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없었으면 코로나 블루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다들 감염병으로 나날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다.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기 시작하자 천 번 저어야 만들 수 있다는 달고나 커피니 하는 것들이 유행하더니 그런 생활이 일년이 넘어가는 지금 집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밖에 나가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나도 아마 강아지가 없었으면 무척 힘든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내 강아지의 이름은 “문도”이다. 세상이라는 뜻의 라틴어이지만 알고 보니 게임 캐릭터 이름이라고 한다. 강아지 이름은 남편이 지었다. 지난 7월 25일은 강아지의 겟챠데이(Getcha day)였다. 생일이 아니라서 다소 생소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유기견이었거나 식용견이었을 이 아이는 생일이 없다.
아직도 강아지를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난다. 우리는 개를 너무도 좋아하지만 여행으로 인해 개를 키울 수 없었고, 한국에 돌아와 정착 비슷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개를 입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동네 전철역 광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유기견 입양 행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매주 역 근처로 마실을 나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기부하고 강아지들을 마음껏 눈에 담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는 마음 한 켠에는 이러다가 운명의 강아지를 만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은 좀 달랐다. 평소라면 사람도 강아지도 바글바글했을 행사장이 어쩐 일인지 한산했고, 작은 펜스가 쳐진 널따란 구역에는 달랑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펜스 옆 강아지 케이지 안에 들어가 있는 누가 봐도 학대당한 것이 역력한 겁먹은 커다란 진돗개가 있었고, 나무에 매여있는 강아지가 두 마리, 테이블 위에는 꼬질꼬질하고 냄새가 나지만 품종견인 아이들 (대부분 버려진 아이들이겠지) 이 케이지에 담긴 채 우릴 보고 짖어대고 있었다.
펜스 옆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강아지는 누가 봐도 절대 입양을 못 갈 것이 분명했다. 사람을 무서워해서 손만 가까이가도 바들바들 떨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품종견도 아닌 못생기고 커다란 개. 그 아이를 데려가자고 남편이랑 이야기를 하다 나무에 묶여있던 아이들을 만져주는데 남편이 나를 다급히 불렀다. “이리 와봐, 이 아이 좀 봐봐.” 남편은 큰 아이 옆 펜스에 들어가있던 강아지를 만지고 있었다. 손바닥 두 개를 합쳐놓은 것 보다 조금 큰 강아지는 삼 개월쯤 되어 보였고, 남편이 손을 넣어 이리저리 만져주자 배를 까고 누워서 온갖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안아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정말 말 그대로 두 발로 나의 목을 끌어안고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 안돼, 이럴 순 없어, 작고 귀여운 강아지들은 언제든 입양을 갈 수 있으니까. 독한 마음을 먹고 강아지를 내려놓은 후 남편을 바라보자 남편은 그 강아지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남편을 데리고 근처 커피숍으로 가 커피를 마시는데 남편이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다른 강아지들에게 관심을 주려고 하면 그 애가 펜스에 몸을 기대고 조금이라도 더 만져달라고 막 제 몸을 부볐어. 우리가 여기 오는 동안 뒤돌아본 적 있어? 그 애가 계속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그 애를 데려왔다. 집에 강아지 용품이 하나도 없어서 남편이 강아지를 안고 한여름 뙤약볕에 앉아있는 동안 나는 예쁘게 차려 입었던 원피스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강아지 용품을 사러 다녔다. 사료와 목줄을 샀으나 강아지 케이지를 구할 수 없어 작은 가방을 샀고, 그렇게 가방에 들어간 작은 강아지는 우리 집으로 왔다. 제 대소변을 밟고 다녀 꼬질꼬질한 냄새가 나는 아이. 누군가 노끈으로 묶어놓았는지 목에 분홍색 물이 들어있는 아이. 그 분홍색 염료는 몇 번을 목욕시켜도 빠지지 않아 결국 털갈이시기가 와서야 사라졌다. 그 아이를 입양하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흰 진돗개 믹스 새끼가 차고 흐르는 고양시 보호소는 안락사가 있는 곳이므로 어쩌면 영원히 잠드는 주사를 맞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아이는 살아남아 아침 이슬이 고인 잔디는 밟지도 않는 공주가 되었다. 겟챠데이를 맞아 잔뜩 삶아놓은 닭가슴살을 먹고, 세 개의 쿠션을 가졌으며, 하루 세 번 긴 산책을 나가는 견생역전의 주인공. 이 아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저 그렇고 재미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