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구병모 with 밍
북클럽을 운영하면 책에 제법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 같은 새 책을 좋아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ebook이나 중고서적을 뒤적거리곤 한다.
『파과』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찾기 어려웠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오프라인 중고서점 중 단 한 곳에서도 팔지 않았던 것 같다.
교보에 직접 들려서 책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오직 양장본 밖에 없어서 을지로 감성의 - 촌스러움을 가장한 세련됨의 - 딱딱한 표지로 된 책을 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책들보다 6-7000원은 더 비쌌다. 가방에 쑤셔 넣었다가 공부가 지루해지면 꺼내보거나 잠자기 전 꾸벅 거리며 읽다가 머리맡에 둔 채로 뒹굴거리거나 비 오는 날 벤치에 앉아서 봐도 변형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함이 마음에 들었지만, 넷플릭스의 한 달 구독료보다 비싸서 괘씸했다.
내가 책을 사는 과정을 이리도 길게 설명한 건 파과가 그런 식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60대 여성 킬러인 조각의 삶을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책이다.
이런 섬세한 묘사가 책을 둘러싼 디자인에도 영향을 끼친 걸까?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홍콩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단단하고 세심하게 신경 쓴 책 디자인은 홍콩 영화 특유의 눅진한 색감을,
두 세줄씩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왕가위와 주성치 그 사이의 장면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