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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Oct 18. 2019

밤낚시

교수 K

언제 이사를 왔는지는 모른다. 집 건너편 배추밭 옆 첫째 집이었다. 기열이네 집과 마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도 그의 아내도 모두 키가 큰 편이었다. 그의 딸도 아비를 닮아 큰 키였다. 그와 아버지는 친구이자 동료였다. 두어 살 그가 많았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 안 되는 사이였다. 젊은 시절 그와 그의 친구들은 낚시나 천렵을 즐겼다. 섬진강에서 은어회를 먹고 기생충에 감염되어 독한 약을 먹어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간혹 낚시를 가는 날이면 아버지는 내게 지렁이를 잡아서 미끼통에 담게 했다. 집 앞 탱자 울타리 밑을 흐르던 시궁창을 파면 지렁이가 많았다. 나는 그 일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언젠가 밤낚시를 따라간 적이 있다. 어느 저수지인지 강가인지 낚시터에는 밤낚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저마다 카바이드 랜턴을 켜놓고 낚싯대를 서너 개씩 드리우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가물거리는 랜턴 불빛에 낚시꾼들의 얼굴도 반딧불처럼 희미하게 보였다가 안보이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것이 꿈인지 생신지 모르고 졸음을 이기려 도리질을 몇 번이나 거듭해야 했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 어민 낙싯찌들은 색동저고리 소매처럼 형광색 띠를 두른 채 얌전하기 이를 데 없는 새악시마냥 미동조차 없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찌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랜턴 불빛을 따라 명멸했다. 까만 물 위로 흩어져 있는 그것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사탕 같이 보였다. 그러다가 입질이 있으면 형광색 띠들이 수면 아래로 쑥 들어갔고 낚싯대에 붙은 방울이 딸랑거렸다. 죽은 듯 앉아 있던 낚시꾼이 화들짝 낚싯대를 채어 올리는 동작은 전광석화처럼 민첩했고 기다란 낚싯대 끝의 찌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까만 밤하늘에 커다랗게 그려내는 궤적은 우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낚시를 비롯해 여러 잡기를 즐겼지만 아들에게 그것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나도 가르쳐 달라거나 열심을 내어 배우려 하지 않았다. K는 아버지보다 몇 해 먼저 정년 퇴임했다. 퇴직 후로는 그저 평범한 촌로처럼 농사일을 하다가 얼마 못 가서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이 조용히 지나갔다. 그의 딸은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가끔 음식을 대접했다. 그는 나를 어릴 때부터 잘 알았지만 내게 무슨 기억날 만한 이야기를 해주었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더분한 인상의 그는 막걸리 기운이 거나하게 오른 발그레한 얼굴로 그저 웃곤 하였다.




[사진출처: http://www.fish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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