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한 번 또는 두 번 설명을 하고 아이가 모든 내용을 이해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본 책은 키워드 몇 개만 기억나는 정도이지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한다. 보통 사람은 이게 정상 아닐까?
나는 여러 종류의 자기 계발 강의를 들으면서 나 역시 학습이 느리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방 일은 익숙한 영역이지만 나머지 모든 것은 어렵고 험난했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몇 차례에 걸쳐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은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용을 본다. 그래도 안 되면 잘 아는 사람을 찾아 물어보고 설명을 듣고, 강의도 찾아본다. 그 단계를 거치면 그때서야 내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두려움이 있었다. 무언가를 알기까지 시행착오와 두려움은 세트였다.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표현을 적은 아이들의 주된 요인은 대부분 두려움이었다. 아이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선생님은 똑같은 말 세 번하면 화 안내요? 소리 안 지를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화를 안 내다니?”
“모르겠다고 말하면 왜 모르냐고, 어디를 모르냐고 저한테 소리쳐서요, 그때부터는 모른다고 말 안 하는데요. 자꾸 그러다 보니 숙제도 못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숙제만 해서 가면, 선생님은 숙제 제대로 안 해왔다고 혼내요. 또 엄마한테 전화하고요, 전화받은 엄마는 왜 저한테 숙제도 안 하고 뭐 하는 거냐고 소리 지르고요.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다 때려치우라고 해서 그만둔다고 했는데, 그럼 엄마는 더 화가 나서......”
그다음부터는 말을 더 잇지도 못한다. 아이가 말에서 무언가 악순환이 느껴졌다. 복받치고 서럽고, 마음 깊숙하게 쌓인 그 상처를 내게 처음 드러내는 아이는 숨이 차도록 운다. 이런 아이를 참 많이도 만났다.
우리는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질문을 하고 다시 설명을 요구하는 그 상황이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눈치 보이고 불편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암기하고 시험 치는 공부, 침묵하는 공부에 익숙해져 있다. 오래된 그 방식이 여전히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방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 아이를 만나게 되어 참 다행이다. 고맙게도 속내를 털어내어 나는 절대로 “지난 시간에 다 설명했는데 왜 몰라!” 하며 화를 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똑같은 말 여러 번 하면 짜증 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엄마도 그렇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는 분이라면 존경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응! 선생님은 화 안 낼게. 모른다고 무작정 화내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말이야. 샘 하고 그전에 약속이 있어. 들어봐!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말기.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먼저 말하기. 일방적으로 늦지 않기, 늦게 되면 샘한테 미리 알려주기. 공부하다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말하기. 자. 지금 한 말 잘 지킬 수 있겠어? 어때?”
아이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어느새 눈물도 그쳤다. 단순히 모르는 부분만 알려주면 될 것 같았지만, 아이의 엉킨 마음을 푸는 일이 먼저였다. 문제를 해결하고 시작하니 그다음부터는 한결 수월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숱하게 겪는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나도 공부방을 시작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어떻게 아이들을 잘하게 만들지 어떻게 설명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책을 통해 도움받는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결국 내가 그 상황에 직접 부딪쳐 시행착오를 겪고 수정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적합한 방식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설명하는 부분을 잘 모르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빨간색으로 그 부분을 표시하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 옆으로 가서 체크한 부분을 살핀다. 똑같은 설명을 하였지만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모르는 부분이 모두 다르다. 그 부분은 최대한 가까이에서 설명한다.
내 자리에는 작은 의자가 하나 더 있다. 나를 마주 보고 앉는 의자이다.
숙제 검사를 할 때도, 배운 것을 설명해야 할 때, 모르는 것을 질문할 때도 나와 30센티미터 간격을 둔 채 일대일로 마주하여 체크를 한다.
특히 목소리가 작거나 수줍음이 많은 아이는 더 이렇게 한다. 아이들 틈에서 처음부터 소리를 크게 내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려워하기에 이런 아이일수록 나와 더 마주 보며 말하는 연습을 한다.
내가 다시 설명해주고, 나에게 설명을 다시 해보라고 한다. 그럼 쭈뼛거리면서도 해낸다.
그렇게 자신감도 올라가고, 모르는 것은 해결이 되면, 그다음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건 더 쉬워진다.
여러 차례 수업 방식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면서 내가 말하는 것보다 아이가 말을 많이 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늘 하는 말이 있다.
“모르는 거 있어? 질문 있으면 하세요! 질문 안 하면 샘이 질문한다!”
제게 질문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제가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럼 1초도 안되어 몇 페이지, 몇 번 문제라고 바로 대답한다. 그럼 다시 아이들에게 바통을 넘긴다. "이걸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아이들에게 소리 내서 표현하는 연습을 계속하도록 한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이 말을 기꺼이 받아주면 좋겠다. 그 모름이 앎으로 변하면 아이들은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근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샘한테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연습을 더 많이 해. 학교에서도 선생님 쫒아가서 질문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질문. 자기를 알아가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게 해주는 것이 질문이다. 나는 일을 통해서 질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학교 다닐 때는 조용히 침묵하는 것을 제일 잘했다. 시선을 받는 것도 두려웠고,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은 속으로만 했다.
아이가 많이 물어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어른의 역할이다. 충분히 그 시간을 줘야 한다. 수업 종료 몇 분을 남겨두고 질문하라고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집에 가고 싶은 아이에게 질문하라고 하면 누가 할까? 질문은 배움의 과정 중에 일어나야 한다.
대화는 질문과 질문으로 이루어지면 가장 좋다고 여겨진다. 질문이 꼬리를 물고,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도 발견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오늘도 우리는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질문. 질문은 아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알고 싶은 욕구가 커지도록 도와주고, 나 역시 아이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도록 아이와 잘 마주해야 한다.
나의 호기심이 아이를 더 잘 알게끔 한다. 그 호기심이 질문하도록 한다. 그것이 "선생님, 모르겠어요." 라는 아이의 말에 가장 잘 반응할 수 있는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