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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몽드 Jul 06. 2023

06. 니 그거 오지랖이다!

관심이 가는 걸 어떡해

스타벅스에서의 흔적


어제 일이다.


충무로 1번 출구 앞 스타벅스. 퇴사한 회사 동료들을 만나기 전, 오랜만에 바깥 구경이나 할까 하여 카페로 향했다. 대한극장 안에 위치한 카페라서 그런가, 대학가에 있어서 그런가, 앉을자리 없이 사람들로 빼곡했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소음. 퇴사 후 집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탓일까.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당최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에게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 있으니까. 유튜브 뮤직에서 lofi를 틀고, 앞으로 뭐 하면서 먹고살지... 고민에 빠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중력이 흩어진 나는 역시나 인스타그램을 배회 중이었다. 그때. 노트북 너머로 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멋쟁이 신사'라는 단어가 잘 맞는. 네이비색 베레모와 깔맞춤을 한 긴팔 정장. 어제는 비가 세차게 지나간 다음날이라 선선했지만 그래도 나에겐 '여름에 정장'은 멋쟁이처럼 보인다.


'더위를 이겨낸 패션 센스...!'


정장 안에는 외투와 색을 맞춘 연파랑 티셔츠가 있었다. 그리고 배 쪽이 귀엽게 솟아 있었다. 음식을 즐기시는 어르신이구나.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신발까지 멋스러운 구두로 본인을 장식하셔서 어르신 얼굴을 다시 보았는데. 아-. 하리보를 닮은 귀염상의 어르신이었다. 영화 <업>의 흰머리 할아버지를 연상케도 했다.


어르신은 높이가 낮은 테이블에 앉아 계셨고 테이블에는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함께였다. 순간, 1차 오지랖이 발동했다. '어르신이 드시기에 쓰지 않을까?' 그 생각은 쓰면 시럽 넣으셨겠지... 에서 쓴 음식을 좋아하실 수도 있잖아?로 향했다. 어르신은 종이 빨대로 '쬽쬽' 잘 드셨다. 입맛에 맞는구나. 안도가 되었다. 이후 2차 오지랖. 어르신은 소음들 사이에 홀로 계셨다. 땅바닥을 멍하니 보고 계셨는데, 그 표정에는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의 멍함이 보였다. 그는 멋스러운 서류가방에서 스마트폰의 가죽 케이스를 열었다가 화면을 한번 쓱 보고는 닫았다. '친구라도 기다리시는 건가?'


그렇게 난 두 번의 오지랖을 부리고 또다시 입에 풀칠할 거리를 찾아 인터넷을 헤맸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을까. 에어컨 바람에 소름이 끼쳐 고개를 들어보니 어르신은 자리에 없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 그런데, 화장실을 가려 일어나니 어르신은 4인용 좌석에 계셨다. 팔꿈치를 테이블에 편하게 올리신 채로 말이다.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순간 무료해 보이는 어르신에게 말이라도 걸어볼까, 충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명분도 없었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화장실로 갔다. 그렇게 내가 화장실을 총 3번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멋쟁이 신사는 아메리카노와 스마트폰과 함께였다. 


하루가 지난 지금, 어르신의 하리보 같은 이미지와 정갈한 옷차림이 아른거린다. 홀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걸까. 매일 스타벅스에 오시는 걸까.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시는 걸까. 달달한 커피는 취향이 아니신가. 


어쩌면 어르신을 위한 공간이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러다 나 자신에게 말한다.


마! 니 그거 오지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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