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내일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다 해도 크게 아쉽지는 않다고. 살 만큼 살았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깔보기 위한 자기 방어였는지, 아니면 정말 이 생에 작은 미련도 없는 건지.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동적 죽음이든, 능동적 죽음이든 때가 되면 받아들여야지 뭐 어쩌겠어. 그런 마음이었다.
항상 죽음을 생각해서 그런지 매일을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나중에 후회할지 안 할지만 생각했다. 이미 뱉은 말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으면 바로 사과했다. 후회되는 일들은 언제나 마음을 옹졸하게 썼을 때였으므로. 계산적으로 굴지 말자고 늘 다짐했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삶의 유한함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뿐이었다.
만약 내가 한 달 뒤에 죽는다면.
와, 한 달이나 주어진다니! 그럼 나는 나의 원가족인 엄마 아빠 동생과, 나의 새로운 가족인 남편에게 물을 것 같다. 나의 남은 한 달을 기꺼이 함께해 주겠냐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착한 그들은 아마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이제 앞으로 한 달간 우는 일은 없는 거야! 내 생에 가장 신나는 한 달을 보낼 거니까!!! “
전 재산을 털면 남은 가족이 써야 할 돈이 없어지니까, 적당히 사용 가능할 정도의 돈만 가지고 우리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3주 정도면 가고 싶었던 몇몇 개의 나라들을 다 갈 수 있을 것 같다. 스파르타 식으로 빡세게 다닐 생각은 없다. 마지막 여행이 피로와 짜증으로 점철되게 만들 순 없으니까.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던 스위스를 엄마 아빠랑도 꼭 다시 가보고 싶었으니 스위스부터,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그리스 정도만 돌고 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다.
마지막 한 주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보낼 것이다. 가마솥이 있고 마당이 있는 시골집을 빌려서 다 같이 대청마루에 대자로 누워 낮잠도 자고, 김치전도 부쳐먹고, 비가 오면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구경하고, 처마에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것이다. 비가 그치면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을 하고, 해가 지는 걸 다 같이 구경하고, 밤에는 어린 시절에 같이 봤던 만화영화를 실컷 보며 깔깔 웃고 싶다. 두치와 뿌꾸, 옛날 옛적에, 짱구는 못 말려, 이누야샤 같은 것들을.
마지막으로,
다들 나 없이도 잘 살아야 해!
울고 싶을 땐 울어도 되는데
그래도 매일 웃었으면 좋겠어.
하루하루 끝내주게 신나고 즐겁게 살아!
안 그러면 꿈속에 겁나 무서운 귀신으로 찾아간다!!
나는 정말로 충분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
다들 너무너무 고마워 사랑해!!!
하고 뿅 사라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