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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Sep 20. 2022

아이가 아플 때

  그르렁그르렁 쌕쌕 숨을 쉬는 폐렴 걸린 아이와 연신 "간지러워" 하며 벅벅 긁는 모기 물린 아이가 있다. 그 옆에는 밤새 숨쉬기가 힘들어서 뒤척이는 아이를 토닥였고 간지럽다는 아이에게 얼음주머니를 여러 번 가져다준 눈밑 다크서클이 진해진 아이들의 엄마가 있다. 그리고 한 명 더 있다. 포근한 침실에서 홀로 편안한 밤을 보낸 아이들의 아빠가 있다.


  숙면한 아빠는 여유로운 아침 샤워를 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거실에 눈 뜨고 있는 세명을 간단히 훑어보고 엄마와 간밤의 상황에 대해 몇 마디 나누고 주방으로 간다. 아침 식탁에는 구수한 누룽지, 짭조름한 장조림, 파슬리 뿌린 오믈렛을 올렸다. 함께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탱글한 샤인 머스캣과 동그랗게 파낸 수박을 예쁘게 한 그릇에 담아낸다. 엄마에게는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건넨다. 아빠의 밝은 미소와 엄마의 피곤 섞인 미소가 이상하게 잘 어울려 보인다.


  폐렴 걸린 아이는 오늘도 병원에 간다. 진찰받고 호흡기 치료를 하기 위해서다. 카페인으로 반짝 힘을 낸 엄마는 후다닥 챙겨서 폐렴 걸린 아이만 데리고 병원에 간다. 아빠와 모기 물린 아이는 집에서 크루즈 만들기 레고 블록 놀이를 한다. 엄마는 아빠와 모기 물린 아이는 굳이 함께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명만 진료를 볼 것이고 토요일이라서 대기시간도 한 시간 이상일 것이다. 보채는 두 아이보다 한 명이 수월하기도 하고. 아빠 생각은 다르다. 어디든 항상 함께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병원 가는 일에 대해서는 엄마가 집에 있으라고 하면 아쉽다 말하며 집에 있는다.


  '엄마인가 간병인인가.'

  언젠가 엄마가 아빠에게 물었던 말이다. 물론 분노 섞인 질문이었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으면 발을 동동 굴렀다. 도무지 조퇴할 수 없는 날에는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이런 날에 엄마는 아빠에게 진료실에서 할 말을 메시지로 보냈다. "어젯밤부터 39도 열이 났고, 기침을 자주 함." 아빠 머릿속에는 아픈 아이와 건강한 아이 둘로 나뉘어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는 잘 몰랐다. 엄마는 아빠를 구태여 가르치지 않았다. 서로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다른데 가르친다고 엄마처럼 혹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을 걸 알았다.


  병원 진료는 차치하더라도 집에서 수시로 열을 재고 약을 먹이고 보채는 아이를 안아주는 모든 일을 엄마가 하기에 버거웠고 무엇보다 혼자 부모가 된 기분이 싫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아이가 아프면 혼자 부와 모를 동시에 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엄마 말에 섭섭해진 아빠는 아이를 키운다는 걸 왜 안아주고 먹이는 일로 한정하는 거냐고, 옷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챙겨두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정돈하고 먹이는 밥은 누가 만든 건지 알고 있느냐 물었다. 아빠는 아이가 아프면 엄마만 찾기에 평소보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아픈 건 아이인데 꼭 엄마가 아픈 거 마냥 시야가 좁아져 버린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더더욱 아이만 보려고 한다. 무언가를 보고 따지기에 아이가 아픈 시기만큼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이 자라나는 성장기는 진작에 끝났지만 정신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용서받고 이해받으면서.








Photo by Jochen van Wylic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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