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아토피와 함께 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달고 살다가 고등학교 때 간 한의원에서 명현현상으로 온몸이 진물과 피딱지로 뒤덮였다. 한의원도, 피부과도, 온갖 민간요법도 소용없었다. 스무 살에 마지막으로 간 강원도 요양마저 실패했을 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 카페에서 본 아토피 명의를 찾아 전라북도 김제에 갔다. 마치 산신령 같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지어주는 한약과 고약을 발랐더니 거짓말처럼 일주일 만에 진물이 싹 들어갔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제에 가서 약을 타왔다.
약을 먹는 동안은 아토피가 언제 있었냐는 듯 멀쩡한 피부가 되었다가 약발이 떨어져 갈 때쯤이면 다시 가려워지고 붉은 상처가 올라왔다. 진물과 피딱지는 사라졌지만, 온몸에 군데군데 까맣게 착색된 피부는 내가 아토피 환자임을 계속 상기시켰다. 이런 피부로는 살면서 연애는 꿈도 못 꾸겠다고, 그냥 평생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약발로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나는 다시 일을 하며 뒤늦게 수능을 보고 야간 전문대에 들어갔다. 유일한 동갑이었던 대학 동기가 고등학교 때 남사친을 소개해 줬다. 첫 소개팅은 아니었다. 피부가 나아지고 난 후, 친구들의 주선으로 몇 번의 소개팅을 해봤지만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중 한 사람은 내 아토피를 보고 피부병이라고 말했는데, 별거 아닌 그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아토피 환자에게 연애는 역시 사치였나.
어쩌다 보니 대학 동기가 소개해 준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두근거림으로 가득한 첫 연애였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언제든 헤어짐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 피부를 보고 이별을 고한다면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내 아토피를 보고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없어서, 그가 아무 말하지 않으니 괜찮은 건가.. 생각하고 계속 연애하다가 어느덧 7년이 흘렀다. 그는 내 남편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물었다.
내 피부가 이런데도 괜찮았냐고. 혹시 정 떨어진 적은 없었냐고.
“그건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었어. 아토피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보를 보는 게 마음이 아팠지. 내가 낫게 해 줄 수도 없고. 그게 힘들었어. “
이게 남편의 대답이었다. 나는 솔직히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아서 정말이냐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조금도 고민된 적이 없었냐고 되물었다.
남편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건 정말 아무 상관이 없었다고.
결혼을 하고 난 뒤 계속 먹던 김제 약이 더 이상 몸에 받지 않게 되면서, 나는 다시 최악의 피부 상태를 마주했다. 어느 겨울 새벽엔 너무 가려워 피가 날 때까지 온몸을 벅벅 긁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샤워기 밑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줄기를 맞으며 엉엉 울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그저 말없이 안아주었다.
끔찍했던 옛날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너무 무섭고 고통스럽던 날들이었다. 아토피 신약이 나와 산정특례를 준비하고 주사를 맞기까지, 그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곁엔 항상 남편이 있었다. 그의 사랑이, 다정함이 지금껏 나를 살아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