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잘 맞는 요가원을 다니다 보면 요가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요가원이 주는 안정감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헬스장에 있는 GX 피트니스룸에서 일 주일에 세 번 필라테스를 수강하는 것과는 다르고, 또 플라잉, 필라테스, 파워요가, 빈야사 등 ‘살 빠지는’ 요가를 하는 곳에서 느끼는 감정과도 다르다. 하타나 아쉬탕가처럼 한 종류의 요가를 주로 하는 요가원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감정인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매트를 펴고 수련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안정감이다. 그곳에서는 운동(Exercise)이 아닌 수련(Practice)을 하고, 코어(Core)가 아니라 반다(Bandha)를 쓴다.
아쉬탕가 마이솔 스타일 수련은 일반적인 요가 클래스와 사뭇 다르다. 아쉬탕가는 동작이 미리 다 정해져 있다. 각 시퀀스는 프라이머리, 인터미디엇, 어드밴스드 등으로 불리며 대략 60~70개의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련생들은 모든 동작을 외워서 자신의 속도와 호흡에 맞게 스스로 수련한다. 앞에 서서 동작을 보여주며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하는 선생님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 선생님은 무얼 하냐고? 선생님은 각 수련생을 살펴보며 잘못된 자세를 하고 있거나 잘못된 호흡을 하고 있을 때 이를 바로잡아준다.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도 깊다 (구루Guru라는 단어는 요가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선생님은 단순히 자세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요가의 철학과 마음가짐을 함께 전달하고 수련이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의지를 북돋아준다. 처음부터 이 60개 이상의 아사나를 모두 수련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까지 해낸 후 그 다음에는 선생님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 동작의 체인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이다. 아쉬탕가에서는 목구멍을 닫고 비강을 여는 웃짜이(Ujjayi) 호흡을 하는데, 다스베이더 숨쉬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아쉬탕가 요가원에 가면 마치 다스베이더 정모에 온 것 같다. 온 세상이 고요하고 수련실에는 호흡 소리만 들린다. 이미 동작을 외웠으므로 호흡을 따라가다보면 요가 아사나는 곧 무빙 메디테이션(Moving Meditation)이 된다. 마지막 동작은 사바사나(Shavasana)다. 송장 자세라고도 불리는 이 자세는 말 그대로 송장처럼 누워있는 자세다. 이것이 요가냐하면, 그렇다. 방금까지 뛰고 땀흘리다가 갑자기 누워 눈을 감으면 심장도, 머릿속도 마구 휘몰아치지만 이것을 가라앉히는 것도 요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가원에 가는 우리는 서로 말도 별로 섞어보지 못한 사람들끼리 땀을 뻘뻘 흘리다가 다같이 누워있는 것이다. 그러니 말이 없어도 정은 들게 마련이다.
우리가 가지는 이 커뮤니티적 유대감은 대부분 음식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형태의 유대감은 잘 없다. 역시 ‘밥은 먹었니’ 민족이다. ‘드롭백 컴업’이라고 불리는 초보에서 중급, 혹은 사람에 따라 중급에서 고급으로 가는 관문 (때때로 사람에 따라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한다) 을 넘어가면 무려 떡을 돌린다. 마치 골프에서 홀인원을 한 것과 비슷하게 취급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아주 힘들게 아사나를 넘어가도 떡을 돌린다. 아쉬탕가를 1년 내지 2년쯤 수련하다가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떡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념으로 돌리는 음식 외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뭔가를 자꾸 싸온다. 빵도 싸오고 과일도 싸오고 제주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텃밭이 있어서 야채나 과일을 잔뜩 싸오시기도 한다. 나도 하도 얻어먹어서 월요일에 비건 바나나브레드를 구워갔다. 꽤 잘 구워져서 으쓱한 마음으로 들고 갔는데, 그날 원장님의 아내이자 요가원 실무를 보시는 실장님이 장아찌와 무말랭이, 단호박을 잔뜩 싸주셔서 들고 간 가방보다 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각자의 시간과 삶의 연속성 내에서 자신만의 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늘 같은 시간에 나와 매트를 까는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는 유대감에는 언어도, 종교도, 인종도 없다. 그러나 K-요가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떡으로, 야채로, 반찬으로, 빵으로 표현되는 무엇이다. 누군가의 입에 무언가 맛난 것을 넣어주어야만 하는 그것. 나는 그것이 말로는 듣고 또 들었지만 한번도 제대로 느껴본 적 없던 정이라는 것을 알았다.