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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Dec 06. 2023

70년대에 바침.

<서울의 봄> 감상문.

영화 리뷰라고 하기엔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글이 될 것 같아 ‘감상문’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분들은 불편할지도 모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996년 5월 18일 영화 <정글스토리>의 OST가 발매되었다. 신해철의 영화 음악 중에 유일하게 내가 알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70년대에 바침>이란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노래는 지지직 거리는 음질의 박정희 서거 관련 뉴스보도로 시작하여 전두환의 대선후보 수락연설로 끝난다. 엔딩에는 아마 신해철 본인이 마구리로 친듯한 기타 솔로도 있다. 인터넷 어디선가 본 바론 후루루룩 속주를 하는 기타 솔로가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를 상징한다고 하긴 하는데, 잘 모르겠다. 여하튼.


최근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며 자연스럽게 이 노래가 떠올랐다. 특히 2절 가사 전체가 이 영화를 담고 있는 느낌이 들어 분노와 아련함과 슬픔 같은 감정들이 뒤엉켰다. 가사를 곱씹으며 영화에 대해 생각했다.


출처: https://youtu.be/XCvvzEVzYvI?si=3nDjcIIm0SIB6Jxz
한 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 간 그날 이후로
7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
수많은 사연과 할 말을 남긴 채

남겨진 사람들은
수많은 가슴마다에
하나씩 꿈을 꾸었지
숨겨왔던 오랜 꿈을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영화의 큰 줄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10.26 이후 12.12 쿠데타를 통해 신군부가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수도경비사령부와 하나회 이하 반란군-이들의 쿠데타는 성공하였지만 ‘반란군’이라는 표현이 명확하다-이 어떻게 이동하고 대치하였는지 등의 고증을 얼마나 정확히 구체적으로 살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회를 이끄는 전두환의 쿠데타가 성공한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따른다.


다만, 두 인물, 전두환(전두광)과 이태신(장태완)을 중심으로 극이 흐르다 보니 두 인물의 대립을 보여주는 장면에 감독의 주관적인 해석이 과장되게 묻어난 느낌이 있었다. 또한, 사건의 역사적 평가에 따라 분명히 나뉠 수 있는 선악 구도로 인해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가 다소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그려진 점도 단점인 듯하다. 주연급 배우들과 조연들, 특히 얄밉도록 무능한 장성들의 대사와 행동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발암 캐릭터의 클리셰였다.


전두광이 12.12를 도모하는 하나회 모임에서 불을 끄는 행위라던가, 자주 등장하는 화장실의 장면들, 하나회 장성을 이끌며 작전을 지휘하던 그의 얼굴과 몸짓에는 항상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장면은 그의 권력욕과 광기를 직설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황정민 배우의 연기는 영화 막바지에 이르면 실제 모델인 전두환의 모습과 완벽하게 겹쳐지기까지 한다. 그의 연기력은 역시나 정말 무시무시했다. 수년 전에 보았던 영화 <변호인>에서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송강호 배우의 모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으리라.


반면에 이태신의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헤어스타일과, 순정 만화 속 미간을 찌푸린 미남의 짙은 눈썹과 눈빛은 그가 영화 속에서 한 올곧은 행위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분명히 딱딱하고 뚝뚝 끊어지는 대사로 인해 정우성 배우의 연기력이 가려지는 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화면에 담긴 그의 외모와 인상은 사명감으로 가득 찬 군인 캐릭터를 잘 표현하였으며 특히 마지막 바리케이드 장면에서의 눈빛은. 어후. 영화를 보던 내 심정을 그대로 비추는 듯해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으면서도 궁금하기도 했으며, 또한 특히 서글펐던 장면이 있었다. 국방장관의 등장으로 마지막 로켓포 조준사격 명령이 중지되어 쿠데타가 성공한 직후 전두광의 모습이었다. 수경사령관인 이태신이 홀로 바리케이드를 연거푸 넘었지만 헛된 일이었고, 결국 승리는 반란군의 손에 넘어갔다. 반란군 지휘부로 레토나를 몰고 되돌아가던 중 전두광은 차를 세우고 홀로 걸어가겠다 하였다. 어두운 돌담길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반란군 사령부에 도착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숨겨진 그 장면은 무슨 의미였을까. 처량하다는 표현이 전두광에게 어울리진 않았지만, 순간 돌담길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처량해 보였다. “넌 대한민국 국민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라는 이태신의 마지막 대사를 곱씹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이런 악마 같은 배역을 맡은 영화 밖 배우 황정민의 현자타임이었을까.


사실 엔딩의 정상호(정승화) 참모총장과 이태신 사령관의 고문과 상처, 그와 대비되는 전두광의 화장실에서의 미친듯한 웃음과 하나회의 자축연은 다른 여러 장면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감상이 많이 투영된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나 같이 단순하지만 순수(?)한 사람에게 더 큰 분노감을 주었던 것 같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며 울리는 암울한 저음의 군가 <전선을 간다> 역시 군대를 겪어본, 혹은 지켜본 사람들의 분노를 더 긁는(?) 듯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재작년 죽은 전두환을 떠올리며 그의 여러 행적에 분노를 느꼈다. 그가 한 잔인무도한 행위에도 화가 났지만 나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평온했던 그의 말년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죄를 심판받았던 독재자와 권력자도 많았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득권의 꿀물을 따먹다 장수하고 편안히 세상을 뜬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들의 존재는 다시 한번 세상은 공평한 소설 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어떤 게 공평하고 공정한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한국 현대사의 아픔에 대해서는 계속 곱씹고 물고 뜯고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될 것 같다. 때로는 이 영화처럼 어떤 답을 강요할 수도, 때로는 개인에게 판단을 미룰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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