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2023년의 끝.
어느새 12월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글을 오랫동안 써온 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을 쏟아내는 중이다. 아직 쏟아내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러나 감정적 동요, 수치와 자격지심에서 오는 동기 상실, 부족한 자신감, 업무와 알바 등의 부담감으로 인해서일까. 한 편을 완성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의 봄>리뷰는 처음쓰는 영화리뷰라고 하기에도 못 쓴 병신같은 글이 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깊이’에 대한 글도 이미 지난주부터 쓰기 시작했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문법과 문장에 관한 글도 제목만 쓰고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나름 일주일에 한 번 연재한다고 계획한 단편의 지난 화도 꾸역꾸역 썼다. 사실 다 쓰고 나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다. 부끄러울 뿐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고작 3개월 정도, 일주일에 4~5편 정도의 글을 쓴다는 건, 내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굉장한 몰입을 요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글의 가치 있고 없음이나 완성도, 길이 등을 떠나서 내 안에 무언가를 최대한 노력해서 정갈히 써내는 일은 나를 비우고 다시 채워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의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는 일이기도 하였다. 현재 쓰고 있는 이 글도 꾸역꾸역, 아픈 눈을 비비며 억지로 쓰고 있다. 애초에 체력이 약한 것인가. 발행하지 못하는 글들이 쌓여간다.
보름 정도로 회복을 예상했던 목디스크로 인한 팔의 저릿함은 두 달이 넘어 계속된다. 오른팔에 근육이 빠지고 얇아지는 느낌이 일시적인 건지 지속되는 큰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팔 굽혀 펴기와 턱걸이 수행능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불안하다. 그나마 요 며칠 따뜻한 날씨에 좀 더 힘을 내 달렸지만 어깨와 팔의 통증과 저릿함은 가시지 않는다. 평소 달리던 천의 일부 구간도 공사를 시작했다. 원하는 만큼 달리지 못하게 되었다. 불만이 쌓였다.
내년 학교 부서 배정과 관련하여 오늘 교장과 면담했다. 예상한 대로 중책을 맡겼다. 빠져나갈 핑곗거리가 없다. 이미 해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애초에 부담되는 업무라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 올 한 해 정리를 위해 생기부와 성적 처리가 시작되었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깨알 같은 출석부와 생기부 기록을 봐야 한다. 알바로 해야 하는 일이 꽤나 쌓여간다. 예년부터 용돈 벌이로 수락한 몇몇 일들이 올해는 꽤 쌓여 있다. 서둘러해야 한다. 이 또한 큰 부담이다.
내년 초에 열흘 정도 집을 비운다. 아내와 아이를 덩그러니 남겨두는 일이 가장 큰 걱정이다. 올해 초엔 장인, 장모님 손을 빌렸지만 내년에는 아내와 아이 단 둘만 있을 예정이다. 나 없이도 어련히 잘해나가겠지만 소심한 나는 항상 최악의 일을 그리며 걱정한다. 아이의 차멀미가 안 좋아지는지 차 타는 일을 점점 더 거부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덕에 아이와 함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놀러 가는 경험은 좋지만 자동차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쌓여간다.
내후년 초에 살고 있는 임대주택 계약이 만료된다. 어려운 시기에 무리해서 집을 사야 하는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이다. 아내와도 의견이 잘 맞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천박함 어쩌고 저쩌고 혼자 지랄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거주에 대한 안정성 역시 본능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감정이다. 전세로 지낼 때, 큰 문제가 없는 집주인이었지만 전세라는 제도 자체로 인해 느꼈던 불안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내년에 어쨌든 큰 결심을 해야 한다. 돈이라도 잘 쌓였으면 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 지난가을 미처 떨어지지 못하고 아슬아슬 매달려 있던 길가에 낙엽이 쌓였다. 오늘 퇴근길에는 특히 도로 공사가 많더라. 연말이라 지자체에서 쌓인 예산을 털어내는 것일까. 사람들도 두껍게 옷을 싸매고 다닌다. 오늘 막 기말고사를 끝낸 학급 애들은 시험 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저마다 피시방으로, 마라탕후루로 갔을 테다. 나는 걱정과 불안과 불만이 쌓여간다. 좋은 연말이 되긴 글러버린 것인가.
그래도 어찌어찌 잘 굴러가겠지. 시험감독을 하며 멍하니 주문을 외웠다. 계속계속. 마음은 좀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