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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Feb 07. 2021

2. 우리 엄마 좀 말려줘요.

별난 공부방- 아이에게서 삶을 배웁니다

아이의 문제집과 노트 상태로만 상담을 하면 여러 가지 구두 질문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주로 어머니께 물어보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언제부터 학원 다녔어요?”

“그럼 그 학원에서 다른 학원으로 옮긴 것은 이유가 뭘까요?”

“아이의 좋은 점이 뭔지 제게 좀 알려주세요.”


 아이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좀 더 많다. 문제집을 펼치기 전까지는 가벼운 일상 대화로 말문을 열어둔다.

" 지금 기분이 어때?"

아이는 싱긋 웃는다. 누군가로부터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이 대부분 아이들은 꽤 새로웠다고 한다.

문제집을 펼치는 순간은 내가 이것을 왜 하는지 충분히 설명한다. 내 입장에서는 가르칠 지점을 찾는 것이고 아이에게는 설명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보며 스스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알도록 함이 목적이다.      

“ 부정사 부사적 용법 이게 왜 이렇게 불리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 동사변화. P.P 말이야. 왜 P.P인 줄 알아? 동사일까?”

“ 여기 해석해볼래? 이 부분 읽어볼까?”

“ 주어, 동사가 뭔지 설명해볼까?”

“ 이 부분 잘 모른다는 말이지? 이때 선생님한테 질문 안 했어?”

“ 이 글이 왜 쓰였을까? 글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주제가 어디인지 짚어보자.”

    

이런 질문을 하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벙어리가 된 듯 말을 더듬거리기도 하고 질문이 깊어질수록 이마에 땀이 맺히기도 한다. 긴장하기도 하고, 당황해하기도 하고, 대답을 못하는 자신에게 “배웠는데, 왜 하나도 모르지?”하며 한탄도 한다.

이 과정을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우선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애는 공부를 잘해요!’

라고 미리 내게 알려줬던 어머니는 아이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처음 몇 번은 한숨을 내쉬며 참고 있다가 “그것도 몰라? 왜 설명을 못해? 그거 엄마랑도 책에도 봤잖아!” 하며 아이에게 바로 태박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교재만으로 상담하고, 찾아내는 나의 상담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성격과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모습도 발견하게 한다.


“ 어머니. 옆에서 바로 반응을 보이시면 저도 아무 말을 못 할 것 같아요. 잠시 제가 아이랑 말해도 될까요?”

엄마가 자리를 비우자 아이는 눈물이 터졌다. 대부분 여자애들은 우는 경우가 많고, 남자아이들은 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 눈물 참았구나, 샘이 네 마음을 힘들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없는지 구별할 수 있고, 네게 어떤 상태인지 서로가 잘 알면 가지고 있던 어려움도 훨씬 쉽게 풀린다고 생각해. 모른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 샘. 그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요. 엄마가 저럴 때마다 무서워서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매일 숙제했냐고 확인하고, 책상 앞에 제시간에 앉지 않으면 무섭게 소리 질러요. 샘이랑 공부하면 엄마를 막아줄 수 있어요?”

“뭐라고? 샘이 엄마를 막아줄 수 있냐고?”

웃음이 터졌다. 아이는 진지한 표정이다.

“알았어. 최대한 방패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거지? 하지만 나랑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야 해. 물론 샘이랑 공부한다고 해서 숙제가 적거나 그렇지는 않아. 다만 공부하다가 문제가 있거나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얘기할 것. 그래야 샘이 네 방패가 될 수 있어.”

어머니가 다시 아이 옆에 앉았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게 없다고 큰소리쳤던 어머니는 그 사이 한 풀 꺾였다.

“선생님. 얘가 이럴 줄은 몰랐네요. 바보같이 왜 말을 못 해요?”

“ 어머니.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고요. 공부할 때 보통 문제집 풀고, 시험 점수로 확인하고 그런 공부가 많잖아요. 저도 그런 공부만 했고요. 어머니도 예전에 침묵하고 공부하지 않으셨어요? 설명하는 건 더 큰 공부예요. 질문에 대답하는 건 쉽지 않아요. 말하는 연습이나 누군가에게 설명할 기회가 그동안 없어서 그런 거예요. 아이가 바보가 아니에요.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아이는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내가 바로 아이의 방패가 되었기 때문이다.

눈짓으로 살짝 신호를 주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특히 엄마와 공부 문제로 적대감이 있는 경우에는 나는 더욱 아이의 방패가 되려고 한다.

어머니에게는 내게 시간을 좀 달라고 오히려 부탁한다.

이왕 내게  온 거라면,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와 잘 풀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말씀드린다.

      

나는 지금까지 상담을 이렇게 하고 있다. 상담 시간은 수업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린다. 어머니께 충분히 시간을 빼서 오시라고 당부한다.

대부분은 상담이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되묻는다. 수업만큼 상담이 중요하고, 내가 아이를 가장 깊게 봐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씀드리면 두말하지 않으신다.

상담. 여전히 쉽지 않다. 단 한 번도 똑같은 성격, 똑같은 문제를 가진 아이를 만나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바람과 성향, 아이의 성격과 마음을 알면 중간에서 내 역할이 분명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내가 아이에게 새로운 문이 되어야 하니 나는 다르게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나는 이 아이 덕분에 그 뒤로 모든 아이들의 방패가 되어 함께 한다.      

오래전에 공부방 창업 멘토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부모님의 바람이 중요하지만 참고만 하고, 어머니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선생님의 자세라고 전했다. 물론 나 역시 어머니의 부탁에 잘해보겠다고 예의 있게 말한다. 이것이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음은 무조건 아이에게 백 퍼센트 기울어져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일인데, 우린 이 당연함을 망각한다. 시험 점수에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기에 코너로 몰아간다. 그러나 불안함과 초조함, 불만 등 부정적인 마음을 덜어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십 년도 넘은 그 날의 아이의 외침에 나는 오늘도 다른 아이들의 방패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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