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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 Nov 11. 2024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매주 뭐라도 쓰겠다는 다짐은 잠시 넣어두고, 같이 글 쓰는 친구들과 3주간의 방학을 보냈다. 방학이라는 건 곧 개학이 있다는 것. 더 이상 핑계가 없어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일요일 밤, 지난 3주를 돌아본다. 


리프레시? 새로운 영감? 쌓인 글감? 애석하게도 그런 건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마음 편한 주말을 보냈을 뿐이다. '뭐 쓰지?' 소리치며 머리를 쥐어뜯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좋았다. 그 사이 영화랑 드라마를 무지막지하게 보긴 했지만 그건 매주 글을 썼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어차피 한 편의 글에 들이는 순수 시간이란 민망할 정도로 짧으니까.


여유가 생기면 지난 글들을 보며 퇴고도 좀 하고, 잘 어울리는 사진도 함께 첨부하려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이 시간이다. 여전히 빈 페이지 속 깜박이는 커서를 볼 때면 막연하기만 하다. 


수확 없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유일한 피드백이란 친구들이 찍어주는 하트 정도인 이 비 경제적인 글쓰기를 애써 방학까지 해가면서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뭘까? 글쓰기를 취미라 말하기에는 이 시간이 나에게 온전한 즐거움을 주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쓰는 내내 거의 모든 순간 괴롭다. 왜 미리미리 쓰지 않은 건지, 어째서 이렇게나 심심하고 납작한 글밖에는 쓸 수 없는 건지, 얄팍한 자책의 연속이다. 게다가 마음은 또 자주 딴 데로 앞질러가서, 지금은 얼른 다 쓰고 어제 보던 영화 마저 보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방면에서 소비자로 살아가는 시대에, 불과 1초 전까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분은 여전히 좀 중독적인 데가 있다. 금방 사라졌을, 그리고 사실 사라졌어도 내 삶에 큰 지장은 없었을 찰나의 단상을 길고 긴 문장으로 풀어쓰는 작업을 하다 보면, 하루를 꽉 채워 바쁘게 보낼 때도 그저 무료하게 뒹굴거리며 보낼 때도 쓰지 않는 뇌의 어떤 부분을 사용하는 기분이 든다.


인생에 이런 식으로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계속해나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그리고 그걸 대충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함께 해나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잠시나마 나를 넉넉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글쓰기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 정도로 예쁘게 정리하기로 한다. 어찌 됐든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계속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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