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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Apr 13. 2024

세상에 불쌍한 척을 해볼까 2

낮게 조여 오는 공기

 엄마는 각종 고지서를 상 위에 늘어놓고 벽에 기대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답답한 나날을 보낼 때 엄마는 설거지를 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무엇 때문에 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엄마가 밥 먹으라는 소리에 나오지 않았고 엄마는 그렇게 반복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아주 어릴 때, 그때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새벽에 집을 나가려 했고 엄마가 계속 붙잡았다. 삶에서 처음으로 인식했던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었는데 그날 아빠는 안방에 티비를 던졌고 장판에는 티비 모서리에 찍힌 움푹 파인 자국이 남았다. 그때 우리 집 거실엔 파란색 파라솔처럼 생긴 테이블이 있었고, 어릴 땐 식탁이 생겼다며 좋아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빠는 거기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처음 안방에서 실랑이를 벌일 때 언니들과 나는 어떤 소리에 이끌려 잠에서 깨서 안방으로 갔는데, 나는 왜 그래, 하며 웃었던 것 같다. 나는 무섭거나, 놀라거나, 슬프면 웃는 습관이 있다.   

 엄마는 종종 울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의 바로 아래 동생인 큰외삼촌과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서 지냈고, 명절 추수 시기에 맞춰 외할아버지가 엄마와 외삼촌만 두고 고향에 내려갔다고 했다. 외삼촌과 둘이 남은 엄마는 며칠을 보내다가 배가 고파서 엄청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뒤로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우는 걸 두 번 보았다. 이상하게 횟수는 명확하게 두 번인데 처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한 것도 두 번의 기억이 전부인데 엄마의 두 번 울었던 날 중에 첫날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두 번째는 실기로 대학을 준비하던 내가 엄마에게 학원비를 말했던 날이었다. 새벽에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나는 거실에서 우는 엄마의 소리를 들었다. 작은언니가 왜 우냐며 엄마를 깨웠고 나는 방에서 그 이유를 모른 척하였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말했던 학원을 포기하고 조금 더 싼 레슨비를 받는 선생님에게 갔다. 그 해에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략 10번 정도의 이사를 다닌 후에 우린 집을 사서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시절에 아빠는 자주 옥상에 올라가곤 했다. 나는 아빠가 죽을 것 같았다. 아빠가 담배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 옥상에 올라가면 그대로 아빠가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만 같았다. 계속 그 순간을 상상하며 숨을 죽였다. 언젠가 아빠의 가부장적인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엄마에게 왜 모든 걸 다 해주냐고 따질 때, 엄마는 아빠가 죽을까 봐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아빠의 아빠는 자살하였고, 아빠의 엄마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엄마는 그걸 아빠가 닮았을까 봐, 무섭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아빠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울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나는 잘 울었다. 그리고 맞았다. 우리 집은 울면 엄청 혼이 났고 맞았다. 나는 강제로 울음을 참아내는 습관을 길렀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사이 어딘가에 아빠가 하는 장난이 너무 싫어서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습관적으로 아빠에게 맞을 각오를 했었다. 그리고 아빠는 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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