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with 광희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어려운 책이다. 첫 문장부터 그 난관이 시작된다. 친구와 함께하는 독서클럽의 첫 책이었는데, 둘 다 책을 펼치자마자 무지 당황했다.
우리는 니체의 사상도 검색해 보고 책에 필기도 하면서 이해해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도 그 의미가 우리에게서 겉돌았는데, 뜻밖에도 우리가 무거운 이야기를 버려두고 가벼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확실한 'dog person'이었고 표지를 장식하기도 한 카레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레닌을 사랑하게 된 건 그저 무해한 강아지이기 때문은 아니었고 이 구절 때문이었다.
카레닌은 변화를 싫어했다. 개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게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시간의 흐름도 하나가 지나면 다음 것으로 가는, 점점 멀리 앞으로 가는 쉼 없는 운동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은 손목시계 바늘처럼 원운동을 했다.
시간의 원운동을 즐기는 삶이, 그 단순한 삶의 매력을 아는 카레닌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카레닌이 최애 캐릭터가 된 건 아마 인간인 우리는 그런 삶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직선으로 나아가야만 만족하는 삶!
근데 슬프게도 우리의 삶은 우상향의 그래프처럼 나아가지도 않는다.
반복적이지도 않으면서, 그 안에서 철저하게 좌절하고 새롭게 창조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직선으로 나아가는 삶'이라는 인간의 숙명에서 벗어나야만 행복할 수 있는 걸까?
'럭키비키'한 사고로 고통받는 삶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억지로 끌어내야만 하는 것일까?
1968년, 프라하의 봄
가벼움과 무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던
토마시의 삶은 행복했을까, 불행했을까?
그의 삶을 행과 불행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없다!
아무런 의미 없이 공명하는 삶일 뿐이니까.
삶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그저 강아지처럼 행복이 반복되는 삶을 살고 싶어 진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