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스파, 그리고 겨울 산장에서의 특별한 저녁
비행기 안에서 좌석 앞에 놓인 매거진을 뒤적이다가 Perfect Ski Destination by Theme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 로맨틱한 스키 여행지로 엥겔베르크라는 스위스 도시가 소개돼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독일어로 Engel은 영어의 Angel, 즉 천사를 뜻한다고 한다. 천사들이 사는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엥겔베르크. 그렇게 우리의 스키 여행지는 엥겔베르크로 정해졌다.
엥겔베르크는 루체른에서 차로 한 시간쯤 떨어져 있고, 티틀리스 산으로 유명하다. 티틀리스는 해발 3,238m, 옵발덴 주와 베른 주의 경계에 자리 잡은 알프스 산이다. 겨울엔 스키, 여름엔 등산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스위스를 여행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보게 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발리우드 사인이다. 티틀리스도 발리우드 영화의 촬영지여서 산 정상에는 커다란 발리우드 포스터가 걸려 있고, 인도에서 온 여행객이 많다. 또 하나는 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마을에도 큼직한 5성 호텔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호텔들이다. 그런 시절에 이런 작은 마을에 호화로운 호텔을 짓고, 또 그곳에서 여행을 즐긴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엥겔베르크 중심에는 켐핀스키 호텔이 자리한다. 스위스의 5성 호텔답게 규모도 크고 내부는 화려했다. 우리는 여행 마지막 날 오전에는 스키를 타고, 오후엔 스파에서 시간을 보냈다. 인피니티 풀, 고급스러운 어메니티, 사우나, 릴랙세이션 룸, 마사지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스위스 불어권 스파는 수영복 착용이 필수지만, 독일어권은 정반대다. 스파에선 수영복을 입는 것이 금지다. 수건 하나 걸치거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사우나를 이용한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렇게 스파 문화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스키도, 스파도 좋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산 위 작은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였다. 산길을 따라 택시를 타고 올라간 곳에 자리한 스위스 샬레 스타일의 Villa Hundert.
호텔에 도착하자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은 호스트가 안내를 했다. 가장 윗층 리셉션룸에서 식사 전 아페리티프를 즐겼다. 방금 구운 곡물 비스킷과 샴페인 한 잔이 긴장을 풀어주고 입맛을 돋워주었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할 즈음 호스트가 다이닝룸으로 안내했다.
단 7개의 테이블이 놓인 아담한 다이닝룸은 프라이빗하고 아늑했다. 제철 재료로 준비한 7코스 저녁 식사. 하나하나의 요리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예를 들어, 브리오슈는 화병에 브리오슈가 나뭇가지에 꽂혀 나왔다. 단순한 빵 한 조각이 이렇게도 새로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디저트로 나온 가루 아이스크림은 빙수와는 또 다른 독특한 식감이었다.
파인 다이닝에서 음식의 맛과 서비스만큼 중요한 건 새로운 경험이다. 색다른 조합, 과감한 시도, 예상치 못한 식감과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코스마다 들려주는 요리 설명은 식사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식사 마지막에는 셰프가 나와 자기소개를 하고, 어떤 요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오늘의 메뉴를 건네주었다. 식사 후에 메뉴를 받으니, 방금 맛본 요리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여러 창의적인 요리가 있었지만, 지금도 가장 선명히 떠오르는 건 화병으로 나온 그 브리오슈다. 화려한 요리들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오히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그만큼 기본이 맛있으면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마운틴 샬레의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의 저녁 식사. 스키도, 스파도 훌륭했지만, 작은 산속 마을에서 만난 이 소박한?! 레스토랑에서의 (가격은 소박하지 않은) 저녁은 그때의 공기와 느낌까지 다시 떠올리게 한다. 여행은 결국, 이런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표지사진은 캠핀스키 호텔 외부 모습. 너무 화려하지 않고 딱 적당히 조명으로 꾸며놓은 외관. 아래사진은 화병에 꽂혀 나온 브리오슈와 그날의 식사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