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축구 동상 투어 ②
아스널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이다. 한때 EPL 최강자로 우뚝 선 바 있는 명문이며,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하며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여러 축구 클럽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축구 종가의 심장’과 같은 런던에서 가장 먼저 뇌리에 스치는 클럽 중 하나가 바로 이 아스널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런던을 찾는 축구팬들은 런던 중심부에서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단번에 닿을 수 있는 아스널의 안방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마치 성지를 찾듯 방문한다.
EPL과 유럽 클럽대항전을 통해 한국 팬들에게도 정말 낯익은 경기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정말 볼거리가 많은 경기장이다. 영국에서 가장 큰 축구 경기장 중 하나인 만큼 내부의 시설은 굳이 설명할 것 없이 화려하고 최상의 수준을 자랑한다. 그런데 내부보다는 외부의 조형물이 더 기억에 남았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마치 휘감듯 레전드들의 모습이 새겨진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며, ‘포병대’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이 조형물을 쭉 읽으며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아스널의 역사를 충분히 익힐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주변 광장에는 토니 아담스·티에리 앙리·데니스 베르캄프·허버트 채프먼 감독의 동상이 팬들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이 동상들이 인상 깊었다. 경기장 앞을 지키는 대부분의 레전드 동상은 그저 우뚝 서 있다는 느낌만 주는 경우가 많지만,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유달리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 볼 맛이 난다. 특히 주특기였던 뜬 볼을 아름답게 발로 컨트롤하는 베르캄프의 모습을 본뜬 동상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이 동상들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찾는 축구팬들의 포토 스폿으로서 매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키는 네 개의 레전드 동상보다 더 뇌리에 남은 동상이 있다. 더 화려하거나 커다란 작품은 아니다. 동상의 주인공이 된 네 명의 전설보다 유명한 인물을 다룬 것도 아니다. 아니, 지금껏 언급한 동상에 비한다면 보잘것없이 작다. 심지어 위치는 구석진 곳에 있으며, 정말 현지 골수 축구팬이 아니고서는 알아보기 힘든 인물이 동상으로 다뤄져 있다.
주인공은 켄 프라이어 전 아스널 사무총장이다. 언급했듯이, 프라이어 총장의 동상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인근의 다른 동상과 달리 다소 외진 곳에 있다. 런던 피카딜리선 아스널 역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이어주는 북쪽 다리에 숨죽여 자리하고 있다. 그 크기는 앞서 소개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다른 동상에 비한다면 마치 꼬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꼬마 동상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있는 그 어떤 동상보다도 위대하다.
“OBE(대영제국 4급 훈장) 켄 프라이어. 1945년의 어느 날, 어린 켄 프라이어는 친구들과 함께 아스널의 홈구장인 하이버리(옛 스타디움)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즐겼었다. 잘못찬 볼이 주차된 차 아래로 들어가자, 프라이어는 천진난만하게 그 볼을 가지러 갔다. 그런데 그 차 주인이 바로 당시 아스널의 감독 조지 앨리슨이었다. 앨리슨 감독은 어린 프라이어의 열정에 크게 감동했다. 앨리슨 감독은 다음 날 사무국에 그 일을 알렸고, 열두 살의 어린 나이인 켄은 그 계기로 매치 데이 때 경기장에서 메신저라는 일을 얻게 됐다. 그날부터 프라이어는 아스널의 충직한 일꾼이 됐다. 1950년, 프라이어는 매치 데이 티켓 오피스에서 풀타임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성장해 클럽의 사무총장, 테크니컬 다이렉터를 역임했으며 아스널이 하이버리를 떠나 새로운 경기장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리더로서 활동하는 등 클럽을 위해 무척 헌신했다. 지난 60년간 아스널이 성공을 거듭하는 데 중심에서 활동하며 평생 헌신한 프라이어를 예우를 갖춰 여러분께 소개한다.”
- 켄 프라이어 동상 소개문
팬들은 아스널 하면 아르센 벵거 전 감독을 떠올린다. 1930년대를 주름잡은 허버트 채프만 감독과 더불어 아스널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비단 축구팀을 잘 만든 감독이 아니라 아스널이 지금의 세계적 명성을 다질 수 있는 토대를 놓은 인물이기 때문에 이처럼 영웅처럼 숭배한다. 전 세계에서 축구팬들이 몰려드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 건립되는 과정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하지만 프라이어 전 총장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튼튼하게 밑바탕을 다지지 않았다면 벵거 감독의 성공 신화도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휘황찬란한 아스널 역사를 빛낸 수많은 레전드들이 ‘포병대’의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게 된 것 역시 프라이어 총장의 물밑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우리가 아는 아스널의 이미지가 벵거 전 감독의 진한 영향력에 의해 탄생했다면, 아스널의 역사와 토대는 프라이어 전 총장의 헌신이 빚어낸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스널은 바로 그 점을 잊지 않았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이전을 기념해 프라이어 전 총장의 동상을 세운 이유기도 하다. 아스널 역에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이어지는 ‘북쪽 다리’의 정식 명칭도 ‘켄 프라이어 브리지’다. 아스널은 동상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다리의 이름까지 헌정하며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추앙하고 있다.
이 동상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프라이어 전 총장이 걸어온 길과 남다른 사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하이버리 인근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던 아스널의 어린 광팬이 우연히 프로팀 감독의 눈에 들어 프런트의 길에 들어선 후, 60년간 밑바닥에서부터 클럽 최고 고위직에 오르기까지 오직 아스널 외길만을 걸었다.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이 80년이 넘은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이 됐지만, 열정만큼은 열두 살 시절처럼 변치 않았던 진정한 ‘구너’였다. 단순한 팬심의 발현이 아닌, 축구 전문 경영인으로서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피치를 누빈 아스널의 별들보다 덜 유명할지 몰라도, 동상의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은 충분한 인물이다.
이 동상의 존재가 좀 더 뇌리에 남은 이유는 또 있다. 사실 축구 동상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축구인들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물론 프런트나 경영진도 광의의 개념에서는 축구인에 속하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축구인’을 떠올리면 피치를 질주하며 수많은 사람의 환호성을 이끌어내는 선수들을 연상하지 프런트나 경영진을 뇌리에 올리진 않는다.
그런데 곰곰 떠올리면 프런트나 경영진을 향한 팬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짚어보자. 좋은 성적을 내면 대개 선수나 감독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지만, 프런트나 경영진의 노고는 그리 인정해주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기를 망친 감독과 선수들도 비판을 받지만, 프런트나 경영진들도 제대로 뒷바라지 못 했다는 이유로 선수·감독 못잖게 질타받기에 십상이다. 한마디로 프런트나 경영진은, 존경은커녕 욕먹기 딱 좋은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이든 한국이든 똑같다. 그런 사람들이 동상의 주인공이 된다니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프라이어 전 총장의 동상이 말해주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동상까지 제작되어 헌액될 정도로 훌륭한 프런트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년간 한 클럽에만 헌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대표이사급 인물들은 길어야 3년을 못 버티는 현실을 고려할 때 프라이어 전 총장과 같은 사례가 한국에서 나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클럽을 향해 충성심을 발휘하며 온 힘을 다한 프라이어 전 총장의 자세만은 배워야 할 것이다. 축구 경영인으로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건 두말할 것 없다. K리그에서도 ‘한국의 프라이어’가 나타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