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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Mar 04. 2022

3월, 엄마도 개학했다

웰컴, 자유로운 봄!

삼일절을 기다렸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날을 숭고하게 여기며 티브이에서 방영되는 삼일절 행사를 시청했다. 휴일이기도 하고, 3월의 첫날이니 여유 있는 아침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진 밤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이는 전날 밤부터 트렁크 안에 옷 몇 벌과 세면도구, 공부할 책 등 학교에서 필요한 짐을 싸 두었다.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척척이다. 아들의 기숙사 입소를 앞두고 엄마라는 사람은 걱정보다는 곧 찾아올 해방감에 가슴이 설렌다. 혼자 보낼 시간을 앞두고 있으니 기분이 여행 떠나기 전날과 진배없다. 아이는 자신이 기숙사 가는 게 그렇게 기쁠 일이냐면서 엄마가 맞냐고 반문하면서도 같이 기뻐한다.  새로 만날 친구와 시작이라는 단어 앞에서 어느 누군들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중학교 입학 때는 기숙사 사물함에 아이 옷가지와 짐 정리를 하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오는 길에 대성통곡을 한 것도 모자라 한 달 남짓 몸살을 앓았다.이고 지고 가는 삶에 너무 큰 도전을 한 것은 아닌지, 되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닌지 온갖 생각으로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그렇게 평일과 주말 사이 우린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며 3년을 보냈는데 혹독하게 치른 성장통은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과 애틋하게 그리움이 깃든 사랑법도 터득하게 하였다. 이즈음 난 삶의 목표에 건강한 독립을 하는 엄마와 아들도 새겨 넣었던 것 같은데, 방학이 되자 이 꿈은 삐그덕거렸다.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백수가 된 아이는 달콤한 집돌이 생활을 하였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유튜브와 영화를 즐기며 사이사이 공부를 하면서 겨울을 보냈는데 정작 나는 다시는 방학을 안 맞고 싶을 정도로 힘겨웠다.  각자의 공간을 적이 되어 침범하기 일쑤였고, 엄마라는 이유로 아침에 깨우는 일부터 돌밥돌밥(돌아서면 밥)생활과 숙제 및 공부를 확인해가며 매의 눈으로 아이를 살피는 나는 꼭 미어캣이 된 것 같았다. 잠은 왜 그리 늦게 자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청소년의 호르몬은 아이뿐만이 아니라 때때로 내게도 낮과 밤이 바뀌게 만들었다. 아이 생체리듬에 맞추게 되니 감정과 신체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우아한 엄마는 온데간데 찾아볼 수가 없다. 다가올 갱년기가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미리 경험하게 해 준 아들이 고맙기도 하면서 건강한 독립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서로를 들들 들기름 볶아댔으니 날마다 개학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겨울이다. 

아이는 " 아! 방학 한 달만 더했으면 좋겠다!." 나는 " 아! 학교 들어가면 방학 안 하면 좋겠다!"며 서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웃음이 터졌다. 우리의 주특기는 분단위로 싸우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배 아플 정도로 웃는 것인데 장벽없는 너와 내 사이가 어찌 안고마울까. 물론 잔소리라는 허들 앞에서 서로가 극대노하며  신세한탄을 하던 날도 부지기수였으니 정은 더할 나위 없이 두터워져 원수가 다름이 없기도 했지만,  3월 1일, 봄바랑 살랑이던 첫날 껴안으며 당연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학교 기숙사 앞에서 헤어졌다. 서로의 독립이다. 그날 밤 나는 꿀잠을 잤다. 


다음 날 아이는 늦은 밤에 너무 빡세다면서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개학날을 보고했다. 그 시간 난 서울에서 찾아온 지인들과 와인 한 잔을 하며 제대로 개학을 즐기는 중이었다. 1교시부터 자습시간까지의 에피소드를

재잘거리던 아들은 갑자기 "어! 엄마! 무슨 소리야? 어디십니까? 사실을 고하소서." 요청하니 휴대폰 통화소리를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았다. 

친한 언니 오빠에게 아들 녀석 전화라고 하니, "삼촌이야, 이모야, "하며 우린 4자 대화를 나눴다. 

녀석은 내 목소리가 너무 즐겁게 들리는데, 자신도 만만치 않게 즐거우니 걱정 붙들어 매고 즐기란다. 무사히 개학을 맞이한 거 같아 안도하면서도 방학 내내 붙어 있던 아이의 빈자리가 어찌 안 느껴질까. 

괜히 빈 방을 들어갔다 나왔다, 침대에 걸터앉기도, 책상 위를 정리하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모지리라 곁에 있을 때는 원수라고 칭하며 막상 눈에 안보이니 자꾸만 흔적을 따라다니고 있다. 


3월은 봄의 시작, 아이들의 발걸음에 모든 일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새해가 지난 지 두 달이나 지났건만 긴 겨울 끝에 찾아든 햇볕은 또 한 번 마음을 다잡게 만드니 축복이다. 코로나로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 시작의 기운을 막을 수 없지 않을까. 모두가 바라지 않을까. 


오후에 봄바람을 느끼며 두 시간을 걸었다. 얼마 만에 여유를 갖고 밥걱정 안 하며 느긋하게 걸었는지 혼자만의 행복을 느낀다. 온라인 수업이 시작될 수도 있고 여러 변수가 있기에 마음을 다 놓진 않았지만 엄마라는 사람도 그 시간이 얼마가 되었건 온전히 누릴 자유가 있어야 한다.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학교 보내고 난 후 음악 들으며 커피 한 잔으로 행복해 죽겠다는데, 아이가 하교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이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하며 3월을 맞이했다. 우린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을 만진다. 


아이는 개학을 하고 신바람이 났고, 엄마도 개학 후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봄맞이를 준비한다. 곳곳에 쌓인 피로를 날려버리고 숨을 고르며 바람과 함께 길을 걷는다. 

어느덧 주말이 다가온다. 아들을 만날 시간을 앞두고 좀 더 평온하고 밝은 엄마를 보여주기 위해 단장을 했다. 

그래, 너와 나의 봄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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