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팬들의 조롱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는 이제 단순한 라이벌전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선 대결이 아닐까 싶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팀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 지면 끝이라는 느낌을 주는 벼랑 끝 승부라는 느낌을 준다. 단순히 ‘숙적’이라는 요소로 마름질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적수가 바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다.
백 년이 훌쩍 넘은 기간 동안 두 팀은 2021년 현재 총 280경기를 치렀다. 매 경기가 열릴 때마다 경기 전후로 수많은 이슈가 양산된다.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당대를 뜨겁게 만들었던 화제들인데, 그중에서도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 꼭 언급되는 엘 클라시코가 있다.
바로 1968년 7월 11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벌어졌던 1967-1968 코파 델 헤네랄리스모 (Copa del Generalismo) 결승전이다. FC 바르셀로나 박물관에서는 수많은 엘 클라시코 중에서도 유독 이 경기를 조명하는 이유가 있다. 이 경기는 이른바 ‘물병 결승(La final de las botellas)’이라는 이명으로 불린다. 바르셀로나 박물관이 던진 단서를 통해 당시를 추적하니 꽤 재미있는 스토리가 나왔다. 아마도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지금까지도 부득부득 이를 갈고 있을 법한 이야기다.
경기부터 간략하게 짚겠다. 이 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통산 열다섯 번째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전반 6분 카를로스 렉사흐의 크로스를 막으려던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 페르난도 순수네기의 자책골로 승기를 잡은 바르셀로나가 그대로 스코어를 굳혀 1-0 승리를 만들어냈다. 거친 파울이 오가는 등 굉장히 격렬했고, 승패가 갈렸다는 점에서 여타 엘 클라시코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경기의 의미는 매우 크다.
일단 대회명에 집중해야 한다. 코파 델 헤네랄리스모(Copa del Generallismo)는 지금은 코파 델 레이(Copa de Rey)로 불리는 스페인 컵의 과거 명칭이다. 우리식으로 재치 있게 표현하자면 ‘위대한 장군님 컵’이다. 그리고 이 ‘장군님’이 누구인지는 다들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안 좋은 쪽이긴 하지만 바르셀로나 클럽 역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스페인의 철권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전 총통을 말한다.
바르셀로나는 프랑코 총리 시절 영문식이었던 클럽명(FC Barcelona)를 카스티야식(Club de Barcelona)로 바꿔야 했고, 호셉 수뇰 회장 등 여러 클럽 인사가 체포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를 프랑코 정권의 지원에서 찾고 있을 정도로 프랑코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지 못하다.
그런 대회에서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바르셀로나 주장 호세 안토니오 살두아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원흉’ 프랑코로부터 트로피를 넘겨받았고, 경기장을 돌며 트로피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러자 흥분한 바르셀로나 팬들이 피치로 내려와 선수들과 즐거움을 함께했다. 여기까지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엘 클라시코의 풍경이라 할 수 있겠는데, 경기 직후 난장판이 됐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이 경기에 대해 심판의 농간이 작용한 경기였다고 추억한다. 경기 진행을 맡은 안토니오 리고 주심이 열혈 바르셀로나 팬으로 유명했기에 애당초 심판 배정부터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심판 판정에 대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불온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일도 발생했는데, 실점을 내준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 페르난도 세레나가 바르셀로나 수비수 가예고의 퇴장성 태클을 받아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넘어가 버린 것이다. 세레나는 후반 19분에도 박스 안에서 바르셀로나 수비수의 태클에 나뒹굴었으나 리고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았다. 후반 19분 상황 이후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이성을 잃을 만치 분노했고,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사방에서 유리병을 던졌다. ‘물병 결승’이라는 이명이 붙은 이유다.
종합하자면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안방에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굴욕을 당한 경기라 할 수 있다. 표면상 ‘중립’을 지키고 귀빈석에서 관전한 프랑코 역시 결코 기분이 좋지 못했을 순간이었다.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스페인 프로축구 사상 최악의 경기 중 하나로 꼽는다. 또한 바르셀로나와 라이벌리가 더욱 험악해진 결정적 계기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바르셀로나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난동 덕에 스페인 라 리가에 경기장 내 유리병 반입 금지라는 안전 조항이 신설됐다는 지독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레알 마드리드 팬들을 조롱했다. 아래 사진이 그 증거다. 사진 속 팻말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비밀 병기(Arma segreta del R. Madrid)’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그 팻말을 자세히 살피면 유리 콜라병에 매달린 것을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경기도 지고 매너에서도 졌다며 비웃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 레알 마드리드 팬들과 달리 바르셀로나는 왜 이 경기 승리를 두고두고 기억할까?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우승컵은 ‘장군님 컵’이다. 그리고 이 경기는 역사상 처음으로 ‘적의 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치렀던 결승전이었다. 게다가 프랑코가 직접 스타디움을 찾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전에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한 적이 있긴 하다. 1958-1959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서 그라나다를 3-1로 꺾고 정상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엄연히 ‘제3 경기장에서 치른 경기’였다.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은 결승전을 유치한 클럽이 결승행에 성공하지 않는 한, 대부분 제3경기장에서 치러졌다.
하지만 이 경기는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홈에서, 트로피를 걸고, 프랑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승리했다. 프랑코 정권에 억눌렀던 설움이 당시 승리의 기쁨을 통해 ‘대폭발’한 것이다. 지금까지 무려 서른 번이 넘도록 이 대회 정상에 섰음에도 유달리 1967-1968시즌 우승을 기리는 이유다.
경기가 끝난 후 프랑코 정부는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홈페이지는 지난 2014년 홈페이지를 통해 이 경기 후일담을 전했는데 그 내용이 꽤 재미있다. 경기 직후 프랑코 정부의 한 장관 부인이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이었던 나르시스 데 카레라스에게 전화를 걸어 “바르셀로나도 스페인의 일부니까 기꺼이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카레라스 회장의 답변이 꽤 걸작이다.
“부인, 농담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