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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볼 보헤미안 Oct 26. 2021

축구적 관점으로 본
카탈루냐 분리 독립 민심

세녜라 vs 에스텔라다 깃발 전쟁

라크 그로크(Llac Groc)라 불리는 카탈루냐의 노란 리본 @풋볼 보헤미안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겪은 일화다. 누군가의 소개로 현지 한인 여행 코디네이터와 귀중한 새 인연을 맺었었다. 본의 아니게 그의 집에도 초대돼 귀중한 손님께 내어준다는 귀한 와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늦은 밤까지 나누었다. 그를 통해서 늘 뉴스나 글로만 접했던 카탈루냐의 본모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바르셀로나에선 곳곳에서 노란 리본을 볼 수 있다. 노란 리본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비극적이었던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려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가슴에 붙인다. 바르셀로나 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한인들은 그 노란 리본을 곧 가슴에서 떼어내야 했다. 추모할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 노란 리본은 카탈루냐에서는 분리 독립을 상징한다. 호셉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도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이 노란 리본을 달았다가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한인들은 세월호 사건이 안타깝긴 해도, 남의 나라의 난감한 문제에도 끼어드는 모양새가 무척 곤란했을 것이다.      


전 세계 축구를 관장하는 FIFA에서는 역사와 정치의 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대리전’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일본과 얽힌 복잡한,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역사 문제 때문에 한·일전이 벌어질 때마다 그 긴장감은 늘 최대치로 고조된다.      


유럽은, 사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정치적 관점에서 유럽 축구 클럽 중 가장 높은 관심을 모으는 팀은 세계 최고 명문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일 것이다. 그들의 근거지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독립 이슈로 늘 뜨거운 곳이다. 한국에도 그들의 역사가 나름 잘 전해진 바 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전해진 중요한 루트가 바로 축구 명문 바르셀로나였으니, 축구와 역사는 FIFA의 노력과는 별개로 불가분의 관계라 여겨도 되지 싶다.      

라 람블라스에 등장한 이 깃발은? @풋볼 보헤미안

현지의 정취를 느끼고자 바르셀로나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라 람블라스를 걸었다. 각종 기념품 상점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그곳에서 가장 시선을 끈 건 바로 어떤 젊은 남녀 그룹이 보무도 당당하게 걸으며 크게 휘둘렀던 커다란 카탈루냐 기(旗)였다. 보통 세녜라라고 불리는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을 현지에서 깨우치게 됐다. 카탈루냐 기는 정확히 두 개다.      


세녜라는 노란색 바탕에 붉은 가로줄 네 개가 그어져 있어 마치 군대 당직 사령의 완장을 연상케 하는 바로 그 기를 뜻한다. 이 기는 카탈루냐 지방을 뜻한다. 본래 이 문양은 중세 시대 이 지역을 근거지로 뒀던 아라곤 연합 왕국 국왕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세녜라를 기본 바탕으로 쿠바 국기 디자인을 차용한 듯한 기가 따로 존재한다.      


또 하나의 카탈루냐 기인 에스텔라다다. 이 기가 쿠바 국기를 닮은 데 이유가 있다. 쿠바는 지금도 ‘저항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강한 영감을 끼치고 있는 체 게바라가 활동했던 주요 근거지였다. 그 쿠바 국기 디자인을 세녜라에 반영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국가를 만들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두 기를 향한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세녜라는 예부터 카탈루냐 지역을 뜻하는 기였기에 스페인 중앙 정부에서도 인정한다. 공공 기관에 스페인 국기인 라 로히괄다와 더불어 게양되기도 한다. 그저 지방기라는 의미로 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탈루냐 독립 지지란 뜻을 담은 에스텔라다는 그렇지 않다. 이 기를 소지하는 이들은 현지에서는 모두 독립주의자로 여겨진다. 공적 장소에서 게양하지 못하고, 소지하는 이들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제법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라 람블라스 거리에서 만난 한 청년 그룹이 흔들었던 카탈루냐 기는 세녜라가 아닌 에스텔라다였다. 바르셀로나 한복판에서 그 커다란 에스텔라다를 대놓고 휘두르는 모습에서, 스스로를 ‘에스파뇰’이 아닌 ‘카탈란’이라 자칭하는 카탈루냐인의 한(恨)이 정말 크긴 크다고 생각하게 됐다.      

호텔 등 공공 장소에는 에스텔라다가 아닌 노랑색 바탕의 세녜라기가 쓰인다. 이는 스페인의 지방임을 뜻하는 기다. 독립주의자들의 깃발은 쿠바 국기를 닮은 에스텔라다다. @풋볼 보헤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라 람블라스에 자리한 제법 많은 건물에는 에스텔라다와 함께 스페인 정부에 성토하는 문구가 새겨진 항의성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중에는 “스페인 정부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죽이고 있다. 그들의 의지는 카탈루냐 인들의 입을 막을 수 없다(Spanish Government Killed Our Democracy But Will Never Shut Catalans Mouth)”라는 영문 플래카드를 내걸어 라 람블라스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자신들이 탄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이들도 있었다.      


바르셀로나를 찾기 수일 전 방문했던 장소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그들의 행동이 더욱 대담하게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마드리드 북서쪽에 자리한 조그마한 도시 엘 에스코리알에는 카탈루냐인,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과거 스페인을 철권통치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전 스페인 총리에 대항한 모든 사람들의 피눈물이 스며든 장소가 있다.      


바예 데 로스 카이도스(Valle de los Caidos),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전몰자의 계곡이다. 이곳은 스페인 내전 기간에 사망한 약 4만 명을 추모하기 위한 묘역이다. 우리로 치면 언뜻 현충원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그처럼 단순한 의미의 장소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150m가량의 대형 십자가가 전몰자의 계곡을 짓기 위해, 프랑코 정권에 대항했던 카탈루냐인을 비롯한 정치범들이 무려 20여 년에 걸쳐 강제 노역을 당했다.        


프랑코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 바예 데 로스 카이도스. 마드리드 근교 도시 엘 에스코리알에 있다. @풋볼 보헤미안

이 전몰자의 계곡에는 프랑코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으며, 반(反) 프랑코 정권 운동과 독립을 주창하다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카탈루냐 인도 합사돼 있다. 요컨대 카탈루냐인에게는 마치 한국인의 눈에 비친 야스쿠니 신사와 동급인 모욕의 장소이기도 하며, 그래서 지금도 스페인 내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야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외부 세계에서는 프랑코 전 총리는 스페인의 독재자로만 보는 시각이 크지만, 스페인 내에서는 꼭 그렇지 않아서다. 어찌 됐건 독재자였다는 게 공통된 견해이기에 대놓고 추앙하는 이가 많이 사라지긴 했다. 하나 프랑코 전 총리를 극히 혐오하는 카탈루냐인 만큼이나 그의 통치 시절을 은연중에 그리워하는 이들도 역시 상당수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즉 프랑코 전 총리는 현대 스페인 사회에서 여전히 죽었어도 살아있는 사람이며, 그래서 끊임없이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모습은 현대 한국 정치사와도 닮은 구석이 있어 꽤 흥미롭게도 여겨졌다. 이런 모습은 세비야나 마드리드에서는 느끼지 못했었다. 생생한 대립의 흔적이 바르셀로나에는 넘치듯 존재했고, 그건 축구 관련 장소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코 시절 유니폼에 부착됐던 엠블럼(좌측)과 2000년대를 풍미한 위대한 캡틴 푸욜의 주장 완장. 둘 다 세녜라에서 모티프를 땄다. @풋볼 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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