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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퀸스드림 Feb 07. 2022

다시는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읽어보렴.

 머리가 느끼기 전에 가슴으로 다 느껴봤으면 좋겠다.


안녕! 딸.

코로나 확진자가 38,000명이 넘었구나. 설마 했는데... 왜 이런 예감은 틀림이 없는 것인지... 덕분에 이번 주말도 신발 한번 안 신고 집에서만 보냈네. 코로나 블루. 이제는 이것도 익숙해진 것 같다. 초기에는 ‘코로나 블루로 힘들어’라는 말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말도 없이 그냥 모든 것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 누워서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기인데 이번 주말 내내 내가 그러고 있더라. 텔레비전이라는 게 마약과 같더라. 특히나 한국 드라마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거니? 그걸 알기 때문에 일부로 잘 안 보는데, 엄마는 또 남들보다 한참 늦게 한국 드라마에 빠져있다.

응답하라. 1994







2013년에 방영된 거라 벌써 9년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보고 있다. 코로나 덕분이지. 1994년이면 엄마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때 자주 듣던 음악들이라든지 시대적 배경이 엄마를 설레게 했다. 지금 너희 세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촌스러운 행동들이라든지, 빠질 수 없었던 술 문화, 그리고 누군가를 가슴으로 좋아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엄마를 드라마에 빠질 수밖에 없게 했단다.




이런 거 보면 엄마도 진짜 옛날 사람인가 봐.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이런 예스러움이 좋다. 아날로그 감성이라고나 할까? 요즘에는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있는 핸드폰 덕분에 누군가를 그냥 기다리지 않잖아. 시시때때로 카톡으로 상황을 말할 수 있어서 기다림의 미덕이라든지, 엇갈린 사랑에 양보해야만 했던 그 마음이라든지, 그것을 보며 하는 가슴앓이는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들 나이가 엄마와 비슷해서 더 설렜는지도 모르겠다. 20살 풋풋했던 그 시절.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그 마음을 예쁘게 그린 드라마가 엄마를 그때 그 시절로 돌려놨단다.

“엄마 삐삐가 뭐야?”라는 질문을 내가 받을 줄이야... 20살 처음으로 갖게 되었던 삐삐를 다시 보는 것도 반가웠다. 그때 그 시절 그 감정을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어서 그것도 참 좋았다. 덕분에 25년 전으로 잠시 타임머신을 탈 수 있었다.







드라마 내용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 칠봉이가 성균이 할머니에게 질문을 한다. “할머니 만약 20살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할머니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20살로 돌아간다면 좋아한다고 꼭 고백할끼다. 그때 말 못 하고 혼자서 가슴앓이 했던 사람한테 퇴짜 맞더라도 꼭 고백 한 번 해볼끼다.”라는 말을 듣고 칠봉이도 짝사랑했던 나정이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잘 짜인 드라마 각본이라 모든 것이 이렇게 맞춰 들어가는 것이겠지. 그걸 알면서도 혼자서 설레며 보는 엄마다.




이제 다시는 저런 풋풋한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랑에 대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저렇게 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 때문에 가슴앓이할 수 있는 건 딱 저 나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저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이미 내게 풋풋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딱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10대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20대부터는 본인이 필요한 공부만, 하고 싶은 공부만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렇게 되는 것 같다. 40대 중반인 엄마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관심 있는 책들만 본다. 그래서 한정적일 수도 있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도, 깊게 공부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도 20대 때일 것 같다. 그 이상 되면 나도 모르게 기준이 생겨 버린다. 요즘에는 워낙 빨라서 10대 때 이미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20 대란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어설픈 성인이 되면서 어른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어질 때이기 때문에 분명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엄마는 그때 그 마음을 사랑한다.




그래서 너에게 과감히 추천해보건대 20대 때 미친 듯이 가슴앓이도 해보고, 아픈 사랑도 해보고 누군가를 짝사랑도 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후회하지 않도록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도 해보고, 그 사람에게 차이기도 해 보고, 아픈 사랑 때문에 눈물도 흘려보길 바란다. 발라드 노래 가사가 나의 이야기인듯한 느낌도 받아보고, 누군가의 큐피드의 화살이 되어 너의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그런 사랑도 해봐라.




물론 엄마가 이런 말을 하고 후회할 수도 있단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그렇다고 법을 어긴다거나, 누군가에게 해코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단다. 20대 때는 너무 일찍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람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란다. 때로는 바보짓을 할 수도 있고, 그 사람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건 네가 20대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 나이 때 해 볼 수 있는 연애 감정을 머리가 느끼기 전에 가슴으로 다 느껴봤으면 좋겠다. 촌스러운 사랑을 꼭 해보기를... 그 사람 때문에 설레어 잠 못 들고, 질투와 같은 감정도 느껴보기를...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안타까운 사람이란다. 너의 감정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을 줘 본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단다. 엄마는 주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안 것 같구나.




어쩌면 그것도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많이 사랑을 주면서 살았을 것 같다. 엄마는 받기만 했고, 받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단다. 도도하게 굴어야지 잘하고 있는 줄 알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순수하게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될 때도 있었지. 그래서 그런지 ‘응답하라 1994’에서 20살 풋풋한 사랑의 설렘들이 아름답게만 보이더라.







시대가 달라진다고 해도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누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과 같은 일이니. 70억 지구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확률이란 얼마나 될까? 이렇게 생각하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란다.




누군가는 기적이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기적이 있다고 한다. 절박한 순간에는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삶이란 기적만을 믿으며 살기에는 매몰차고 혹독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이런 기적이 필요하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백만 명 중의 한 명은 이런 기적을 경험하기도 하지. 그 기적이 나에게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사람은 그런 희망 때문에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기적은 행동할 때만 일어나는 것이다.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때로는 차이더라도 꼭 고백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네 삶에 진짜 기적도, 주는 사랑의 아름다움도 경험해 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미 너를 통해 주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알아버린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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