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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끼장미 Jan 18. 2023

엉덩이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아무튼, 피트니스/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1. 저자에 대하여 : 류은숙

인권운동 사랑방 창립 멤버로 시작해서 지금은 인권연구소 ' 창'의 연구활동가로 일하고 있으니까, 운동(movement)을 한 지 25년이 넘었다. 쉰이 될 무렵 여러 군데가 아프고 나서부터 운동(exercise)으로 피트니스를 시작했다. 그 무엇 때문에 하는 운동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 운동이 일으킨 몸과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즐기고 있다.

『인권을 외치다』 『심야인권식당』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등 운동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몸 운동 책을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책을 썼다.  


2. 목차                                          

나는 살기로 했다

개처럼 굴려요

지름신이시여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다이어트, 최선을 다해 잘 먹기

데드리프트에 성공하다

지구를 버티듯, 체스트프레스

벤허처럼 혹은 뽀빠이처럼

몸한테 혼나기 전에

복근 운동과 유산소운동, 지루한 삶과 같아라

체육관의 운동, 체육관의 노동

나를 지켜보는 사람

탈의실 정치

‘힘!’ ‘힘은 우리의 것!’

엉덩이의 소리를 들어라

도둑처럼 오는 변화

깍두기의 기승전-피트니스

이해하다


3. 마음에 남는 구절 


나는 살기로 했다


8> "난 이대로 막살다가 (=폭음과 폭식을 즐기다가) 혹시 병 걸려 죽을 것 같으면, 다 정리하고 여행을 떠날 거야. 이리저리 원 없이 떠돌다가 아무도 모르게 이국에서 죽을 거야." 

"류! 병이란 게 그런 식으로 오는 게 아녜요. 쌩쌩하게 활동하다가 한 번에 죽을병이 오는 게 아니라고요"

"네?"

"여기저기, 조금씩 조금씩 아파요. 만성적인 병이 늘어요. 병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이 말이 맞았다. 나는 지금 당장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니었다. 이 병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나는 '마지막 여행' 대신, 살기로 했다. 


9> 알리바이용 운동은 했다.... 친구들 덕에 주 3회 체육관에 가긴 갔다. 그거나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알리바이는 폭음과 폭식을 정당화해 줬다.

'운동도 하고 있으니, 이 정도야 뭐.'

알리바이용 운동과 죄책감 없는 폭음과 폭식, 이 둘이 궁합이 맞아 몸이 증식을 아주 잘한 것이다.... 온몸이 내뿜는 짜증이 수증기처럼, 내가 하는 모든 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가득 찼다. 친구들은 걷기만 하지 말고 근력 운동을 하라고 했다. 

인바디 체크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지방은 둥실, 근육은 물컹, 내 몸 상태가 숫자로 표시되어 나왔다. 그날따라 왜 이리 팔은 쑤시는지, 나이스가 얘기하는 동안 나는 내내 팔을 조물거리고 어깨를 두들기고 아주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 


12> 문득 어느 영화가 떠올랐다.  『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한 미아 패로가 주연한, 중년의 부유한 가정주부가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자기 생을 돌아보고 자아를 찾으러 인도로 향하는, 뭐 그렇고 그런 얘기의 영화다. 그 영화에서 내가 충격받은 것은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는 헬스트레이너였다. 벨이 울리고 문이 열리면 근육질의 트레이너가 방방 뛰며 집안으로 들어와 말한다.

"자! 오늘도 지방을 태워볼까요!!"

'와, 저렇게 개인 트레이너랑, 그것도 자기 집에서 운동하면 살찔 틈이 없겠네. 역시 몸은 계급적이야.'

 나는 분명 그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내가, 바로 지금, 미아 패로가 되기로 한 거다. 세상에, 내가....


115>  만델라는 거의 매일 저녁 역도 클럽에 다녔다고 한다(와우, 만델라도 헬스클럽에 다녔네!) 당국의 탄압과 생활고, 인권변호사 생활로 바늘 하나 꽂을 틈 없는 빡빡한 생활 이었는데 말이다. 수배를 피해 도피하던 생활 중에도 매일 아침 다섯 시면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한 시간가량을 뛰었다. 도피처를 제공한 사람도 결국 만델라의 건강 유지법에 항복해, 아침에 시내로 출근하기 전 만델라와 함께 운동을 했다고 한다. 감방 안에서도 만델라는 매일 활동 계획을 짰고, 그중에 신체 단련 프로그램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선천적으로 재능이 부족했지만 연습과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적용했다."


"나의 주된 관심은 연습이었다. 철저한 연습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훌륭한 방법임을 알게 된 것이다. 연습을 격하게 한 뒤에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더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투쟁이 아닌 어떤 것 안에 나 자신이 몰두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저녁에 연습하고 난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 즉 상쾌함과 강인함으로 느끼며 깨어났던 것이다." 


118> 내 전도의 요지는 일단은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제대로 시작해 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그냥' 시작하라고 한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좀 끝내고 나면, 이것 좀 마쳐놓고 저것 좀 마련해놓고 나면, 이런 식으로라면 '그날'은 오지 않는다.


119> 우리가 어깨에 짊어진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그 어깨에 운동 같은 걸 하나 더 얹으려면 분명 어깨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 또한 생기기 마련이다. 뭘 내려놓아야 할지는 사람마다 어깨에 얹힌 종류와 가짓수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리고 넣고 빼기는 저마다의 몫이다.


121>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눈 뜨면 이부터 닦는 일, 잘 씻고 갖춰 입는 일, 아무리 재촉하는 일이 있어도 제때 끼니와 잠을 챙기는 일, 이런 걸 유지해야 운동을 해나갈 힘이 생긴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피곤하고 힘들어하는 상태에서 운동을 하라는 채근을 당하면 안 그래도 힘들게 시험공부하고 있는데 시험과목이 늘어나는 것과도 같다. 


 운동을 하면 피곤과 복잡한 감정을 다독일 체력이 길러지는 건 맞다. 운동만 따로 떼어놓고 말하면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운동은 생활과 따로 놀지 않는다. 큰일과 작은 일,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의 흥정 속에서 부대끼다 보면 내 일상은 귀찮은 군식구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운동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일 뿐처럼 여겨진다. 자기 관리 기술의 일종 혹은 문화자본 같은 게 되어버리면 운동은 일상의 벗이 아니라 하기 싫은 숙제처럼 느껴진다. 탄성을 잃은 고무줄처럼 뚝 끊어지기 쉽다. 고무줄처럼 너무 팽팽하게 당기고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상의 안팎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도 무시하게 된다. 느슨하게 풀어놓고 살아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마음이어야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엉덩이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아파서 운동을 시작했듯이 내가 운동을 유지하는 힘도 고통인 것 같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고통은 있기 마련이다. 고통은 뭔가를 돌아보게 하고 돌보게 한다.......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몸의 소리를 경청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에너지 같은 건 생성되지 않는다.



4. 리뷰


일상을 유지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아침,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냥 이대로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밤,

꾸역꾸역 가라앉힌 감정의 웅덩이에 던져진 돌덩이를 어쩌지 못하고 하얗게 지새운 새벽,

그런 날들이, 내게는 그랬다. 


어서 이 고통의 날들이 지나가기를, 

내일은 조금 덜 고단하기를, 

나를 흔드는 고통의 돌덩이들이 나에게 던져지지 않기를, 

지워버리고 싶은 2022년이 어서 지나가고 2023년 새해가 밝아오기를,

그렇게 되면, 운동을 하리라

나는 바랬다.......


그렇게 삶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나니, 여기저기 삐걱거린다. 

가장 약한 곳부터 하나 둘 고통을 호소한다. 

그제야, 아우성치는 몸에 슬그머니 미안해진다. 

그리고 조금씩 나의 몸과 마음이 들려주는 고통에 귀 기울인다. 

고통이 뭔가를 돌아보게 한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가슴을 친다.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았던 날들은 '나'를 더 달리게 했다. 

'나'처럼 살지 않는 '너'를 설득하느라, '너'의 고통을 살피지 못했다.

'너'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 '나'의 고통보다 더 아프다는 걸,

'너'를 사랑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너'의 고통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나'의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의 고통이 길어질수록 '너'의 고통은 '너에 대한 원망'으로 변해갔다. 

'너'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나는 어떤 마음이어야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엉덩이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아파서 운동을 시작했듯이 내가 운동을 유지하는 힘도 고통인 것 같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고통은 있기 마련이다. 고통은 뭔가를 돌아보게 하고 돌보게 한다.......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몸의 소리를 경청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에너지 같은 건 생성되지 않는다.  

                                  - 아무튼, 피트니스(121p)  중에서  -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은 나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 신호를 무시하면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수 없음을, 나는 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피트니스로 간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운동을 다녀오면 가지 않을 이유를 찾느라 분주하다.

오늘따라 엉덩이는 왜 이리 아픈지, 내일은 도저히 못 갈 것 같다고 엉금엉금 기어서 찜질기를 찾는다.

시큰거리는 엉덩이에 온찜질 기를 올려놓고, 저자의 이야기에 내 고통을 포개어 본다. 


고통으로 시작한 운동, 고통으로 유지하기

그렇게 하루하루를 더하면, 

언젠가 '나'에게도,  

'너'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에너지가 조금씩 생겨날 것이다. 

그러니 나의 몸에 귀를 기울이자.

흐느껴 울던 고통의 소리를 만나거든, 잘 어루만져 주리라.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피트니스로 향할 것이다. 

'나'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너'를 온전히 사랑해 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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