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박물관과 프랑코 정권
바르셀로나 박물관이 바로 그런 장소였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축구 경기장 중 하나인 캄 노우 내부에 대규모로 조성된 이 하이테크놀로지 축구 박물관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축구 팬이 성지 순례하듯 찾는다.
그런데 바르셀로나 박물관은 이전까지 숱하게 방문했던 여타 유럽 클럽 박물관과 약간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줬다. 여타 유럽 클럽 박물관들의 전시 기준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에게도 역사 등 이런저런 이유로 결코 승부에서 물러설 수 없는 라이벌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라이벌리를 심도 있게 다루는 곳은 거의 없었다. 클럽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혹은 그 성과를 거두었을 때 어떤 스토리가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소개할 뿐이지, 특정 대상을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박물관은 그렇지 않다. 반(反) 프랑코 정서, 혹은 그들이 프랑코 정권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반 레알 마드리드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겠다. 지금도 세기의 이적 파문 중 하나로 불리는 알프레드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비화를 소개할 때 ‘프랑코주의자(francoist)’라는, 꽤나 정치적 문구를 써가며 방문객들에게 설명한다. 비단 디 스테파노 사건뿐만 아니라 정권과 대립했던 역사가 박물관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클럽 창단의 산파 구실을 한 초대 회장 호안 감페르, 감페르의 유지를 받든 2대 회장 호셉 수뇰의 비극적 죽음은 지금도 바르셀로나 팬, 특히 카탈루냐인의 피를 끓게 하는 스토리다. 감페르는 프랑코 총리의 전임자인 프리모 데 리베라의 정치적 탄압을 받다 클럽 접근 금지 처분을 받았고, 이후 우울증을 앓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수뇰은 아예 프랑코 정권에 부역한 이들에게 체포된 후 살해당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바르셀로나는 예부터 유럽에서 가장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클럽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축구적 이슈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단적 예로 1970년대 홀연히 캄 노우로 날아든 슈퍼스타 크루이프만 해도 그렇다. 크루이프를 향한 바르셀로나 팬들의 지지는 매우 뜨겁다. 물론 한 시대를 지배한 위대한 선수이자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라 마시아’로 대표되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선수 육성 자산을 남긴 인물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긴 하다. 그러나 카탈루냐인에게는 정치적 측면에서도 크루이프는 거물이었다.
여러 일화가 있다. 카탈루냐 인들은 지금까지도 디 스테파노를 레알 마드리드에 강탈당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프랑코 총리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지한다고 여기는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크루이프도 레알 마드리드의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를 선택했다. 먼저 자리하고 있던 ‘스승’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부름이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크루이프는 “독재자의 클럽에서 뛸 수 없다”라는 정치적 이유를 들먹이며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은 것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카탈루냐 인들이 느꼈을 기쁨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프랑코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치러진 레알 마드리드 원정 경기에서 5-0 완승을 주도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 경기는 카탈루냐 인들이 여기는 역대 최고의 엘 클라시코이며, 바르셀로나도 박물관을 통해 영원토록 기억하고 있다. 그저 축구일 뿐이지만 바르셀로나에 투영되는 카탈루냐 인들의 축구는 축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요소다.
그래선지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을 ‘클럽 그 이상의 클럽(Mes que un club)’이라 칭한다. 사실이다. 카탈루냐 인들에게 바르셀로나는 단순히 축구 클럽이 아니라 분노 표출 창구였다. 바르셀로나도 공식적이진 않지만 그러한 민심을 최대한 수용한다. 여타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정치적 볼거리가 자리한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독재자 운운하며 레알 마드리드를 비토 했던 ‘대선배’ 크루이프를 닮고 싶어서인지,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들은 유달리 정치적 견해 표출을 주저하지 않는다. 2000년대에 활동한 수비수 올레게르 프레사스는 카탈루냐 독립을 주장하는 수많은 정치적 행동 때문에 개인 스폰서가 끊긴 적이 있다. 사비 에르난데스와 헤라르드 피케는 바쁜 팀 스케줄을 쪼개 카탈루냐 독립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아예 카탈루냐 독립 선언문 초안을 낭독하기도 했다.
정치적 논란에 난감해진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노란 나비 배지를 떼라고 경고하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징계가 주어지면 기꺼이 벌금을 내겠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전 세계 어느 팀에서도 이런 행동을 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이면 ‘민주 투사’라고 봐야 하지 않나 싶지만,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카탈루냐 인들의 사랑을 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한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