다.

“ 네가 가지고 온 문제집, 이거 선생님이 좀 살펴볼게. 이거 보면서 얘기하자.”    

 

차근차근 살폈다. 아이가 가져온 참고서는 거의 열 권 정도 되었다.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지만 아이의 문제집과 교과서, 노트 등을 모두 살펴보며 틀린 문제 등을 메모했다. 글씨가 작은지, 큰지, 글자체를 보며 아이에 대한 특징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나는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런 상담 방식을 어느 누구에게도 들은 적이 없다. 나도 받아보지 못한 것을 내가 하고 있으니 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만 한다. 다만 아이에게 보통 학원에서 치르게 하는 시험지를 풀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의 목적만 일단 달성해도 좋을 것 같았다.

   

“ 이거 쓴 거 말이야. 선생님한테 설명해줄 수 있어? ”

“ 까먹었는데... 사실 그거 모르고 썼어요.”

“ 그렇구나. 그럼 이거는? 이거 한 번 보자.”   

   

모든 것을 구두 질문하며 아이가 대답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며 적었다.

아이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성격도 더 잘 알 수 있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대략 노트와 문제집을 보며 몇 가지의 질문을 하고 나는 다른 질문을 하였다.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 만약 공부를 하면 뭘 배우고 싶어? 놀 땐 뭐하고 놀아? 요즘 제일 좋은 노래가 뭐야? "

아이는 저와 대화하는 내내 속마음을 털어놨다. 시험을 볼 필요가 없었다.

     

“ 이제 끝! 어떻게 할까? 엄마가 너를 데리고 왔어도, 공부는 네가 하는 거잖아. 당장 공부하고 싶지 않으면 억지로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아. ”

나의 비장함은 어디로 갔는지 기껏 상담을 하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아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나의 이 마지막 말에 어머니도 놀라고, 아이는 웃음이 터졌다.

나도 어릴 때 처음 학원을 간 날, 정적이 흐르는 교실에서 시험 문제를 풀고 조용히 시험지를 내고 왔던 첫날이 떠올라 아이한테 차가운 인상과 부담감으로 공부를 하게끔 유도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착한 선생님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시험 안쳐요? 상담이 이걸로 끝이에요? ”

“ 응. 이미 다 알았는데 뭐. 네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뭔지 알았으니까 괜찮아. 몇 점을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샘이 너를 가르쳐야 한다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는지 나는 그것만 찾으면 되니까.  이걸로 충분해. 시험 치고 싶어?”

“ 아니요. 시험 안쳐서 좋아요. 그리고 공부도 하고 싶어요.”

“ 그래? 그럼 우리 공부할 시간 잡을까? 고마워. 공부하고 싶다고 말해줘서. 기쁘다.”  (나는 정말 만세를 부르고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시험을 안치고 자신이 어떠한지, 누구인지 알아본 것이 특이했을까?

나는 공부방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과 수다 떠는 특이한 상담으로 순식간에 40명 넘게 가르치게 되었다.

상담은 하면 할수록 늘어서 나중엔 아이 책을 보며 우선순위와, 나중에 봐도 되는 책과 지금 봐야 하는 책을 구별해주기도 했다. 또한 아이의 부담이 어디서 오는지 찾아내는 것에 집중하였다. 커뮤니케이션 카드도 이용하여 서로 답변하며 어떤 생각이 마음에 있는지 끌어내기도 한다.

시험 없이 아이와 대화하며 주거니 받거니 한  레벨테스트로 나는 아이들과 동지가 되어 출발을 했다.


대화로 하는 레벨 테스트는 노트와 문제집 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볼 것들이 많아졌다. 나중엔 엄마께 아이 책상 상태를 사진 찍어 보내달라 요청하기도 했고, 학생 어머니를 먼저 가시게 하고 둘이서 비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이제 명탐정 샘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공부방은 그렇게 서너 달 순조롭게 순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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