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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Apr 13. 2023

우리는 타인이다

캄보디아 여행 2



 결혼 후 부모님과 일주일가량을 붙어 지낸 건 오랜만이었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집을 떠났고 그 후로 부산에서 잠시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와 산후조리를 위해 머문 기간 정도가 부모님과 밀착생활을 했던 기간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사나흘 정도 함께 지내다 보면 우린 역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 번씩 만나는 게 서로에게 낫겠다는 결론이 나오곤 했다.



 4박 6일의 여행을 부모님과 함께 가기로 결정한 것은 부모님과의 동거가 힘든 이유를 잠시 잊은 것도 있었지만, 더 늦어지면 영영 그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이유 때문이었다. 해외여행에서는 부모님이 내게 전적으로 의지할테니 주도권에 별문제가 없을 거라는 헛된 희망도 있었다. 처음엔 그런 듯했다. 우린 오랜만의 해외여행에 들뜬 분위기였고 엄마 아빠의 고령에도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졌다.



 인간관계란 행복한 시기를 겪을 때보다 불운한 시기를 함께 보낼 때 어떻게 서로에게 힘이 되는지가 중요 포인트가 된다. 더운 나라를 여행하는 만큼 체력이 떨어질 때 어떻게 서로 지치지 않을지가 관건이라 예상했다. 물론 그 문제도 있었다. 예상 문제의 답을 쉽게 틀리지 않는 것처럼 그 문제는 생각보다 무난하게 극복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서로 다른 생활태도였다. 동남아 음식이 부모님에게 잘 맞지 않을 거라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쌀국수며, 분짜며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 음식을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냈다. 한국 패키지여행답게 한식이 하루에 꼭 한 번씩은 포함되어 삼겹살, 백숙 등 한국에서보다 더 과한 영양을 섭취하게 되는 것 같았다. 언니와 나는 자신에게 적당히 조절하며 즐기는 반면 엄마는 주어진 다양한 음식에 호기심 가득히  지나치게 많은 양을 섭취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잘 먹으니 좋다 했다가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몸무게만 훌쩍 늘어 당뇨 수치가 오르진 않을지 염려스러워 엄마를 말리기 시작했다. 입맛 좋은 엄마와 음식을 조절시키려는 딸들의 대립으로 여행은 점점 삐끗거리기 시작했다.



 아빠에겐 동남아 여행이 처음이었는데 선진국 여행 경험만 있던 아빠는 다소 실망하는 눈치였다. 패키지여행답게 쇼핑이 몇 번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빠의 불편한 표정이 내 예민한 촉수로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나 배를 탈 때 아빠는 피곤해서인지 계속 꾸벅꾸벅 졸며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곤 했는데 그 순간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좋은 구경을 시키고 싶은 우리 열정과 엄마 아빠의 수용능력은 온도가 달랐다.



 언니와 저녁에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좋은 구경을 시키고 싶은 부모 마음에 호응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보는 느낌이라고 언니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우리 욕심이 과했던 걸까. 오랜만에 함께 하는 여행이니 엄마 아빠가 잘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 우리 의도대로 이끌려고 너무 힘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가족 여행이 잘 흘러가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생각하니 작년 몽골여행이 떠올랐다. 지난 몽골 여행의 동행중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온 사십 대 후반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함께 여행을 자주 하는지 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유롭게 즐기고 있었고 딸과 엄마도 서로 무심한 듯 지냈는데 각자 즐거워 보여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행 말미에 그녀는 내년에 부모님들과 함께 산티아고를 걸으러 갈 계획을 이야기해서 우리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그녀를 떠올리며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니 우린 서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힘을 주고 있었던 것 같다. 서로 챙기는 것이 과해서 참견이 되고, 상대의 행동이나 말을 지적하게 되어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엄마는 우리가 밥을 너무 적게 먹는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엄마가 조심성 없이 음식을 먹고 투덜거린다고 나는 지적질했다. 아빠의 여행에 대한 기분을 이리저리 간섭하려 한 것도 지나친 참견이었다. 너무 아름답지 않냐고 재촉하며 물어봤던 나 자신은 아마도 멋진 딸 역할을 칭찬받고 싶은 아이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여행은 그저 함께 하는 것이지 그에 대한 감상은 각자의 몫임을 인정하지 못했던 거다.



 돌아오는 날, 우린 매우 지쳤다. 날씨도 더운 데다가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도 길었다. 엄마는 음식 알러지 때문인지 얼굴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가려움증을 호소했다. 얼른 가족들과 헤어져 내 집에서 편안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엄마, 아빠의 심정은 나보다 더 간절했을 것이다. 여행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거라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했다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그리고 언니와 나는 각자대로 가족이지만 다른, 완전한 타인이었음을 깨닫고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다시 기억한다면 조금은 느슨히 따로 또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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