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퍼센트 허구입니다.
‘하. 힘들다.’
시계는 1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는 미친 듯이 울며 생떼를 쓰다 겨우 잠들었다. 아내와 그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지친 채 아이가 잠든 방에서 나왔다.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달렸다. 아내는 거실 매트 위에 누웠고 그는 작은 방에 누웠다. 긴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을 켰다. 조금 전 아이의 울음과 짜증 속에서 결심한 일을 실행한다.
런치너(Lunchinner). 그가 몇 달 전부터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나름 검증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작가로서의 활동 계획과 샘플 글을 제출하고 통과해야 글을 남들에게 공개할 수 있었다. 일종의 점수라고 할 수 있는 ‘좋아요’와 ‘구독’ 기능을 통해 자신의 글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글을 쓰고 있는 자들의 구독이라 일단 구독을 당하면 그 구독한 사람을 맞구독하는 게 예의라, 그는 생각했다. 정확한 체계는 알지 못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간택되어 메인 화면에 게시되기도 한다. 조회수가 떡상하면 구름에 올라탄 기분이 된다.
그는 지금까지 100여 편의 글을 썼고 구독자 역시 100여 명 정도 끌어 모았다. 평균 10-20 정도의 ‘좋아요’를 받았지만 조회수는 매일 100을 채우기 힘들었다. 두세 번 간택되어 메인에 오른 적도 있으나 그건 그때뿐. 뽕이 차오르는 것도 잠깐이고 곧 저 아래 처박혀 더 심한 공허함과 자괴감에 빠졌다. 그는 최근에 아이를 파는 글을 몇 편 더 썼다. 명목은 나중에 성장한 아이를 위한 기록이지만, 사실은 또 메인에 한 번 실리기를 바랐다. 그 뽕을 또 누리고 싶은 도파민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파민이 이래서 무서운 거다.
여하튼 그는 아이를 재우며 결심했던 일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가 구독한, 동시에 그를 구독한 모든 이에 대한 구독을 취소했다. 100명이 안 되다 보니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구독 취소가 끝난 후, 지금까지 자신이 올린 글을 모두 비공개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그러나 이 또한 곧 마무리되었다. 모든 글을 삭제한 후에 그는 빠르게 글을 한 편 적기 시작했다.
제목: 런치너를 접는 이유.
소제목: 바스락 거리는 내 낮은 자존감을 지키려.
모든 구독을 취소한다. 또한 이 글을 제외한 모든 글을 삭제한다. 엿같다. 내 모자란 글쓰기 실력도. 별 굴곡 없는 인생을 산 것도 큰 이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은 바스락거리는 내 낮은 자존심을 지키려 남 탓을 할 테다.
내 글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해주지 않는 사람이 싫다. 맨날 이혼에, 음식에, 시집살이에, 여행에. 아니면 한없이 얄팍한 자기 계발과 글쓰기 강의. 때로는 인생의 답이라 젠체하며 사기 치는 글이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는 이곳이 싫다. 글 몇 편 올리지 않았는데 엄청난 구독자를 모으는 행운을 누리는 자들도 싫다.
나는 모른다. 좋은 글이 무엇이며,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글을 어떻게 쓰는지를.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걸. 좋은 글을 쓸 만큼의 노력을 하지도 않았고, 또 하지도 못할 거라는 걸. 그러나 무엇이 어찌 됐든 오늘은 좀 엿같다.
내가 싸지르는 이 글을 누가 읽을 것이며, 나의 조그만 분노를 누가 알아주겠냐만은, 누가 신경 쓰겠냐만은. 어쨌든 오늘은 좀 억울하다. 그리고 떠나야겠다. 그래야 화가 좀 풀릴 것 같다. 나를 보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맞춤법 검사도 하지 않고, 사진 같은 것도 첨부하지 않고 글을 올렸다. 잠깐의 시간 동안 3명이 ‘좋아요’를 눌러 주었다. 그중 하나는 그를 구독한 어떤 이. 나머지 둘은 아주 익숙한 아이디였다. 매 번 읽지도 않고 ‘좋아요’를 남발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분노했다. 왜 나한테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는 타인의 관심을 바랐다. 많은 이가 구독해 주고, ‘좋아요’를 눌러주기를 원했다. 널리고 널린 성공의 공식 같은 건 따르지 않고 오직 그만의 취향과 관심과 글쓰기로만. 오만했고, 서툴렀고, 성급했고, 어렸고, 그래서 실패했다.
그날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는 담배가 당겼다.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 그날 처음으로 외출했다. 아침 일찍 내리기 시작한 눈은 오후까지 멈추지 않았고 온 세상에 무지막지하게 쌓여 있었다. 길가 옆 낮은 덤불에도, 가로등 위에도, 주차장 차 위에도 한가득. 길은 철퍼덕철퍼덕 녹다 얼다를 반복한 물과 얼음이 뒤섞여 맛없는 슬러시가 되어 있었다. 그는 슬러시 웅덩이를 피해 편의점으로 급하게 갔다. 가자마자 카운터에서 예전에 즐겨 피던 담배를 라이터와 함께 구입했다. 오랜만에 구입한 담배는 꽤나 비쌌다.
편의점을 나와 아파트 앞 주차장 흡연 구역으로 갔다. 시야에 보이는 하늘은 한 밤중이었지만 밝았고 흐릿한 회색과 붉은색 구름이 낮게, 그리고 두텁게 드리워 있었다. 도시의 밤은 어둡지 않았다. 그는 익숙하게 담뱃갑의 비닐을 뜯고 일회용 라이터의 작은 스티커를 뜯었다. 담배를 입에 물자 문뜩 그가 금연을 시작한 때가 떠올랐다. 라이터를 들지 않은 손가락으로 금연한 횟수를 세어 보았다. 어우야. 장장 9년이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첫 해가 지나 다음 새해가 되면서 그는 담배를 끊었었다.
순간 망설여졌다. 불을 붙일까 말까. 스무 살에 시작한 담배는 여러 번의 금연 시도 끝에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끊을 수 있었다. 담배를 시작한 계기는 식상하게도 짝사랑 때문이었다. 못난 외모와 개성 없는 성격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남들의 관심이 필요했지만, 친구들에게도, 여자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모든 짝사랑은 실패로만 끝났다. 누군가는 이성을 사로잡는 타고난 미모로 피곤한 삶을 살지만, 그에겐 경험한 적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수없이 남을 질투했고, 수없이 부러워했다. 그런 생각이 스쳐가다가 갑자기 아내에게 고마워졌다. 이런 나 같은 인간을 만나 결혼해 줘서. 대다수 동물의 수컷 중에 짝짓기에 성공하는 경우는 20프로도 안 된다고 한다. 80프로는 짝짓기에 실패한다는 말이다. 인간 수컷만이 그나마 결혼과 같은 문명화된 사회시스템 덕분에 적자(適者)가 아니라 해도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얼마나 다행인가?
에이씨. 그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손으로 구겼다. 갑에 들어 있던 나머지 담배도 전부 구겨 재떨이에 버렸다. 금연을 시도할 때 많이 해 본 일이었다. 아. 글감이 떠올랐다. 그는 담배와 라이터를 전부 버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살며시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에게 감사의 눈인사를 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패딩을 벗었다.
초인지. 그의 머리 위에서 또 다른 그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 서글픈 감정과 그의 부정적인 생각을 글로 토해내는 자신을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어졌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면 분명히 위로가 될 테다. 스마트폰을 켰다. 00:00. 새해가 밝았다. 엄밀히 말하면 해가 뜬 건 아니지만 새로운 한 해가 카운트를 시작했다. 그는 런치너 앱을 켜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제목을 뭐라고 하지? 구독을 취소하고 글을 삭제하고 이상한 글을 싸지른 사실은 잊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두 엄지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시작했다. 몇 번의 오타가 있어 지우고 다시 써 제목을 완성했다.
[단편소설] 마음의 문제
<끝>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