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by 수웊


텅 빈 무대 위, 조명이 들어온다. 사람1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사람1]


당신이 나를 궁금해 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영원히 알지 못하길 바랍니다.


함께 음악을 들어볼까요? 당신의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해요. 아, 하지만 당신의 취향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것도 보여드릴까요? 전 제법 이런 음악도 듣는답니다. 네? 이미 알고 계시다고요? 아, 어떨 때는 반갑지만 어떨 때는 저의 취향이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반갑군요. 이 음악을 아시다뇨. 당신은 어떤 부분에서 이 음악이 맘에 드셨을까요? 전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겨울이 생각나거든요. 제가 겨울을 참 좋아해요. 특히 아주 차가운 공기를! 이 음악은 드라마에 나온 음악인데요. 그냥 들었을 때 분위기가 참 좋은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음악을 만든 사람의 창작 과정을 보고 더 빠져들었답니다. 이 드라마 OST에 여성 가수가 부른 노래들도 꽤 매력적입니다. 아 잠깐, 책은 말이죠.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꽤 노력 중입니다. 그래도 우연하게 시작한 독서모임을 통해 완독하는 힘을 길러냈지요. 제가 흥미로웠던 책은... (사이)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 혹시 아세요? 제가 진짜 재밌게 본 영화 OST인데 한동안 계속 들었거든요. 머리를 길게 기른 주인공이 어디선가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니까요. 영화가 끝나면 그냥 끝인데 말이죠. 제가 영화 속 인물의 행복을 바라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인 것 같아요. 제 영화 취향이요? 아직 확정 짓진 못하겠지만 지금의 제 취향을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와, 이 사람 영화 정말 잘 만든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참고해 주세요, 아무튼, 이런 감상과 ‘아, 이 사람 너무 존경스럽다’ 하는 감상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어디선가 이어져 왔고 또 어딘가로 향하는 그런 시간을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이 존경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인물들이 긴 시간 무엇인가를 만들기도 하고,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오랜 시간 죽어있기도 한답니다. 오랜 시간 죽어있는 것은... 영화를 보시면 알 텐데, 보시고 그렇게 생각 안 하실 수도 있어요. 우리는 다르니까요. 근데 그럴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죽어있다라... 얼마 전 초등학교 수업에서 죽음에 대한 주제가 나왔답니다. 어떤 아이가 죽음이란 나의 엄마의 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궁금해지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어릴 때 밤마다 죽음을 굉장히 궁금해하고 무서워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죽으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에 생각이 계속 이어져 마치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동시에 대체 어디서부터 이어져왔길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걸까, 그런 생각을 하염없이 했었던.. 그래서 전 자신 있게 이번 삶에서 나의 다음을 잇지 않기로 했어요. 어떤 비장한 각오는 아니었지만 가끔은 어떤 변명 같은 이유를 대야 할 때도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그러기로 했다, 외에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힘차게 태어나는 생명은 늘 경이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들이 부디 무사하게 자라나는 세상이 앞으로 유지되길 바라고요. 근데, 사실 종말을 바라기도 해요. 지금 사는 세상이 위태로워 보이지 않나요? 고통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 같아서 가끔 공포심이 크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세상의 종말을 목격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 네? 주제를 바꾸자고요? 아이, 이런 이야기는 싫으시나요? 아니에요. 그래도 우리가 접점이 맞는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좀 더 밝은 이야기 좋으실까요? (사이) 사랑은 좀 어려운 주제이긴 한데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동시에 무언가를 배제한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본 이후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동시에 사랑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종종 생각하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막연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시계를 본다) 요즘,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정신이 없다기보다, 하루를 꽉 채워 살아가는데 하루마다 역할을 다르게 살고 있어요. 그래서 말입니다. 이쯤에서 퇴장해도 될까요? 우리에게 또 시간이 있을 거라 믿으니까요. 하지만 꼭 저에 대한 것들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요. 존재 자체를 잊어도 좋습니다.


사람1이 퇴장한다. 암전.



겨울의 음악

사랑을 하고 있어 – 강아솔


드라마에 나온 음악

Twin Peaks Theme


여성 가수

Julee Cruise


흘러나오는 음악

Darker Than This


인물의 행복을 바라는 영화

Kajillionaire-미란다 줄라이


와, 영화 잘 만든다

셀린 시아마Celine Sciamma


와, 존경스럽다

켈리 라이카트Kelly Reichar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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